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사동에 가면 ‘귀천’이 있다. 누구는 호기심에 들르고 누구는 천상병이 그리워서 들르고 또 누구는 유명하니까 들른다. 허름하고 작은 찻집 ‘귀천’은 시인이라는 직업이 얼마나 아름답고 찬란하고 또 비참한지를 가름할 수 있다. 귀천에서 ‘귀천’을 읽으며 그의 흔적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살았던 시절의 암울함이 보인다. 그 암울함은 찬란함으로 바뀌고 찬란함은 시의 세계로 새롭게 거듭남이 보인다. 귀천이 곧 천상병인데 그는 이미 소풍 끝내고 귀천했고 ‘귀천’엔 쓸쓸한 시인의 향기만 그득하게 밀려온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돌아간다는 건 왔던 곳이 있다는 것이다. 여행은 떠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기 위해 존재하듯이 천상병은 소풍을 왔는데 그 소풍도 아름다웠다고 말한다. 그의 일생을 보면 아름다운 소풍이 아니라 악몽이 된 소풍이었을 텐데도 말이다. 입버릇처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라고 말하며 어서 소풍이 끝나기를 기다렸을지 모른다. 세상의 모든 아픔을 혼자만 짊어진 듯 그는 삶으로부터 철저하게 유린당했다. 하지만 그의 천진난만함은 그 고통마저 즐거움으로 승화시켰다. 어린아이처럼 해맑을 수 있었던 건 아마 그의 영혼은 지구에서의 소풍을 그저 하나의 에피소드로 만들어버리는 순수함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시인이 아니었다면 노숙자로 전락했을 것이다. 시라는 아름다운 영혼을 가지고 있었기에 노숙했지만 노숙자가 되지 않았고 안기부에서 받은 고통도 고통으로 끝내지 않았다. 새벽빛에 사라지는 이슬처럼, 노을이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어서 오라고 손짓하면 하늘로 돌아가리라는 희망이 있었기에 비참한 인생도 묵묵히 견디며 살아냈을 것이다. 그는 이 세상으로 소풍을 떠나오면서 ‘시’를 업고 와 이 세상에 부려놓았다. 슬프고 고통스러운 사람들은 그의 시를 읽으며 삶이 다 그런 거라고 위로받았을 것이다. 즐겁지 않은 지구로의 소풍이었지만 그래도 견딜만했으니 잘 끝낸 소풍이었노라고 자위했을 것이다.
숨소리조차 내기 어려웠던 시절 베를린으로 유학 간 학생들은 북한이 공작한 사건에 휘말리면서 동베를린간첩사건이 터졌다. 동베를린을 우리말로 음역해서 동백림사건이 되었는데 이때 그 유명한 윤이상, 이응로 등이 연루되었다. 그런데 서울에 있던 천상병이 연루되었다고 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는데 가만히 있다가 똥물이 튄 것이다. 그 시절은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고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시절이니 같은 서울대 출신이라는 것만으로 죄가 되어 안기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고 문단에서 사라지고 만다.
천상병이 고문을 당하고 나와 죽었다는 소문이 일파만파 퍼져 나갔다. 억울하고 불쌍하게 죽은 천상병을 위해 문인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천상병의 유고시집 ‘새’를 냈다. 그렇게 죽은 시인이 된 천상병은 행려병자로 오인 되어 서울시립병원에 수용되어 있던 것을 천상병을 잘 아는 누군가가 발견하고 데리고 나온다. 산 사람의 유고시집이 나온 건 유일무이한 일일 것이다. 그 무렵에 쓴 시가 ‘귀천’이니 죽음 앞에서 삶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를 노래해도 모자랄 판인데 아름다웠다고 말하니 천상 시인일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죽음 문턱까지 갔다가 죽지 않고 살아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목숨이란 원래 질긴 것이기 때문일까. 너무 억울해서 죽을 수 없었던 것일까. 소풍의 하이라이트인 보물을 찾지 못했기 때문일까. 한 사람이 우주에서 사라지면 온 우주가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일까. 그가 그때 죽지 않고 살아온 것은 우리에게 ‘귀천’을 선물하기 위함이라고 위로해 본다. 오래도록 ‘귀천’을 읽으며 쓸쓸한 인생도 위로받고 고통받는 인생도 위로받기 위함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그렇게 살아 돌아온 그는 어린아이가 되어 버렸다. 어린아이처럼 더 천진스러워지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파괴된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지독한 가난에 시달려야 했고 빈 종이에 몇 자 끄적여 선배나 후배를 찾아가 몇 푼의 돈과 바꾸어 하루하루 살아야 했다. 그에게 술은 친구이자 아픔의 치유제였다. 술로 버텨내며 시를 쓰면서 겨우 삶을 이어 나갔다. 그런 그에게 남아 있는 건 생명의 근원과 죽음 너머의 피안에 대한 것이었다. 삶이라는 지리멸렬한 수레를 안간힘을 다해 끌고 가다가 친구 동생인 목순옥 여사를 만나 겨우 안정기에 접어든다.
우리는 그를 기인이라고 부르지만, 그는 시인일 뿐이다. 천진스러운 웃음을 지닌 시인, 자주 졸고 있는 시인, 눈가에 눈곱을 달고 사는 시인, 동네 어린아이들의 친구인 시인, 아내 지갑을 열고 천 원짜리 한 장 훔쳐서 막걸리 사 먹는 시인, 그 시인을 우리는 사랑한다. 그 시인이 남긴 시를 사랑한다. 그의 시는 그의 삶과 일치하기에 우리는 그를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한다. 그는 하늘로 돌아갔다. 그가 남긴 인사동 ‘귀천’에서는 오늘도 인류애에 목마른 사람들이 기웃거린다. 나도 소풍 끝내고 돌아가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순영]
수필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