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변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가정의 해체 소식이 들려온다. OECD 국가들 가운데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십 년 이상 압도적 1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기사에 이어, 이혼율마저 세계 3위까지 치솟았다는 통계자료가 발표되었다. 그리 바람직스럽지 않아 보이는 것에는 성적이 어찌 그리 잘도 쑥쑥 올라가는 민족인지 도무지 이해 불가한 일이다.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혼율이 가장 낮은 축에 속했던 우리가 아닌가. 그랬던 것이, 어쩌다가 세계 1위 자리를 넘보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는지 참 씁쓸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이 얽히고설켜 있을 것이지만, 어쭙잖은 판단으로는 부부간의 대화법이 단단히 한몫을 차지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가장 거슬리는 부분이 호칭 문제다. 요즘 젊은 부부들이 상대방을 부르는 호칭은 대다수가 ‘여보’ 혹은 ‘당신’이 아닌 ‘니’다. 서로 간에 말을 건넬 때 “니가 어쩌고저쩌고~”, “니가 이렇고 저렇고~” 이런 식이다. 우리말의 구조상 ‘니’라는 호칭어를 쓰면 그 뒤에 이어지는 서술어로 절대 존대의 표현이 따라올 수가 없게 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잘 나가다가도 조금만 수가 틀리면 바로 듣기 불편한 소리가 오가고, 사소한 티격태격거림이 점점 험악한 말다툼으로 번지면서 급기야 “우리 깨끗이 갈라서자” 하는 과격한 언사가 식은 죽 먹듯이 튀어나온다.
지난날엔 부부 사이에 서로 존댓말을 썼다. 아내가 남편에게는 물론이거니와, 남편도 아내한테 말을 함부로 놓아서 하지 않았다. 그랬던 것이, 개화와 함께 서양 풍습이 들어오면서 부부 사이의 대화법이 그만 격을 잃어버렸다. 처음엔 남편들만 아내에게 반말을 썼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아내들도 차츰 남편한테 반말로 응대하기 시작하면서 마침내 서로 간에 너나들이로 바뀌고 만 것이다.
물론 서로 사이가 좋을 때는 별반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쩌면 오히려 친근감이 돈독해질 수 있을 성싶기도 하다. 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게 변하는 순간 완충장치가 무너져 순식간에 관계가 틀어지고 만다. 상대에 대한 존중은 호칭에서부터 말미암는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는 결코 바람직스럽지 못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아내에게 존댓말을 쓴다. 애초부터 그렇게 한 것은 아니다. 처음 가정을 가졌을 시절에는 물색없이 반말을 해댔다. 그 당시는 아예 그것이 천박스러운 말버릇이라는 인식조차 하지 못했었다. 주위의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다들 그렇게 쓰니 그게 너무도 당연한 것인 줄로 받아들였다.
그러다 불혹의 나이를 넘어서면서 알량한 식견이나마 돌아나자, 그때까지의 말버릇이 얼마나 못나고 부끄러운 처신인지 비로소 깊이 뉘우치게 되었다. 아내한테 반말을 사용하는 것은 아내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의 격을 떨어뜨리는 행위라는 깨달음이 오고 나서다. 그 이후부터 아내에게 말을 건넬 때 높임말을 쓰기로 작심한 것이다.
습관은 들이기 나름이라고 그랬던가. 십 년이 넘어 되도록 죽 반말을 써오다 갑자기 존댓말로 바꾸려니 처음 얼마간은 겸연쩍고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듣는 당자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하루, 이틀, 사흘……, 그렇게 쓰다 보니 시나브로 자연스러워졌다. 이제는 오히려 자기 아내한테 반말을 하는 이들을 만나면 내심 상스럽게 여겨지면서 나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보게 된다.
부부가 서로 존댓말을 쓰면 그만큼 다툴 일이 줄어들고, 설사 피치 못하게 충돌이 일어난다 해도 극한상황으로까지 치닫지는 않는다. 굳이 중재자가 없어도 말이 중재자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이 점이 존댓말이 지닌 긍정의 힘이며, 부부간의 대화에서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이는 여러 이유 가운데 가장 좋은 이유일 법하다.
요즘 젊은 부부들이 서로 “니가 어쩌고저쩌고”, “니가 이렇고 저렇고” 하는 격 떨어지는 말버릇을 바꾸지 않는 한 가정의 해체는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게 불 보듯 뻔하다. 만일 이 쓴소리가 신세대들이 나이 든 세대들을 비꼬아 일컫는 이른바 ‘꼰대’의 오지랖 넓은 참견쯤으로 들린다면, 그들에게 앞날의 가정의 평화는 절대 담보되지 못할 것이라고 나는 감히 확신한다.
세상의 부부들이여! 지금 이 순간부터 서로 간에 존댓말을 쓰도록 하는 것이 어떨까, 소중한 가정의 평화를 오래오래 지키고 싶다면.
[곽흥렬]
1991년 《수필문학》, 1999년《대구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우시장의 오후』를 비롯하여 총 12권 펴냄
교원문학상, 중봉 조헌문학상, 성호문학상,
흑구문학상, 한국동서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받음
제4회 코스미안상 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