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무르고 약하게 태어나기 때문에 힘이 필요하고, 아무것도 없이 태어나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하며, 어리석은 채로 태어나기 때문에 판단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태어날 때 갖지 못했지만 어른이 되었을 때 필요한 모든 것을 교육에서 얻는다.
- 장 자크 루소,『에밀』에서
오늘 아침 인터넷 뉴스를 훑어보다가 ‘헉!’ 가슴이 막혀왔다.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전의 한 초등학교 교사, 그의 동료 교사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수업을 하고 있는데 4명 중 한 친구가 갑자기 수업 시간에 일어나서 제 엉덩이에 똥침을 했다... 손깍지를 끼고 손가락 두 개를 위로 올려서 엉덩이에다가 딱 찔렀다.”
‘아, 이게 현실인가!’ 이런 일을 당한 교사가 학부모를 학교에 오라고 한다면, 부모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혹여 부모들이 “뭘 아이들 장난 가지고 그러시냐?”고 하지 않을까? 나의 이 생각이 너무나 무섭다!
나는 가끔 ‘버릇없는 아이들’을 본다. 카페에서 마구 뛰어다니는 아이들, 하지만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다. 이미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랬다가는 저 부모들이 가만히 있지 않아.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라.’
왜 부모들은 아이들을 버릇없는 아이로 기르는 건가? 다들 왕자님, 공주님 대접을 받으며 자라는 것 같다. 그런데 아이들이 커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왕자님, 공주님으로 살아갈 수 있는 아이가 몇 명이나 될까?
나는 우리 아이들을 시골에서 자라게 했다. 나는 아이들을 기르는 데는 시골 마을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마을에서는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다. 그러면서도 지켜야 할 도덕과 윤리를 배울 수 있다.
다른 아이들과 싸우며 함께 크게 된다. 나는 아이들은 싸우면서 커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루소는 교육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태어날 때 갖지 못했지만 어른이 되었을 때 필요한 모든 것을 교육에서 얻는다.”
문제는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시킬 것이냐?’일 것이다. 삭막한 도시에서 어떻게 아이들을 잘 가르칠 수 있을까? 그저께 ㅂ 독립서점에 갔다가 아이들을 데리고 온 ㅇ 초등학교 선생님을 만났다. 그분은 공부모임에 오는 분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 한 바퀴를 돌고 계시는 선생님, 얼마나 멋진가! 아이들은 삶 속에서 배워야 한다. 요즘 가정은 대개 아이들이 한두 명이다. 홀로 자라게 되면 사회성을 배우게 될 기회가 줄어든다.
이런 아이들을 마냥 왕자님, 공주님으로 기르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들은 ‘말을 듣지 않는 백성들’에게 마구 칼을 휘두르게 될 것이다.
함께 나누며 자란 아이들은 관대함을 배우고
정정함 속에 자란 아이들은 진실된 삶을 배우고
공정한 대우를 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정의를 배우고
친절함 속에 자란 아이들은 남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고
평안함 속에 자란 아이들은 사람에 대한 믿음을 배우고
다정함 속에 자란 아이들은 세상이 살기 좋은 곳임을 배운다
- 도로시 로 놀테, <아이들은 생활에서 배운다> 부분
아, 우리 아이들은 지금 어떤 환경 속에서 자라고 있는가?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