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출발에는 뭔가 마술 같은 것이 좀 있었다. 오늘이 내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기로 되어있었던 날이다. 나는 이것을 알고 잘 기억하고 있었고, 심지어 아침에 목욕하면서도 이 순간을 잊지 않으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오늘,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까? 도착이라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끝이라고 해야 하는지 아니 새로운 시작이라고 해야 할지 정의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시작이라고 해야 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굳히기로 했다.
바깥은 칠흑 같은 어둠에 덮여있는데, 아마도 한밤중인 것 같았다. 우리가 5시에 일어나기 시작한 이래 이론적으로 따져보면 대충 이게 맞는 것 같다. 그레이엄 바 씨 가족이 집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전에 함께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내 카미노 친구들이 일찍 일어나 준 것이 고마웠다.
대략 평소처럼 출발했다고 생각는데 하르트무트가 혼자 걷겠다고 할 때 좀 당황했다. 산티아고에 접근하자 매우 중요한 것이 하나 있어서 그는 혼자 생각을 모으기로 했던것이다. 나는 즉시 이것이 의미 있는 것임을 알았고, 이런 행동양식에 대해 고마웠다. 내가 진작 그걸 생각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이게 처음이 아니므로 나는 이 모든 것을 예견하고, 그들을 깊이 생각하고 앞서 계획을 세워 더 좋고 의미 있는 경험을 만들어주기 위한 능력을 내가 가졌어야 했는데……. 나는 이것을 따라 배우기로 결심했다. 우리는 각자 약 10분 간격으로 떨어져 출발했다.
칠흑 같은 새벽을 뚫고 나가는 것은 약간 벅차고 감격적인 일이다. 나는 순례길 이정표인 노란 화살표가 사라진 것을 알았다. 어둠도 어둠이지만, 거리엔 안개가 자옥했다. 출발 후 잠시 있다가 지금까지 내가 본 것 중에서 가장 굵고 묵직한 빗줄기가 내려 퍼붓기 시작했다. 재빨리 비옷을 꺼내 입었지만 이미 다 젖어버렸다.
완전히 불을 밝힌 큰 사무실 빌딩 하나가 희미한 어둠 속에서 빛을 내며 이정표 같은 신호가 되어 있었다. 창문을 통하여 보니 심지어 책상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침 7시 이전부터 저렇게 열정적으로 일하는 직원들이 있다니 저 회사는 도대체 어떤 회사일까 생각하며 살펴보니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국이었다. 여러 가지로 인상적이었다.
우리들이 여권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고 들었던 산 마르코를 지날 때까지 여전히 어두웠다. 산 마르코 몬테 데 고즈도의 스탬프 찍는 곳엔 문을 열지 않았다. 너무 일러서 그렇다고 추측했다. 아마도 오늘 산티아고에서 마지막 스탬프를 찍어야할 것으로 보였다.
오늘이 특별한 여행의 절정인데 내가 기대했던 만큼 새벽은 환상적이 못했다. 반면 낮은 구름이 뒤덮여 오히려 칙칙하고 눅눅하기만 했다. 나는 여기 이 길에서 고든의 마지막 발걸음을 상상했다.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는 산티아고를 바라본 것에 대해 내게 설명했던 것이 기억났다. 실제보다는 감질나게 너무 가까이 보였다고……. 내게는 그런 풍광이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 성당이 처음으로 나타났을 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너무 커서 옆으로부터 접근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처음에는 그것을 보지도 못했다. 하르트무트가 내 앞에 있는 광장에서 사진을 찍으며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다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내 뒤에는 성당 밖에 보이지 않았다.
성당은 일부 공사용 비계가 설치되어 있었고, 길을 지나오면서 본 것 중에서 아마 가장 아름다운 그런 성당은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그 압도적인 크기와 그 상징성을 본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광장과 공원이 매우 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하르트무트와 나를 제외하면 거의 텅텅 빈 상태였다.
나는 레코드판이 막 멈춘 것 같은 특이한 고요를 느꼈다. 아마도 이것은 성취의 소리와 느낌일 것이다. 우리는 해냈다! 이것은 도저히 믿기 힘든 깊은 마음속의 소원이 이루어진 느낌이었다. 정말 믿기 어려운 기분이었다.
