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명희의 인간로드]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

전명희

나는 이천사백구십여 년 전 인간 ‘소크라테스’다. 석공인 아버지 소프로니스코스와 산파인 어머니 파이나레테 사이에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난 아테네는 맑고 쾌청한 날씨와 넓고 푸른 바다가 사방으로 펼쳐져 있는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이다. 강렬하게 내리는 태양 덕분에 포도와 올리브가 잘 자라고 사람들은 온화하고 순해서 서로 다툼이 없고 평화롭게 살아갔다. 알알이 익어가는 포도와 올리브는 사람들의 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고 맛있게 숙성되어가는 와인을 맛보는 것도 아테네에 사는 행복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자연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공부하는 즐거움에 빠져 하루 대부분은 책을 읽으며 지냈다. 특히 자연 만물을 자연적 방법으로 이해하고 원소들의 혼돈에 질서를 부여해 만물의 원리인 누스를 강조한 아낙사고라스 책을 읽으며 세상 이치를 깨쳐 갔다. 

 

외모지상주의 풍조가 아테네에서 유행했지만 나는 외모에 관심이 없었다. 옷은 그저 몸을 가릴 정도만 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누더기를 걸쳐도 상관없었고 또한 신발을 신지 않은들 뭐가 대수인가. 아버지를 따라 석공 일을 해서 몸은 단단하게 단련이 되어 있는 터라 건강에는 자신이 있었다. 오히려 겉치레에 신경을 쓰지 않다 보니 정신력만 날로 단련되고 세상을 보는 눈이 뜨였다. 한 번은 아테네 시민들이 모인 아고라에서 외모가 출중한 제자 한 명이 나를 찬양했는데 그 제자의 외모가 얼마나 뛰어났는지 나와 비교되었다. 그 덕분에 세간의 관심거리가 되어 나는 아주 못생긴 사람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그리스는 귀족정과 민주정의 갈등이 더욱 심해졌다. 그중에 아테네의 세력이 점점 커지자 이에 두려움을 느낀 스파르타인들이 전쟁을 일으켰다. 나는 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중장보병으로 참전했다. 모든 전쟁이 그러하듯 배고픔과 추위와 목마름 등 나쁜 상황들이 병사들을 괴롭혔다. 하지만 나는 이런 비참한 전장에 전혀 흔들림 없이 평정을 유지했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도 사색을 즐겼다. 전투가 없는 날은 어떤 문제가 떠오르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가만히 서서 몇 시간이고 깊게 사색하다가 결국 해답을 얻고 나서야 자리를 떠나곤 했다. 이런 나를 사람들은 기인이라도 보는 것처럼 기이하게 생각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참혹했다. 장군들이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해군 병사들을 구조하지 않고 시신도 거두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테네 시민들에게 알려져 민중의 분노가 폭발했다. 그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게 되자 민중들의 분노를 가라앉힐 방안으로 선동 정치인들은 하층 시민들의 감정에 호소하면서 여덟 명의 장군을 사형시켜야 한다고 선동했다. 나는 강력하게 사형을 반대했다. 이성보다는 일시적 충동으로 어리석은 대중들을 선동하는 것은 민주 정치를 퇴보시키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중우정치에 의해 민주주의가 붕괴하는 것이기에 강력하게 반대했지만 결국 여덟 명의 장군은 사형 판결을 받고 말았다. 나중에 진실을 알게 된 아테네 시민들은 선동정치가들의 술수에 넘어간 것을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나는 내 고향 아테네를 사랑했다. 소피스트들의 궤변에 아테네가 놀아나고 상대주의에 빠지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없었다. 나는 이 세상에는 보편적 진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테네 시민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사람들이 봄비는 시장통에 가서 사람들을 붙잡고 질문하면 사람들은 기이하게 쳐다보면서도 쭈뼛쭈뼛 대답하곤 했다. 토론하기 위해 모이는 아고라에서 나는 대중들에게 국가정책이나 도덕적 삶을 주제로 토론하며 사람들을 계몽해 나갔다. 개방적이고 번성한 아테네에는 외국인들이 시민권을 얻지 못한 채 오래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무지에서 깨어날 수 있도록 끝없는 대화를 했다. 

 

나의 학문과 사상에 대한 소문이 점차 퍼져 나가자 소피스트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나는 문답법을 사용해 정답이라건 정해진 것이 없고 질문하는 사람에 달려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상대방에 맞춰서 상대방이 원하는 목적을 그때그때 대응하다 보면 정답에 가까이 갈 수 있었다. 정의를 제대로 내리지 않고 생각하니까 생각이 진척되지 않는 것이다. 무지를 깨닫기 위해서는 문답법을 이용한 교수법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걸 확신했다. 진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문답법은 참된 앎을 얻을 수 있는 귀납법으로 거듭된 질문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스스로 부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렇게 추가 질문을 계속하다 보면 스스로 무지를 깨닫게 된다. 이는 유도심문을 하거나 함정에 빠뜨리는 것이 아니라 아주 밑바닥부터 기본적인 것을 검토해 나가는 교수법이다. 나는 아테네에서 계속 문답법을 가지고 많은 사람을 깨우치는데 열정을 다 했다. 똑똑한 정치인이나 작가, 소피스트들을 많이 만나고 다니며 그들의 지혜를 시험해 보았다. 특히 시인들은 예언자처럼 영감은 있지만 지혜롭지는 않았다. 똑똑한 사람들은 자신의 무지나 편견조차 몰랐다. 결국 자기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을 정말로 아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내가 무지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늦은 나이에 나는 크산티페와 결혼했다. 크산티페는 나보다 나이가 아주 많이 어렸지만, 고집불통에 모난 성격의 소유자였다. 남편인 나를 이해하지 않고 늘 상스러운 말을 많이 하며 구박하기 일쑤였다. 가난하고 돈도 못 벌어오는 무능한 남편이라는 핀잔을 받는 것이 일상화되었기에 나는 아내인 크산티페의 행동을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보고도 못 본 척 들어도 안들은 척했다. 이런 나의 사정을 잘 아는 제자가 어느 날 내게 물었다.

 

“스승님 결혼은 해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하는 것이 결혼이라네”

 

인생 말년에 나는 정치적 문제에 휩쓸리게 되었다. 현실정치에 직접 참여하지도 않았는데 신성모독과 청년들을 현혹하여 사회를 어지럽힌다는 죄목으로 재판받게 되었다. 배심원 표결 결과 280:220으로 유죄 판결이 나왔다. 다시 2차 변론이 진행되어 나는 형량을 구형하는 연설을 했다. 

 

“나는 사람들을 무지로부터 깨우치고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깨우쳐주었으니 올림피아 우승자보다 내가 더 영예로운 사람입니다”

 

그러자 이에 분노한 배심원들이 360:140의 표차로 사형을 선고했다. 나는 담담히 사형을 받아들였다. 나는 내 가르침은 끝없이 퍼져 나갈 것을 의심하지 않고 의연하게 독약을 마셨다. 그리고 71세로 생을 마감했다. 

 

[전명희]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다 그만두고

‘밖철학연구소’를 설립해 연구에 몰두했지만

철학 없는 철학이 진정한 철학임을 깨달아

자유로운 떠돌이 여행자가 된 무소유이스트

이메일 jmh1016@yahoo.com

 

작성 2023.10.30 10:10 수정 2023.10.30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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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