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전 어느 날이었다. 손이 이상했다. 갑자기 오른손 새끼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관절이 굽혀지지 않아 주먹을 쥐어도 새끼손가락 혼자만 볼썽사납게 뻣뻣한 채로 있었다. 다른 손으로 억지로 구부리면 뚝뚝 뼈마디 꺾이는 소리가 나고 살짝 아프기까지 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겠지 했는데 한방 침을 맞아도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낭패였다.
심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젓가락질이나 키보드 작업할 때 조금 불편하기는 했지만, 실생활에 크게 지장을 주는 일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 길이도 짧고 굵기도 가늘어 볼품없는 새끼손가락 아닌가. 사랑의 언약이나 선물 약속할 일도 따로 없으니 굳이 새끼손가락이 나설 일도 없었다.
다만 남의 눈에 조금 거슬려 보이는 것에 신경이 쓰였다. 손을 내놓고 있을 때 새끼손가락 혼자만 펼쳐져 있거나 구부러져 있어서 습관상 일부러 그런 것처럼 오해를 사거나 불편해 보이기도 하는 게 문제였다. 남 앞에서는 슬며시 손을 숨기고 관절을 꺾어 제자리에 돌아오게 하곤 했다.
미국에 이민하였을 때 처음에 사이딩(Siding)이라는 일을 했었다. 횡으로 된 긴 패널을 건물 외벽에 못으로 부착시키는 일이었다. 온종일 망치로 두드리고 큰 가위로 건축자재를 절단하다 보니 손에 통증이 심했다. 같은 동작을 수없이 반복하느라 손가락에 충격이나 무리가 갔었나 보았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요량도, 요령도 없었다.
몸을 써서 살아보지는 않았다. 손이란 그저 공부나 하고 사무실에서 볼펜을 쥘 때나 쓰는 일인 줄 알고 살았다.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자랐지만, 아버지가 조그만 사업을 한 덕분에 농사 연장 한번 쥐어보는 일 없이 넉넉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이민을 하기 전 한국에서의 직장생활도 넥타이 맨 사무직이어서 현장 노동일과는 처음부터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처럼 평탄한 인생이었다.
미국에서 몸으로 사는 일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나라에서 필요로 하지 않는 재주나 능력은 더 이상 효용 가치가 없었다. 돈도, 인맥도, 사회적 기반도 없는 곳에서 눈앞에 보이는 일들은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노동자의 일밖에 없었다.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온몸이 욱신거리고 끙끙 앓느라 밤새 잠을 못 이루곤 했다.
삶의 곡절은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이민하게 되었지만, 언어도, 환경도 낯선 곳에 새롭게 정착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인간만큼 적응 능력이 뛰어난 생명체도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손은 귀하거나 천한 것도 없고, 곱거나 거친 것도 없고, 깨끗하고 더러운 손도 없다는 것을 눈치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후 그 일을 그만두고 다른 직업을 가졌지만, 여전히 손가락 신경은 정상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과거 막노동을 해봤다는 증표처럼 꿋꿋하게도 그 자리 그대로를 지켰다. 큰 병도 아니고 심각한 장애도 아니어서 이제는 평생 고칠 수 없는 일이려니 아예 체념하고 산 지가 20여 년이 지났다.
어느 날이었다. 글씨를 쓰는데 새끼손가락 움직임이 뭔가 달라진 느낌이었다. 구부리지도 않은 손가락이 이상하게도 약지 밑에 얌전히 굽혀져 있었다.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하나씩 펴보았다. 뜻밖에도 새끼손가락이 홀로 구부러지고 펴지고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자고 일어난 새가 의식하지 않아도 날갯짓을 시작하듯 처음부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손가락도 저절로 원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얏호!”였다. 거추장스러운 외투 하나 벗어던진 것 같았다. 기적이라고 하기에는 겸연쩍지만, 암으로 병들었던 몸도 열심히 살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회복이 되더라는 이야기처럼 신기한 일이었다. 신체의 흐름을 가로막고 있던 미세한 신경세포 중 하나가 저절로 풀렸기 때문이리라. 뒤늦게 뭔가 결자해지라도 한 기분이었다.
인간관계도 그런 예기치 않은 일의 반복이 아닌가 싶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이해관계 때문에 좋지 않은 인연들도 갖게 되는 게 사실이다. 알고 보면 대부분 오해와 소통 부족에서 오는 것인데도 한번 깨어진 신뢰의 원상회복이 쉽지 않다. 영화의 미장아빔 기법처럼 그때그때 원망과 미움이 자꾸만 되살아나서 오랫동안 마음에 가시처럼 품고 있는 때도 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아끼고 배려하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그저 나를 보듯 남을 보면 될 텐데 그게 어려웠다.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라고 내 처지에서만 주장했다. 이런 일, 저런 일로 이루어진 세상을 좋은 일, 나쁜 일로만 구분하며 살았다. 알고 보면 세상 앞에 약자(弱者) 아닌 사람 없는데 서로 위로하고 격려해주지는 못할망정 그 약자들끼리 헐뜯고 비난하며 살아온 셈이었다.
사람과의 감정의 골도 때가 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아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이가 들도록 번외 하며 살았던 상처와 굴레도 내려놓고 묵은 체증 내려가듯 마음의 짐도 홀가분하게 벗어났으면 좋겠다. 치유는 나에게 달려있다. 이제는 마음이 결자해지할 차례인 것 같다.
[허석]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
저서 : [꿈틀, 삶이 지나간다]
[그 남편, 그 아내]
[시간 밖의 시간으로]
[삶, 그 의미 속으로]
천강문학상 수상
등대문학상 수상
흑구문학상 수상
선수필문학상 수상
원종린수필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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