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깊은 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대학은 방학에 들고, 젊은 청춘은 어디론가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눈꺼풀이 축 처진 채 의식은 감각 없이 꿈속을 배회하는데…. 수업 종료를 알리는 벨과 함께 교수님의 말소리가 들렸다. 어디선가 들은 그 목소리, 시간의 강을 거슬러 아득하고 희미하게 들리고 있었다.
잊히지 않는 강의
한 해가 지나면서 그동안의 자료와 기록과 글을 검토하여 저장해놓기로 한다. 문서는 대부분 한글 파일로 작성해서 USB에 보관한다. 지난 자료를 다시 정리할 겸 살펴보다가 오래전 준비했던 강의 노트를 발견했다. 한때 ‘영문학 개관’과 ‘미국 문학사’ 등을 진행했으나, 새로이 문화 쪽으로 강의해보고 싶어 준비하던 과목이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끝내 해당 과목 강의가 불발되었으니, 결과적으로 강의 노트만 덩그러니 남은 셈이다. 결국, 미완의 강의로 남게 되었다.
문화론을 전공한 것이 아니니 조금 과한 욕심을 낸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관심의 폭을 확대해서 문화론까지 나아간 것일 수도 있다. ‘문화’란 광의로 해석할 때 우리의 삶에 관련된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 무렵 학문에 대한 나의 관점은, ‘학문’이란 자기 스스로 탐구하는 자율적 활동이란 생각이 뚜렷했다. 그래서 담당했던 과목뿐 아니라 새로이 준비했던 문화론이나 문화비평도 여러 책을 탐독하고 연구하면서 준비했던 과목이었다. 그래서 소쉬르, 레비 스트로스, 롤랑 바르트며, 푸코와 라깡, 알튀세 등의 이름을 보면서 눈이 커진다. 또한 프레드릭 제임슨과 앤디 워홀 등의 친숙한 이름을 되뇌고, 리오타르와 ‘시뮤라시옹’을 주창한 보드리야르, 그리고 아도르노와 벤야민의 이름을 접하면서 반갑기 그지없다.
수업 관련해서 오래전 대학 시절의 은사 한 분을 떠올린다. 영문학계에선 이름이 익히 알려진 분이었는데, 나의 대학 생활과 내적 방황이 병행되던 시절 교수님 강의를 신청해서 두어 번 듣게 되었다. 어느 학기인가 혜성처럼 나타난 장왕록 교수님은 그저 평범한 모습으로, 세상사의 고뇌 하나 없는 평온한 얼굴로, 조용조용한 어투로 우리에게 다가오셨다. 세상에 아무 일도 없듯이, 동네의 일상에 평범한 발걸음을 더하듯이 그 명성과 대비되는 조용한 행보였다. 어떤 야망도, 무게도, 위엄도 느껴지지 않는, 잔잔한 호수 위를 지나가는 미풍 같은 모습. 지금 돌아봐도 참지식인은 그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발을 뻗고자 하는 폴리페서(polifessor)들이 꽤 많았었기에, 그 모습이 얼마나 단단하고, 고귀하며, 소중한 것인가는 많은 시간이 흐른 오늘날에도 한결같게 느껴진다. 희미한 기억이지만 나는 교수님이 그 학기에 펼치는 포우의 <황금충(Golden Bug)> 내지는, 헨리 제임스의 <황금잔(Golden Bowl)>을 수강하고 있었을 것이다.
당시의 상황은 거리로 나오면 최루탄이 난무하고 검은 옷을 입은 전투경찰들이 수시로 거리를 활보하던 시절이었으니, 현실과 소설의 세계는 그야말로 격세지감일 수밖에 없었다. 몸은 강의실 의자에 앉아 있으나, 어수선한 시국 탓도 있겠지만 일천한 지식을 갖춘 학생으로선 아무리 명강의라도 그 내용을 쉽게 머리에 담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교수님은 나를 깊이, 아주 깊이, 상상의 세계 저편으로 끌고 가셨다. 강의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린 후에도 나는 그 깊은 세계에서 쉽사리 빠져나올 수 없었다. 한동안 정신이 마비된 듯 꼼짝 못 하고 있다가, 여기저기서 의자가 삐걱거리고 수강생들이 한, 두 명씩 빠져나가면서야 의식이 현실로 돌아오곤 했다. 교수님은 어떻게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그렇게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 넘나듦은 지식이 짧고 학문적 소양이 부족했던 내겐 학기 내내 신비롭고도 피해 갈 수 없는 고통이었다.
