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석 칼럼] 늦은 오후의 사랑

허석

늦은 오후다. 산책길에 나섰다가 펑퍼짐한, 쉬어가기 적당한 바위에 온몸으로 걸터앉는다. 철갑으로 무장한 벌레 한 마리가 바위에 매달려 암벽타기 하듯 힘들게 기어오르고 있다. 의아심이 발동한다. 바위 아래로 무성한 푸새가 있는데도 하필 뙤약볕 아래 저렇게 힘든 여정을 택하였을까. 

 

넓고 풍요로운 땅을 마다하고 척박한 열사의 사막인 투루판에 불가사의의 인공 지하수로를 건설한 위구르인들의 후예였던가. 바위 정상에 올라서 봐야 이끼 한 줌 없는데, 살아내려면 다시 바위를 내려올 수밖에 없을 것을 뻔히 알고도 그런 진로를 선택하는 습성과 의지라는 것이 있을까 궁금하다. 불시착인가. 방향이나 결과를 미처 예측하지 못하고 그저 앞만 보고 내달은 무모한 입지이던가. 

 

세상의 무거운 굴레를 외피로 뒤집어쓰고 저렇게 뒤뚱대는 걸음으로 언제 저 바위를 넘어설지 괜히 걱정이다. 답답할지라도 그러나, 어찌 보면 그것도 그가 원하는 자신만의 행로이다. 우리만의 관행과 관념에 길들어져서 우리 식으로 판단한 효율이고 처세일 뿐이지 그들은 또 그러한 선택의 엄연한 이유와 의미가 있는지도 모른다.

 

지인 중 한 사람이 재혼했다. 사별한 입장도 아니고 유부남과 유부녀로서, 그들의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만류와 염려를 외면한 채 서로의 사랑을 힘겹게 선택했다. 그 사랑의 숭고함이 어느 정도인지 계량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그러한 결정의 당위성에 가타부타 결론 내리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처음부터 주변의 수군거림은 많았다. 

 

부부간의 불화와 갈등의 반복으로 애정 없이 의례적인 결혼 생활을 지속하는 것보다는 지금이라도 이상형의 상대를 만나 자기가 꿈꾸는 행복을 찾는 것이 현명한 삶이 아니냐는 말도 있었고, 완벽하게 서로가 만족하고 공감하며 사는 부부는 처음부터 없는 것이니 뿌리내린 내 자리가 마음에 든다 안 든다 원망하지 않는 식물성 사랑에 의미와 가치를 두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들이 친구들 간에 충돌했다.

 

부부 이야기는 당사자가 아니면 모르는 일이라고 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서로에게 다정다감한 표정을 하고 있을지라도 실제로는 밖으로 드러내기 힘든 고통과 고충이 숨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서로 존중하고 품위 있는 모습이 겉으로 보기 좋아도 정작 당사자들은 거리감과 불편함을 느끼며 향기 없는 꽃처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혼과 이혼에 대한 관념이 솔직하고 개방적인 서양과는 달리 어쩌면 우리는 폐쇄적이고 명목적인 관습과 체면 때문에 서로의 진심을 뱀 꼬리처럼 숨겨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혼은 더 나은 삶을 위한 선택일 뿐이라고 훌훌 털어버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회적인 정서와 관계성이 발목을 붙잡는 것도 우리의 현실이다. 남들 눈에 어떠한들 부부란 본인들이 사랑하고 행복해야 할 일이 우선인 것 같다.

 

자칫 비겁하거나 치졸해지기 쉬운 중장년 나이의 사랑, 공리나 영화를 꿈꾸며 세상적인 욕심으로 판단한 궁색한 만남은 아니었을 것이다. 무미건조함이나 공허함에서 오는 일탈적인 정념은 아닌지, 마음 저편에 묻어두었던 애절한 과거의 연정에 대한 보상심리는 아닌지, 익숙함이 권태감이 되어 새로운 사랑이라는 매력적인 유혹에 대한 선망과 욕망은 아닌지, …… 그래서 순간의 열정이나 동경에서 오는 편협하고 충동적인 결정은 혹시 아니었는지 다시금 돌아볼 수밖에 없다.

