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는 동생과 차 한잔했다. 추워지는 날씨에 따뜻한 유자차 한잔은 이야기꽃을 피우며 겨울나기 시작을 알렸다. 이제 대학 졸업을 코앞에 둔 동생이 먼저 진로 고민에 대해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다. 나보다 어린 친구들 이야기를 듣는 것은 큰 배움이 된다.
세상이 어찌 굴러가는지, 어떻게 이 추운 겨울을 버텨나가야 하는지를 함께 고민해 보는 기회다. 나는 타인의 고민을 들을 때, 애써 그 말에 답을 내려 노력하지 않는다. 간혹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오히려 상대에게 되물어 진짜 마음이 입 밖으로 나오기를 기다린다. 그러다 한 번씩 제동을 걸어야 할 때가 있기 마련인데, 이번에도 같은 일이 있었다.
말하다 보니 동생은 결국 모든 진로에 대한 고민을 ‘싫다’로 연이어 마무리 짓는 거 아니겠는가. 우리가 ‘좋다’와 ‘싫다’로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너무 쉽게 단정 짓고 결론 내버리는 거 아닐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동생에게 되물었다. ‘그게 왜 싫은데?’.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모르겠지만 그냥 싫어요.’.
‘싫다’라는 표현 밑으로 다양한 감정과 생각의 스펙트럼이 있을 수 있을 텐데. 과거에 안 좋은 기억 때문에 무섭다거나, 남들이 다 안 좋다고 하니 꺼려진다거나, 그 일이 사실 끌리지만 필요한 배경지식을 쌓기에 자신감이 부족한 탓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기저에 깔린 다양한 생각과 느낌을 뒤로하고, ‘싫다’라는 말 한마디로 애써 꺼낸 화두를 제거하는 쪽으로 생각이 흘러가는 게 걱정되었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고민에 대해 어떤 단어로 정의하는지에 따라 우리가 행동하고 직접 나아가야 하는 길이 다르기 때문이다.
장자(B.C.369~B.C.289?)의 도행지이성(道行之而成)이란 가르침처럼, 길은 내가 걸어가는 곳에 나는 법이니까. 그러므로 ‘싫다’라는 말 이외에, 그 생각 너머로 우린 더 많은 가능성과 경우를 따져 좀 더 진지하게 생각을 펼쳐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동생에게 말했다. 낯선 고민으로 잠시간 번뇌에 시달리겠지만, 이 순간이야말로 자신의 인생에 깊이를 더할 소중한 기회이니 말이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말을 남겼다. 사람들의 언어 사용이 그 사회의식 수준과 현상을 나타낸다는 뜻이다. 말과 글을 다채롭게 사용하고 표현하는 만큼 그 세계는 풍요로워진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선명해 색깔을 표현하는 단어가 다른 나라에 비해 다양한 편이다. ‘빨갛다’라는 말을 ‘붉다’, ‘벌겋다’. ‘새빨갛다’, ‘불그스름하다’,‘불그죽죽하다’로 표현하는 등, 하이데거 말에 따르면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색에 대한 이미지를 표현하는 만큼 우리는 예로부터 섬세한 감정 표현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관용을 가진 사회에 살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극혐’이라는 유행어 사용 한 번으로 본인의 부정적인 감정을 뭉뚱그리는 경우라든지, ‘엄마’라는 말을 들으면 ‘맘충’이란 비속한 단어가 만들어낸 부정한 이미지를 먼저 연상하거나, MBTI 테스트 결과로 모든 사람을 16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쉽게 구분 짓는 등, 언어 오남용이 심해지면서 사람들의 감정표현과 논리 전개 그리고 사고의 폭도 점점 협소해지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내 존재의 집’을 허물고 있는 거 아닐까?
실제 잘 꾸리고 사는 사람의 집에 방문해 보면, 의식주 수단 밖에도 각종 식물과 소품, 취미 용품들이 집이란 공간에 잘 어우러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언어가 ‘내 존재의 집’이라면, 이 집도 잘 꾸리며 가꿀 필요가 있는 거 아닐까? 생존에 필요한 욕구를 해결하는 일 이상으로, 인간은 삶을 다채롭게 꾸미고 사람과 어울리고 싶어 하는 사회 문화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
래서 여러 가지 교양을 쌓아 언어생활을 정갈히 하고 표현을 풍부히 사용하는 일은 본인의 품격을 지키는 행위와도 맞닿아 있다. 그리고 이때야 비로소 자기 집에 찾아온 손님에게 따뜻한 차 한잔 살뜰히 내줄 마음과 이야기꽃도 피어나기 마련이다.
또한, 요즘처럼 소셜 네트워킹이 발달한 시대에 언어를 다채롭고 풍부하게 사용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나는 온라인에서 누군가의 계정을 찾아가는 일을 ‘집’을 방문한다고 생각하곤 하는데, 그 사람이 남긴 언어 습관과 게시물을 보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근데 결국 다시 방문하고 기억에 남는 계정은 생각과 감정을 다채롭고 펼치고, 그를 정중하게 표현하는 집이더라.
무력 전쟁을 지양하는 현대 사회에서, 다른 사람에게 의견을 피력하고 설득하는데 쓰는 창과 방패가 바로 ‘말과 글’이다. 스마트 세계화 시대에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유행어도 놓치지 않으며 제2, 제3 외국어를 공부하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언어는 결국 내 존재를, 생각과 느낌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수단이라는 본질을 잊어선 안 된다.
당장 스마트폰을 켜 남들이 말하고 쓴 것을 지켜보기만 할 게 아니라, 오늘 내가 보고 느낀 것에 대해 작게나마 기록하는 습관을 몸에 익혀보자. 사랑하는 사람과는 좀 더 진솔하게, 긴 호흡을 가지고 대화해보자. 그리고 좀 더 섬세하고 다양하게 말과 글로 표현해 보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도록, 우리에게 충분히 ‘멍때릴’ 시간을 따뜻한 차 한잔과 함께 허용해 보는 것도 좋겠다. 그렇게 사고하는 방법에 익숙해지고 재미를 들였을 때 비로소 존재와 내 SNS 계정도 다시 방문해보고 싶은, 집처럼 아늑한 공간이 될 테니.
[임이로]
칼럼니스트
제5회 코스미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