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 칼럼] 코스모스바다에 떠 있는 일엽편주(一葉片舟)

이태상

청소년 시절 어디에선가 읽은 글이 평생토록 잊혀지지 않고 갈수록 그 내용에 동의하고 동감하게 된다. 다름 아니고 영화 보기보다는 책 읽는 것이, 총천연색 영화보다는 흑백영화 보는 것이, 소설이나 수필보다는 시를 읽는 것이, 말을 다 하기보다는 못다 한 말을 남겨두는 것이, 비교도 안 되게 훨씬 더 낫다는 것이다. 시인 이상(李箱, 1910-1937)도 “사람이…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다”라고 했다지 않나.

우리말에 ‘말 밖의 말(言外言)’이니 ‘말 밖의 뜻(言外之意)’을 듣고 찾으라고, 영어에서도 ‘Read between the lines’ 라고 한다. 장석주 시인의 시 ‘대추 한 알’ 은 이렇게 함축적이다.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최근 몇 년 동안 뇌과학자들이 연구 조사해본 결과 인터넷 온라인 삶(online life)은 유동성 지능을 촉진-분산시켜 주는 반면, 오프라인 삶(offline life)은 우리의 사고능력을 총체적으로 종합적이고 구체화시켜준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 한 예로 우리가 전자책을 읽을 때와 종이책을 읽을 때 같은 책을 읽지 않고 마치 다른 책을 읽듯이 한다는 것이다. 전자책은 겉날림으로 읽고 종이책은 숙독(熟讀)하게 된다는 말이다.

영국의 뇌신경학자 수잔 그린필드(Susan A. Greenfield,1950 - )는 그녀의 저서 ‘정신 변화(Mind Change, 2014)’에서 그 차이점을 ‘점(點)’과 ‘선(線)’에 비유한다. 우리 식으로 표현한다면 ‘나무’와 ‘숲’이 되겠다.

“오프라인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이야기의 동선(動線)을 따라가며 관찰함으로써 우리는 단순 잡다한 정보자료를 지식으로 바꿀 수 있다. 이것이 온라인에서처럼 신속한 반응과 끊임없는 자극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내가 보기에 관건은 ‘내러티브’다. 우리말로는 ‘설화,’ ‘서사,’ ‘이야기’ 등으로 번역이 가능하다. (…by observing what happens, by following the linear path of a story, we can convert information into knowledge in a way that emphasizing fast response and constant stimulation cannot. As I see it, the key is narrative.)”

이는 1708년 처음 생긴 교수직으로 영국의 ‘계관시인(Poet Laureate)’ 다음으로 영예로운 직함인 옥스퍼드 대학의 ‘시학(詩學) 교수(Professor of Poetry)’로 2015년 6월 선출되었고 지난해 (2019년 5월) ‘계관시인’이 된 사이먼 아미티지(Simon Armitage, 1968 - )가 일상생활의 조잡하고 때로는 익살맞은 비속함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한 편의 시(詩)에서 그의 시철학(詩哲學)을 밝혔듯이 말이다.

‘네가 무슨 짓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 짓이 네게 뭐가 되는 거냐지 (It Ain’t What You Do, It’s What It Does to You – Poem by Simon Armitage)’

“나는 단돈 1달러, 다 해어진 리바이청바지 한 벌
그리고 주머니칼 한 자루 갖고
미대륙을 횡단해보진 못했지만
영국 맨체스터에서 도둑들과 함께 살아보았네.

나는 맨발로 인도의 타지마할 대리석 바닥에
내 발자국 찍는 소리 들어가며 여행해보지 못했지만
(검은 이끼 낀) 블랙 모스강가에서 납작한 돌로
돌수제비 뜰 때 일던 잔물결 소리 들었네.
그러면서 내가 던진 돌들이 수면에 스쳤다가
가라앉는 걸 느꼈다네.

나는 경비행기를 타고 뛰어내리려고
낙하산 줄을 만지작거리지 못 해봤지만
아동 탁아소에서 고개조차 못 가누는
남자아이의 머리를 받쳐주고
그의 통통한 손을 어루만져주었네.

그리고 참 목이 메고 우리 가슴 속 어디선가
작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센세이션,
이 둘 다 다른 감각의 일부, 그 느낌 말이어라.

I have not bummed across America
with only a dollar to spare, one pair
of busted Levi’s and a bowie knife.
I have lived with thieves in Manchester.

I have not padded through the Taj Mahal,
barefoot, listening to the space between
each footfall picking up and putting down
its print against the marble floor. But I
skimmed flat stones across Black Moss on a day
so still I could hear each set of ripples
as they crossed. I felt each stone’s inertia
spend itself against the water, then sink.

I have not toyed with a parachute cord
while perched on the lip of a light-aircraft;
but I held the wobbly head of a boy
at the day care centre, and stroked his fat hands.