 

순수하고 진실한 사랑, 머리 희끗희끗해진 나이에도 그 같은 순결한 영혼이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해 다시 한번 의구심과 궁금증이 인 것도 그런 연유에서였다. 내가 왜 여기에 와있는지도 모르게 우연히, 그렇게 기적같이 발견하게 된 이상형의 사람이 다만 내 인생의 오후쯤에 예기치 않게 찾아왔을 뿐이라는 것. 멀고 아득한 서로의 시간과 공간을 이어주는 온전한 교감과 정서가 아무래도 이 사람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숙명적 느낌 같은 것들. 그렇게 사랑이라는 감정 앞에서 나이는 단지 의미 없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라는 자기연민이 앞섰기 때문일까. 이 세상에 어떤 사랑의 정의도 ‘틀린’ 것은 없고 오직 ‘다를’ 뿐이라는 말처럼.

 

제 사랑이 아무리 아름다운 것이라 해도 사회적 규범과 관습, 상식과 통념들을 외면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그 사랑의 감성을 이해 못 한다기 보다는 그러한 사랑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성적 배타성이 세상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정당성 확보가 자신들에게는 절대적인 명제였을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가족과 쌓아온 신뢰나 추억이나 희생의 가치들도 저만큼 물러내 놓고 사회적인 공덕과 체면에도 눈길을 거둘 만큼 그렇게 절대적인 사랑이었던가. 무작정 너에게로 달려가는 것보다 한 발짝 물러서서 멀찍이서 바라보는 사랑일 수는 없었던가. 치러야 하는 대가 또한 큰 파장일 수밖에 없으니 책임 있는 선택을 위해서는 충분한 갈등과 고뇌의 검증과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가족과 주변의 지인들에게 남겨질 마음의 고통과 상처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과 과정도 동반되지 않을 수 없다. 그 충격과 황망함의 후유증을 무엇으로 치유될 수 있을까. 자식을 낳고 기르며 깨알 같은 시간을 함께한 그 정(情)만 따져도 서로를 쉽게 배반할 만큼 그렇게 가벼운 것은 아니지 않는가. 남의 행복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도 나의 행복을 거두는 지혜는 언제나 멀리 있듯 사랑과 죄 사이의 ‘타자의 윤리학’은 또 어떠하였을까. 사람이 하나로 묶이는 일이 쉽지 않은 만큼 하나로 묶인 두 사람의 끈을 풀어내기란 더욱더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모두 안타까운 마음으로 한마디씩 웃짐을 친다. 지나가는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처럼 사람 또한 살아가면서 그때그때 마음에 감성의 잔물결이 일어 설 때가 있을 것이라고. 우연히 지나친 다른 이성을 두고 무심코 눈길을 주는 경우처럼 이루지 못한 꿈같은 사랑에 대해 아련한 미련과 아쉬움에 잠기는 경우도 있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바람은 지나가는 것일 뿐 머물지는 않듯이 그런 일순간의 감정도 속으로 알고는 있으되 겉으로 흔들리지는 말아야 할 것이라고. 부부관계란 끊임없이 노력하고 희생하고 갈등을 극복하며 살아가는 과정이기에 외부로부터 자신에 대한 냉정함과 온전함이 때로는 굳건한 사랑의 버팀목이 될 수가 있는 것이라고. 그리고 지나고 보면 세상에는 특별한 사랑, 특별한 관계는 결국 없는 것이라고.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 미련은 남는다. 당사자에게는 절실하고 절박한 현재진행형의 일들이 남들 앞에서는 결과가 뻔한 일이라는 식의, 그런 일은 예전부터 있어왔고 분명 잘못된 만남이었다는 식의 과거 완료형으로 무심하게 종결되는 것도 가슴 아픈 일이다. 현실 속의 가면은 결국 우리 내면의 불편한 진실일지도 모른다. 늦은 오후에 찾아온 가을빛 같은 만남, 남들이 쉽게 가지 않는 길을 떠나는 두려움일 뿐 자기 삶은 자기의 몫이 아니겠냐고 말해주고 싶은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허석]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

저서 : [꿈틀, 삶이 지나간다]

[그 남편, 그 아내]

[시간 밖의 시간으로]

[삶, 그 의미 속으로]

천강문학상 수상

등대문학상 수상

흑구문학상 수상

선수필문학상 수상

원종린수필문학상 수상

이메일 :sukhur99@naver.com

 

작성 2023.08.08 10:05 수정 2023.08.08 10:06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한별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horts 동영상 더보기
2025년 4월 25일
2025년 4월 25일
전염이 잘 되는 눈병! 유행성 각결막염!! #shorts #쇼츠
2025년 4월 24일
2025년 4월 23일
2025년 4월 22일
나는 지금 '행복하다'
2025년 4월 21일
2025년 4월 20일
2025년 4월 19일
2025년 4월 18일
2025년 4월 17일
2025년 4월 17일
2025년 4월 16일
2025년 4월 15일
2025년 4월 14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