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석 칼럼] 닭장에서

허석

늦은 별똥 하나가 고요 속에 장쾌한 타구를 그리는 새벽이다. 닭 울음소리가 들린다. 태고의 원시성 그대로인 명징한 음률이 공명을 가로질러 꿈속까지 찾아온다. 횃대에 높이 올라서서 소리꾼처럼 창천으로 목울대를 힘껏 뽑아 올렸다가 오그라지듯 앞으로 뻗어내며 뱃속에 가두었던 모든 울음을 세상 밖으로 토해내고 있으리라. 소음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자연의 소리에 영혼이 맑고 편해진다.

 

꿈속에서 보았다. 닭장 앞에는 벌써 아버지가 헛기침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달걀 서너 개를 작은 소쿠리에 담은 어머니가 옆에서 하얗게 웃고 있다. 머리에 두른 무명수던 위에 암탉의 속 깃털 하나가 오늘의 노고를 위무하려는 듯 버들강아지처럼 나풀거린다. 잠이 덜 깬 내 손바닥에 달걀 하나가 쥐어졌다. 미소 띤 당신들의 얼굴만큼이나 따뜻하고 포실한 감촉이다. 세상을 쫓기듯 살면서 종종 날달걀 몇 개로 아침 허기를 때우던 버릇도 아마 그때의 경험에서 왔을 것이다. 정겨웠던 날들이었다.

 

눈뜨면 모이부터 찾는다고 사람들이 탓한다. 온종일 땅만 보고 모이만 쫓는 무위의 눈빛이라고 평가절하한다. 아니다. 그들에게도 하늘이 있고 날개가 있다. 하늘 집이 없고 날지 못했을 뿐, 그들의 가슴에도 지평선을 보는 영혼이 있고 창공을 훨훨 나는 기개가 엄연히 있다. 호미를 평생 손에서 놓아본 적이 없는 우리 이모, 없는 것이 죄가 되어 하늘 한번 감히 쳐다보지 못하고 땅만 보고 살았다. 등이 호미처럼 굽어 자유롭지 못한 굴신이지만 그래도 하늘을 나는 꿈은 매일 꾼다.

 

알을, 생명을 키워내고 있는 것이다. 초승달이 보름달로 변해가는 과학실 전시모형처럼, 좁쌀만 한 달걀의 태동부터 아기 주먹만 한 것까지 크기별로 씨줄처럼 엮어서 뱃속에 가두고 매일매일 생명의 원형을 세상 밖으로 내보내는 중이다. 닭이 해야 할 일은 열심히 먹어서 살을 찌우고 알을 생산하는 것이다.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역할과 사명에 조금도 흔들림 없이 충실하고도 근면한 수행이다. 영혼의 지평선은 볼 생각도 하지 않고 땅만 내려다보며 먹잇감만 노리는 인간들의 탐욕과 속악한 물성이 알고 보면 독수리의 병든 눈빛과 별반 다를 바 없다. 

 

노란 병아리들이 태어나 종종걸음 하는 따뜻한 봄날, 알을 품느라 꼬박 스물 한날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둥우리를 지킨 어미 닭을 위해 미꾸라지와 개구리를 잡으러 냇가로 나섰던 시절이 있었다. 몸보신인 셈이다. 어릴 때일수록 더 용감했던 모양이다. 손바닥보다도 더 큰 개구리를 맨손으로 잡아 길바닥에 패대기쳐서 기절시키고는 그것을 큰 깡통에 담아 푹 삶아서 닭장 속에 넣어주곤 했다. 까마귀에게는 어미를 먹여 살리는 부자의 효가 있고, 닭에게는 동료를 불러서 모이를 같이 먹는 붕우의 정이 있다고 한다. 누구 덕분인지도 모르고 모두에게 만찬이 되어 날개를 퍼덕이며 야단법석이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참 부지런도 한 것이 닭의 일상이다. 사방팔방으로 먹이를 찾아 온종일 목을 갸웃대고 뭔가를 쪼아대며 돌아다닌다. 쇠스랑 같은 발톱과 곡괭이 같은 부리로 땅을 헤집어 온갖 먹이를 잘도 찾아낸다. 풀숲을 뒤져 땅강아지나 지네를 잡기도 하고, 땅을 파헤쳐 지렁이와 굼벵이도 끄집어내고, 나무들 사이에서 온갖 씨앗이며 열매를 솜씨 좋게 찾아낸다. 알고 보면 그들의 뱃속엔 꽃도, 풀도, 모래알도, 시냇물도 자연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셈이다. 그 끊임없는 집중력에, 그것은 먹이를 찾는 습관적인 행동이라기보다는 세상살이의 부지런함은 이런 것이라는 일종의 표상으로 단정해두고 싶다.