And I guess that the tightness in the throat
and the tiny cascading sensation somewhere
inside us are both part of that sense of
something else, That feeling, I mean.”

‘걸어가면 길이 되기 때문에, 아직 걸을 수 있는 동안은 걷는 수밖에’ 이말은 재일동포 2세인 서경석 도쿄 게이지대학 현대법학부 교수가 대표적 재일조선인 문필가로서 디아스포라의 눈으로 본 ‘시’ 와 ‘문학’의 초월성을 다룬 그의 저서 ‘시의 힘: 절망의 시대, 시는 어떻게 인간을 구원하는가’ (서은혜 역 현암사 발행 2015년)에서 하는 말이다.

구글 채용 책임자가 밝힌 구글이 찾는 인재는 전공, 대학, 학점 등 스펙이 아니고 “지적 호기심을 가진 배움의 자세, 지도력. 남의 일을 하는 게 아니고 자신의 일을 한다는 책임감과 주인의식 그리고 불요불굴의 추진력과 지구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한다.

최근 잘 나가는 600여 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비즈니스 전문지 블룸버그에 따르면 전략적인 사고와 문제 해결 능력, 원만한 소통을 통한 팀워크와 사태분석 능력, 그리고 앞을 내다보는 비전과 창의성을 가진 사람을 원하지만 이런 자질을 제대로 갖춘 지원자는 부족하단다. 어쩌면 그런 지원자가 부족한 건 당연하리라. 독자적인 창의성과 비전을 현실화하려는 모험심과 용기를 가진 사람이라면 애플의 스티브 잡스처럼 취직보다는 ‘창직(創職)’에 관심이 있을 테니까.

우리 좀 따져 보자. 남이 이미 닦아놓은 길을 따라가기보다 각자는 각자의 길을 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타고난 재능과 조건이 다 다른데 어떻게 나와 다른 사람의 흉내를 낼 수 있단 말인가. 너는 너고 나는 난데 어쩌랴. 우리 제발 남과 비교하지 말 일이다. 비교하다 보면 우월감이든 열등감이든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깨비의 노예로 살게 되는 것이리. 같은 길을 가노라면 나보다 앞선 사람도 뒤진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또 좀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 바다에서 출렁이는 물방울들 아니랴. 위아래가 어디 있으며 너와 내가 따로 있으랴. 그렇다 해도 같은 길을 가지 않고 남들과 다른 내 길을 가노라면 경쟁자도 없이 다른 사람에게 신경 쓸 필요 없이 내가 가고 싶은 대로 내 형편과 보조에 맞춰 쉬고 싶을 때 쉬어가며 가는 대로 가보면 되지 않겠는가. 어차피 우리 모두 하나같이 혼자 하는 여행 아니던가. 혼자 왔다 혼자 가는 인생여로이니까.

흔히 돈이나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지만 뭣보다 내 인생 자체를 낭비하지 말 일 아닌가. 내게 꼭 필요한 것이라면 아무리 비싸도 내겐 너무 싼 것이지만 내게 필요 없는 것이라면 누가 거저 줘도 너무 비싼 것이 되지 않겠는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보수가 어떻든 일 자체가 즐거움이요 보람이 아니더냐. 그 한두 예를 들어보리라.

영국 여성 세라 딜리스 아우튼(Sarah Dilys Outen, 1985- )은 그녀의 나이 30세에 자신의 팔 힘만으로 작은 보트를 노를 저어 홀로 인도양과 태평양을 횡단, 2015년 11월 3일 세계일주에 성공한 최연소 최초의 여성이 되었다.

남성으로는 1991년 7월 11일 일본 도쿄에서 동쪽으로 300km 떨어진 조우시항에서 출발, ‘섹터호(Sector)’로 명명된 에스키모가 사용하는 카약처럼 아주 작고 가벼운 가죽배를 타고 프랑스 출신 제라르 다보빌 (Gerard d’Avoville 1945 - )이 그의 나이 46세 때 하루 10시간 이상 134일 동안 노를 저어 마침내 11월 21일 워싱톤주 일와코항에 도착, 대서양(1980)과 태평양을 가로지른 최초의 뱃사공이 되었다.

이들의 공통된 소감은 바다에 몇 달 동안이나 떠 있을 때 ‘밤하늘 가득히 쏟아지는 벌들을 바라보는 것이 가장 경이롭고 신비롭게 황홀했다’는 것이다. 아, 예부터 우리 선인(先人)들이 인생은 망망대해에 떠 있는 일엽편주(一葉片舟) 같다 하지 않았나. 이 지구라는 행성 자체가 코스모스바다에 떠 있는 일엽편주 아니겠는가.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이메일 :1230ts@gmail.com

 

작성 2023.11.11 10:07 수정 2023.11.11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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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