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영의 낭만詩객] 이니스프리 호수의 섬

이순영

누구나 이상향 하나쯤은 마음속에 품고 산다. 상처받고 고통받고 절망에 빠질 때 우리는 마음속 이상향으로 도망간다. 천국처럼 많은 사람이 가는 그런 곳이 아닌 나 하나만을 위한 이상향은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는 오로지 나의 천국이다. 생각해보라, 재빨리 도망칠 줄 아는 사람만이 인생의 승리자이다. 도망치지도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정신적 아사 당한다. 우울한 도시, 어지럽게 흔들리는 불빛들, 갈 곳 잃고 방황하는 두 발 달린 불행한 짐승인 우리는 희망이라는 끔찍한 속임수에 잘 속는다. 고통이라는 이름의 조미료에도 속고 욕망이라는 단맛에도 잘 속는다. 그리움이라는 마지막 질병에 걸리기 전에 나의 천국으로 도망쳐야 한다. 이니스프리로 돌아가고자 했던 예이츠처럼.

 

나 이제 일어나 가리라, 이니스프리로 가리라

거기서 진흙과 가지로 작은 오두막집을 지으리라

아홉 이랑 콩밭을 일구고 꿀벌 집을 지으리라

그리고 벌이 웅웅대는 숲에서 홀로 살리라

 

그리하여 거기서 평화롭게 살리라

평화는 천천히 방울지듯 오기에

아침의 장막을 뚫고 귀뚜라미 우는 곳으로 천천히 오니까. 

한밤엔 만물이 희미하게 빛나고 정오에는 보랏빛으로 빛나는 곳

그리고 저녁엔 방울새의 날갯소리로 가득한 곳

 

나 이제 일어나 가리라, 밤이나 낮이나

호수의 물이 호숫가에 나지막이 찰랑대는 소리를 듣나니

길에서나, 회색 도로 위에서

내 가슴 속 가장 깊은 곳에서 그 소리를 듣나니

 

살기 위해서 일하는지 일하기 위해서 사는지 삶에 회의가 일어날 때 다 내려놓고 마음속 그곳으로 달려간다. ‘에잇 고향에 내려가 농사나 짓지’라며 중얼거리다가 그 고향마저 없는 사람들은 마음속에 고향을 하나 만들어 놓고 매일 그곳으로 돌아가는 꿈을 꾼다. 삶이라는 한계에 반항하다가 지칠 때 그래도 신뢰할 만한 위안은 마음속 이상향밖에 없다. 피할 수 없는 삶의 끝에서 필요한 것은 나를 위로해 주고 편안하게 받아 줄 그곳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그곳을 마음에 품고 산다. 내 안의 야생을 풀어놓고 자유롭게 뛰놀 수 있는 그곳 말이다. 

 

예이츠의 시는 읽으면 읽을수록 기분이 좋아진다. 기도처럼 매일 읽어도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서정적이면서도 모던하고 모던하면서도 자연주의적이다. 마치 항아리에서 잘 익어 가는 시원한 동치미 같은 느낌이다. 백 오십여 년 전의 시가 어색함이 전혀 없고 오히려 지금 막 쓴 것처럼 자연스럽다. 우리가 예이츠를 좋아하는 것처럼 일제 강점기에 허덕이던 소월도 예이츠를 좋아했고 김억도 좋아했고 김수영도 좋아했다. 자신들의 작품에 알게 모르게 예이츠의 영향력이 발현되어 있다. 인간의 마음은 어디서나 다 같기 때문일 것이다. 

 

저 깊은 근원으로 돌아가 보면 인생이란 한 조각 흘러가는 구름에 불과하다. 우리는 누구나 저 우주의 고아다. 고아가 되어야 진정한 인간의 본질이 보인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내 안의 나를 만나야 진정한 사랑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예이츠는 말한다. ‘나 이제 일어나 가리라, 밤이나 낮이나 호수의 물이 호숫가에 나지막이 찰랑대는 소리를 듣나니 길에서나, 회색 도로 위에서 내 가슴 속 가장 깊은 곳에서 그 소리를 듣나니’ 내 가슴 가장 깊은 곳에서 듣는 그 소리가 바로 자연이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한 상태다. 인간도 스스로 그러하기 위해 자연으로 간다. 

 

철저한 불가지론자였던 아버지의 세계관에 만족하지 못한 예이츠는 어릴 때부터 요정이 실제로 있다고 믿을 만큼 켈트 세계에 빠져 민담, 신화, 전설을 좋아했다. 그 영향으로 그의 시와 연극에는 아일랜드의 전설과 영웅을 등장시켜 문학적 뿌리를 잊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국가와 민족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것은 영국 식민지로 전락한 조국 아일랜드에 대한 사랑이며 처음부터 끝까지 아일랜드의 역사와 철학과 문학을 구현시키고자 했던 진정한 시인이었다. 그렇게 정치가이자 극작가이며 시인인 예이츠는 1929년 엄혹했던 시절에 아일랜드의 첫 노벨상 수상자가 된다. 

 

‘서정시의 구세주’라고 오든은 말했고 ‘예이츠는 강렬한 개인적인 경험에서 보편적 진리를 표현했다.’라고 엘리엇도 그를 찬양했다. 1865년 6월 13일 아일랜드 연합왕국 더블린 샌디마운트에서 태어나 1939년 1월 28일 프랑스에서 73세에 죽은 예이츠는 1915년에는 영국에서 기사 작위를 수여했지만 단칼에 거절했다. 그는 자신 안에 있는 이상향인 이니스프리 호수의 섬으로 가서 그의 시처럼 ‘그리하여 거기서 평화롭게 살리라 평화는 천천히 방울지듯 오기에 아침의 장막을 뚫고 귀뚜라미 우는 곳으로 천천히 오니까’라며 자연 속으로 스며들어 가고 싶었을 것이다. 

 

이니스프리는 예이츠의 고향인 아일랜드 슬라이고 근처의 자그마한 질 호수 섬이다. ‘이니스프리 호수의 섬’은 런던에서 살 때 고향이 그리워 지은 시다. 어느 날 우울한 회색도시 런던을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조용하게 물소리가 들렸다. 그 물소리에 불현듯 고향에 있는 호수가 떠올라 이 시를 짓게 되었다. 저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고향에 대한 참을 수 없는 그리움이 시로 발현된 것이다. 동양에 몽유도원이 있다면 서양에는 이니스프리가 있다. 예이츠의 서정과 낭만과 자연이 한 편의 시에 모두 응축되어 인간의 근원적 그리움을 퍼 올리고 있다. 미국 시인 존 배리맨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예이츠처럼 되고 싶지 않았고 예이츠가 되고 싶었다.”

 

[이순영]

수필가

칼럼니스트

이메일eee0411@yahoo.com

 

작성 2023.11.09 10:39 수정 2023.11.0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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