 

가시덤불도, 진흙탕도, 땡볕 아래도 망설이거나 피하지 않는다. 곱디고운 여자의 손이 자식을 위해서는 세상에 무서운 것도, 더러운 것도 없는 어머니의 손이 되듯 붉디붉은 벼슬이 허옇게 쪼그라드는 굶주림의 희생도 마다치 않는 어미 닭을 보면 때로는 사람 같은 심성이 느껴진다. 수탉은 역시 가장답다. 맛있고 영양가 있는 동물성먹이는 자기보다 식구들이 먼저다. 암탉과 병아리들을 보호하느라 멀찌감치 떨어져 의젓하게 지켜보기도 하고, 위험이라도 닥치면 눈을 부라리며 기운차게 달려드는 위용은 내 가족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려는 결연한 수장의 모습이다. 

 

닭은 제 모이를 찾느라 열심이지 남의 것을 넘보거나 빼앗으려 하지 않는다. 혼자 먹으려 남을 쫓아내거나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방어벽을 치지도 않는다. 자기에게 주어진 공간에서, 주어진 능력대로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선하고 여린 집단의 군상임이 틀림없다. 수탉끼리 자신의 용맹과 위세를 겨루기 위한 싸움은 있지만, 먹이를 두고 다툼하는 법은 없다. 사자도 배가 부르면 사냥을 멈추는데, 아무리 넘쳐도 욕심을 채우지 못해 더 많은 먹잇감을 두고 부정과 부조리와 부도덕까지도 서슴없이 저지르는 것이 우리 인간들이다. 

 

세상 누구나 산다는 명제 앞에 부지런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무슨 일을 하든 그게 살아가는 당위성이고 자기 삶의 정당성이겠다. 하지만 결과가 아무리 화려하고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 과정이 맑고 올곧지 못하면 비록 자기에게는 훌륭한 처세였을지 모르나 남 앞에서 아름다운 모습은 되지 못한다. 무릇 박수와 감동은 그 사람의 결과가 아니라 행적으로 추적되어야 할 것이다. 인간다움으로, 성실하고 정직한 자는 그 삶이 곧 하늘의 마음이겠다. 보잘것없고 평범해 보일지라도 삶의 진정한 행복과 평화가 그들의 세계에 천상의 낙원처럼 만연하리라 믿는다.

 

며칠 있으면 멀리서 친구가 올 것이다. 각다분한 인생살이 위안 삼아 기르는 닭 한 마리 잡아 대접할 것이다. 모두 통통하게 살찐 닭들에게 어찌 순서가 있을까 마는 혹시 그중에서도 수고 없이 남의 먹이에 눈독을 들이거나, 힘만 앞세워 약한 상대를 괴롭히는 닭은 없는지 눈여겨 보아두어야겠다. 여기 닭장에서는 내가 주인이다.

 

 

[허석]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

저서 : [꿈틀, 삶이 지나간다]

[그 남편, 그 아내]

[시간 밖의 시간으로]

[삶, 그 의미 속으로]

천강문학상 수상

등대문학상 수상

흑구문학상 수상

선수필문학상 수상

원종린수필문학상 수상

이메일 :sukhur99@naver.com 

 

작성 2023.08.15 08:25 수정 2023.08.1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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