바로 그때 마술처럼 치아라와 프란체스코가 나타났다. 그들은 순례여행 첫날 론체스발레에 있는 수도원의 2층 침대 방을 나와 함께 사용했던 사람들이다. 이게 무슨 완벽한 순환인가! 그들은 마치 내 여행을 끝내기 위해 보내진 사람들 같았다. 그때 때맞추어 제이드와 죠지도 나타났다. 너무 기뻤다.
치아라와 프란체스코는 하루 전에 도착하였으며 다시 대서양에 있는 피니스테레로 걸어서 여행하기 위해 막 떠나려는 참이었다. 우리는 혼타나스에서부터 그들을 볼 수 없었다.
우리가 이렇게 광장에서 인연을 통해 마음의 창을 경험한다는 게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마지막 시간을 통과해 지나가는 그들을 가까스로 만나 같은 장소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가.
나는 순간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또 하나의 멋진 기회의 창을 보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레이엄 바 씨 가족과 아침식사를 하는 날이다. 그들의 집으로 가는 비행기는 오늘 아침 떠난다. 간단하게 사진을 찍은 후, 우리는 그레이엄 바 씨 가족들이 창문을 내다보며 오래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산 프란치스코에 있는 수도원으로 내달렸다.
얼마나 기쁜 만남인가. 에든버러에서 고든의 장례식이 있었던 그 주말로부터 약 7개월 후의 첫 만남이었다. 아침 뷔페식당 옆에서 그레이엄 바 씨를 만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데 즐거움 곁으로 눈물도 따라왔다. 이 만남의 강렬함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일이었다. 순례여행 동지들은 그레이엄 바 씨 가족이 내게 얼마만큼 의미가 큰지 알게 해주었고, 그레이엄 바 씨 가족에게는 지난 몇 주를 함께한 이렇게 멋진 친구들을 또한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내 마음 속에는 고든이 했던 말이 맴돌고 있었다. 2년 전 고든의 순례여행 마지막 주였다. 그곳에서 그레이엄 바 씨를 만났을 때, 그와 함께 쉽게 흐르는 대화는 큰 위안이었다고 말했었다. 나는 이제야 그가 친한 고등학교 친구인 그레이엄 바 씨를 데리고 이 치열한 순례여행에 오기 전 느꼈던 감정을 내게 설명한 것을 이해할 것 같았다.
그레이엄 바 씨 자신은 우리들 두 세계가 충돌할 것을 알고 있었다. 며칠 전 그는 메시지를 통해 “내가 순례를 통해 동료들과 깊은 유대를 맺었다”고 말하면서 ‘맨 마지막 단계에 합류하는 사람은 침입자처럼 느껴질 것이다.’라고 했었다.
그러나 우리 8명이 크고 등근 아침식사 테이블에 둘러앉았을 때, 실컷 웃고 이야기하며 우리들 모두의 세계가 모인 이 자리가 너무나 즐거웠다. 나의 세계, 고든의 세계, 그레이엄 바 씨 가족의 세계, 순례의 세계, 그리고 얽히고설킨 세계의 경이로운 결합이 너무 기뻤다.
나는 이 아침 식탁에서 식사를 하며 정확하게 순례여정을 끝내는 것보다, 산티아고에 더 순조롭게 도착하는 것이 더욱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고든과 나를 둘러싸고 우리를 지켜주며 응원해 주기 때문이다. 저 하늘에 숨은 수많은 별들 중 그 어딘가에 있는 고든의 별에 그렇게 쓰여 있을 것으로 나는 확신했다.
10시 30분에 우리는 작별인사를 해야 했다. 그레이엄 바 씨 가족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콤포스텔라 스탬프를 찍기 위해 즐거운 걸음으로 순례여행 안내소로 향했다.
[이수아]
줄리아드음대 졸업
스코틀랜드 국립교향악단 단원
스코키시체임버오케스트라 수석 첼리스트
스코틀랜드청소년오케스트라 상임고문
Mr. Mcfalls Cahmber 창립맴버
이메일 : sua@sual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