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時論] 평화는 꿈, 전쟁은 현실

여계봉 선임기자

​2022년 2월 24일 새벽 4시경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영토를 침공하면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났다. 러시아의 일방적 승리로 곧 끝날 것 같았던 이 전쟁은 1년 8개월째 장기화되면서 전쟁의 끝이 보이지 않는 교착 상태에 빠져들었다. 

 

그동안 전쟁 당사국의 수많은 인명 피해는 물론이거니와 세계적으로는 금리, 원자재, 에너지와 곡물가 폭등 등 경제적 피해가 엄청난 실정이다. 그런데 러시아-우크라이나에 이어 또 다른 전쟁이 중동의 화약고에서 막 시작되었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는 유대교 안식일인 7일, 이스라엘을 겨냥해 5천 발 이상의 로켓포를 발사해서 수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동시에 무장 대원들을 이스라엘로 침투시켜 이스라엘 군인들과 외국인을 포함한 다수의 민간인을 죽이거나 인질로 삼았다. 또 이스라엘의 보복 공습으로 가자지구에서도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 

 

분쟁 발발 나흘 만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 사망자는 2,000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되었으며, 양측 부상자 수도 7천 명 이상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스라엘이 ′피의 보복′을 다짐하며 가자 지구 진입을 서두르고 있어 앞으로 지상전까지 벌어지면 그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이 레바논, 시리아 등 인접 국가로 전이돼 국제 분쟁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이 신(新) 중동전쟁으로 확전될 위험이 커진 상황에서 이란의 지원을 받는 헤즈볼라의 참전 여부가 확전의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70년 이상 이어져 온 두 나라의 분쟁 역사를 통해 그들의 신이 말한 ‘평화’는 보이지 않고 오히려 양측 모두 민족과 종교가 다르다는 사실을 명분 삼아 서로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려는 모습만 두드러져 보인다. 

 

우리 인류사는 곧 전쟁의 역사다. 전쟁 연구가들에 따르면,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황허 유역 등에서 문명사회를 이루기 시작한 이래로 지난 3,400년 동안 전쟁이 없었던 기간은 겨우 268년이라고 한다. 지난 20세기도 100년 내내 전쟁으로 얼룩졌다. <파리 대왕>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영국 소설가 윌리엄 골딩이 "20세기는 폭력의 세기"라고 한탄했듯이 두 차례에 걸친 세계 대전과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 이란-이라크 전쟁, 걸프 전쟁, 발칸 내전 등 유혈 분쟁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70억 인구가 살아가는 21세기 오늘의 세계도 평화와는 거리가 멀다. 한 해 동안에 1,0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낳은 전쟁들이 해마다 15건 정도 벌어지고 있다. 전쟁이 낳는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민간인 희생자가 군인 사망자보다 더 많다는 점이다. 한 전쟁 연구에 따르면, 1900~95년 사이의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는 총 1억970만 명이며, 이 가운데 민간인이 6,200만 명으로 전투원보다 더 많이 죽었다고 한다. 민간인 희생자의 상당수는 무차별 포격과 공습에 따른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휴전국이기 때문에 이 전쟁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전쟁의 비극과 참혹한 실상은 우리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체험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겪고 싶지 않은 일이다. 이를 겪었다는 것은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평화를 꿈꾸며 임진강의 DMZ 철책을 걷고 있는 사람들

 

지난 3,000년간 인간은 평화를 꿈꿔왔지만, 전쟁은 언제나 인간의 삶을 파괴하며 아직도 우리 곁에 맴돌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정전이 아닌 휴전상태가 지속되는 중이다. 인류 역사상 전쟁은 한시도 멈춘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평화라는 이상이 전쟁이라는 현실에 번번이 밀려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째서 인간은 그 이상을 실현하지 못하는 것일까? 우리에게 진정한 평화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에게 인간에 대한 존경은 과연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권력 쟁탈 3,000년』에서  "전쟁은 수평선에 걸린 불길한 먹구름처럼 언제나 거기에 있었다."라고 언급한 저자 조너선 홀스래그는 BC 1,000년부터 지금까지, 3,000년 동안의 전쟁과 평화의 역사를 살펴보며 전쟁이 평화보다 우세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주목한다. 저자는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이 ′몇 가지 반복되는 원인′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저자는 이 방대한 역사 안에서 시대와 지역을 가로질러 반복돼 온 패턴을 찾아내고, 전쟁에 관한 우리의 일반적인 관념을 뒤흔들며, 국제정치의 본질을 파헤치는 질문을 던진다. 상업과 무역은 정말로 국제 평화를 증진할까? 민주주의와 참여가 전쟁을 예방할 수 있을까? 전쟁은 권력에서 비롯되는 보편적 죄악인가? 지정학적 긴장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지금, 저자는 인간이 지금까지 어떤 길을 선택해 왔는가를 규명하며 우리가 평화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한다. 

