이 동 용 (수필가/인문학자)
소크라테스는 진정 스스로는 단 한 마디도 남겨 놓지 않았습니다.
그가 한 말들은 오로지 제자들이 집필해 놓은 글들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그에 관해서 한 말들이 별이 되어 불멸이 된 것입니다.
그에 관해서 말을 했던 제자들도 그 스승의 이름과 함께 불멸이 되었습니다. 플라톤과 크세노폰, 이들이야말로 스승을 불멸로 연출해 낸 최고의 저자들입니다.
플라톤과 크세노폰은 왜 글을 써야 했던 것일까요? 그 의도를 추궁하면서 그들의 글을 읽게 되면 순수하지 않은 의도가 발견되기도 합니다.
그들의 글 속에서는 소위 ‘순수한 의도’는 없습니다. 그 속에는 분명 ‘특별한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글을 쓰게 된 의도는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 무엇을 남겨 놓고자 했던 것이 그들의 의도였습니다.
그렇지만 순수한 의도 자체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무엇을 두고 순수한 의도라고 말할 것인가가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최소한 플라톤과 크세노폰이 소크라테스의 삶을 고스란히 남겨 놓고자 했던 것을 단순히 순수한 의도로 간주한다면, 그들의 집필 의도에 대해서 더 이상 토를 달 일도 없습니다. 그것은 당연히 인정되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그렇겠지만, 상황을 한 발자국만 뒤로 떨어져서 바라보면 빛과 그림자가 구별되기 시작합니다. 더 큰 그림이 시선 속으로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소크라테스를 스승으로 두고 좇아가는 제자들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나름대로 형성되는 독특한 세계관이 형성될 수도 있지만, 그 밖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전혀 다른 세계관이 형성될 수도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현상이 하나의 문제로 인식될 수 있는 그런 세계가 보일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문제는 법정 다툼이고 소송 사건입니다.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민주주의 사회의 소동입니다.
제자들의 시각에서 사건을 바라보면 스승은 억울하게 희생되는 삶을 살았던 것이 맞습니다. 법적으로 다툼의 소지가 있다는 것과 다른 시각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만 인식해 내도 소크라테스의 이야기가 지닌 불멸의 생명력을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민족과 국가와 정의와 법의 이름으로 처형되었습니다. 죄목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그가 신을 믿지 않았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가 젊은이들을 유혹했다는 것입니다.
플라톤도 크세노폰도 이에 대한 법적 다툼을 상세하게 기록으로 남겨 놓았지만, 그 죄목들에 대한 우리들의 선입견과 편견이 너무도 강해 그 설명이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역사는 승자에 의해서 기록됩니다. 기록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사건을 플라톤과 크세노폰은 글쓰기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역사서에서는 등장하지 않는 인물입니다. 그렇다고 그가 역사적 존재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무리한 속단이 되고 맙니다. 왜냐하면 최소한 두 사람이 같은 인물에 대해서 말들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플라톤과 크세노폰의 글들은 이천오백 년이라는 세월을 거치면서 살아남은 고전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글이 지닌 힘에 대해서 조금씩 느낌이 옵니다.
잔인한 민주주의의 일면을 인식하게 해 주는 그 ‘은폐된 의도’가 그 글들을 불멸이 되게 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 줍니다. 민주주의라는 다수결의 원칙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게 해 주는, 또 민주주의에도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는 최고의 글들이 이들의 것입니다.
글을 쓴다고 다 불멸이 되는 것은 아니기에 소크라테스의 현상이 그토록 수수께끼처럼 여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인식했던 두 제자들의 남다른 인식의 수준도 감지됩니다.
그 시절에도 분명 수많은 사람들이 불멸을 꿈꾸고 글쓰기에 임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 수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살아남은 글들이 고전이라는 이름을 얻는 영광을 꿰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