민주화 요구가 한창이던 그해 나는 입대를 했다. 혹독한 기본 군사훈련을 마치고 임관한 뒤 특기 교육을 이어가면서, 올림픽과 민주화의 열기는 내게서 아득히 멀어져 갔다. 돌아보면, 몇 달간의 육체적· 정신적 고립은 인간을 저 멀리 외딴 세계로 인도하기에 충분한 것 같다. 그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이후 배치된 기지에서 혹한의 겨울을 보내고 난 뒤 모교를 찾았을 때, 얼핏 누군가로부터 교수님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교수님이 해안에서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셨다는 얘기였다. 안타까움이 컸다. 그 안타까움은 긴 시간이 지나 다시 그분의 딸에게로 이어진다. 바로 서강대에서 강의하셨던 장영희 교수다. 그분과는 일면식도 없으나 그녀의 에세이 <영문학 산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분이 안고 있는 따뜻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 책이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때쯤 아는 교수님으로부터 국제교육원 강좌를 의뢰받으면서 구상했던 과목의 콘텐츠가 ‘문학산책’이라는 큰 주제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우연하기도 하거니와 호기심이 부쩍 발동해서 책을 구입해 읽으면서 장영희 교수의 깊은 식견과 마음의 지평을 탐색할 수 있었다. 더불어 장왕록 교수님이 각별하게 애정을 보이셨다는 장영희 교수의 사연이 봄눈처럼 애잔하게 가슴에 녹아났다.
사람은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나도, 두 부녀의 사연은 내게 그렇게 남아있다. 세월이 흘러 그때 교수님이 강의하셨던 작가와 작품을 돌아보면서, 어떻게 하면 교수님이 하셨던 ‘그런 강의’를 할 수 있을까는 내게 늘 고민거리가 되었다. 만일 교수님 강의를 대학원 시절에만 들었어도 나는 그 비법을 매우 철저히 파악했을 것이다. 그리고 답습하고자 무진 노력했을 것이다. 너무 오래전 일이고, 너무 철없던 시절이라 교수님의 놀라운 강의는 어렴풋이 그 느낌만이 기억에 남아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 강의는 잊히지 않는 강의로 기억된다.
잊히지 않을 글쓰기
강산이 조금씩 변하듯, 나의 관심 영역도 조금은 궤를 달리하게 되었다. 관심의 범주에서 꽤 벗어나 있던 한국소설과 시, 그리고 수필도 짬짬이 읽으면서, 그동안의 치우친 문학편력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그 후 뒤늦게 시작한 글쓰기를 핑계 삼아 미치너, 하루키 등의 작품이 책상을 점하고, 이후 레이먼드 챈들러나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들도 다시금 보게 된다.
관심이 강의에서 글쓰기로 옮겨간 시점에서, 어떻게 독자를 끌고 다른 세계로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된다. 눈이 푹푹 내리는 날, 흰 당나귀를 타고 떠나듯 나도 그 누군가를 그렇게 따스하고 깊은 세계로 끌고 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문밖에 서성인다. 그 오래전 읽었던 야스나리의 ‘설국’을 회상하면서, 눈이 첩첩 쌓인 설국으로 어떻게 빠져들 수 있을까를 고민해본다.
그러고 나니 제임스 벨(James S Bell)이 하는 말, “걱정하게 될 것을 걱정하지 마라”는 말이 스쳐 가기도 한다. 그 말을 위안 삼아 힘을 내기로 한다. 말복을 보낸다. 우선 자신을 좀 먹이기로 한다. 닭에게는 잔인한 칠월과 팔월. 다소의 미안함을 뒤로하고 중단된 마음의 밭을 갈 때다. 무더위에 몸이 힘들어도 생각은 이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동안 잊었던 윌리엄 사로얀(William Saroyan)이 웃으며 다가와 말한다.
“진짜 작가는 결코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반항아다.”
[신연강]
인문학 작가
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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