 

저자는 전쟁이 시작되는 원인을 크게 네 가지로 제시한다. 전쟁이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지배자의 권력과 야심′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대부분 이러한 정복 전쟁은 ‘정의’라는 명분으로 치장되었는데, 나라의 힘이 너무 커져도, 너무 작아져도 전쟁은 일어났다. 국가의 힘이 강해지면 인근 지역을 정복하려고 공격했다. 이와 반대로 정치체제가 힘을 잃었을 때도 전쟁은 쉽게 일어났다. 정치체제가 힘을 잃을 경우, 이웃 나라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쳐들어오게 마련이었다. 지금으로부터 3,000년 전인 BC 1,000년경에도 전쟁은 이미  "큰 이익이 되는 사업"이었다. 서민에게는 고통과 슬픔만을 안겨 줄 뿐이었지만, 적어도 지배자들에게는 금은보화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따라서 힘 있는 지배자들은 대개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켰고, 반대로 힘을 잃어 가는 지배자들은 다른 정치체제에 간섭당하고 몰락하게 마련이었다. 

 

두 번째로 ′안보 강화′다. 한 나라가 안보를 강화하기 시작하면 주변 나라들은 불안해한다. 안보력을 키우는 게 공격을 위한 것인지 방어를 위한 것인지 속내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안보 경쟁은 결국 전쟁으로 이어진다. 지금처럼 세력 간 경계가 명확하지 않았던 시대에는 가능한 한 적을 국가 중심으로부터 멀찍이 밀어내는 것이 최선의 안보였기 때문이다.

 

상업 활동을 위해 중요한 교역로를 장악하고 그 수익을 차지하려는 ′욕망′도 전쟁의 한 원인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실크로드′로, 파르티아제국, 쿠샨제국, 흉노 연합국 등이 부를 보장해 줄 실크로드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벌였다. 중국이 서부 진출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을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경계의 눈초리를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은 지나친 ′종교적 신념′이다. 종교가 달라도 서로 협력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기독교, 이슬람교 등 모든 종교와 신념은 반드시 성전(聖戰)을 일으켰다. 역사상 많은 종교가 평화를 이야기하고 사랑과 자비를 설파했지만, 그 한편으로는 모두 전쟁의 원인과 근거가 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십자군 전쟁이며, 지금 벌어지고 있는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도 대부분이 이슬람교도인 팔레스타인과 유대교도인 이스라엘의 바로 ′종교적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저자 조너선 홀스래그는 말한다. "전쟁은 어쩌다 실수로 일어나는 특별한 사건이 아닌 어느 시기, 어느 지역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보편적인 사건이며, 평화를 만드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듯이 ′도덕′이나 ′이상′이 아니라 ′전쟁의 공포′"라고 말이다. 저자는 3,000년 동안의 전쟁과 평화의 역사를 조감하며 "인간의 도덕성에 기대어서는 평화를 유지할 수 없다"라고 결론을 내린다.

 

′안보와 탐욕′은 동전의 양면이다. 하지만 인간의 욕구는 충족되지 않으며, 발전은 새로운 욕망을 낳는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서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모두 그들이 성취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지만, 전쟁의 결과는 그들의 의도와 무관하게 끝나는 법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세계적인 평화를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저자가 내린 결론처럼 ′전쟁의 공포′만이 평화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인가? 좀 더 도덕적인 방법으로 평화를 유지할 수는 없는가? ′문명과 야만′의 기로에서 우리 인류가 선택할 수 있는 문명의 길은 과연 무엇일까. 저자는 우리에게 많은 숙제를 안기며 이 책을 맺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을 통해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이유는 충분하다. 

 

[여계봉 선임기자]

수필가

공학박사

이메일 :yeogb@naver.com

 

작성 2023.10.12 09:45 수정 2023.10.13 11:28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여계봉기자 뉴스보기
댓글 1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박혜수님 (2023.12.13 14:25)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입니다.
댓글 수정-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