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삼천삼십여 년 전 인간 ‘다윗’이다. 예루살렘에서 십여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작은 도시 베들레헴이 내가 태어난 곳이다. 남쪽으로는 키드론 계곡과 북쪽으로는 티로페온 계곡 남서쪽에 있는 고원이 내 고향이다. 베이트 잘라, 베이트 사훌 등과 인접해 있는 베들레헴은 높은 산들에 둘러싸여 있는 구릉지대로 전쟁이 일어나도 방어하기 좋은 곳이다. 언덕 남쪽 기슭에는 맑은 샘물이 솟아나고 있어 우리 마을 사람들의 식수로 사용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땅은 비옥하고 사람들은 온순해 큰 걱정 없이 풍요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나의 아버지 이새는 아홉 남매를 두었는데 나는 그중 막내아들이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영민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집안일을 돕기 위해 양치기를 하면서도 가난과 낮은 신분에 대해 원망하지 않았다. 양을 돌보기 위해 하루 종일 일하면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지만, 나는 양치기를 하는 것에 대해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했고 늘 긍정적인 생각만 했다. 그렇다. 나는 천성적으로 밝고 명랑하고 바른 심성을 지니고 태어났다. 나는 볼이 붉고 눈이 반짝거리며 외모도 뛰어나 사람들은 나를 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양을 치러 갈 때 꼭 비파를 가지고 갔다. 비파를 연주하고 있으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양들도 내가 치는 비파 소리를 듣고 무럭무럭 잘 크는 것 같았다. 글을 익힌 다음부터는 시를 쓰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내가 쓴 시를 보며 우리 집안에 시인이 났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어느 날 양을 몰고 산속으로 깊이 들어가자 곰을 만났다. 나는 양들을 지키기 위해 곰과 한 판 붙어서 곰을 물리쳤다. 또 어느 날은 사자를 만났지만, 양들을 잃지 않고 사자를 물리치고 오자 마을 사람들은 용맹한 소년이라고 모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마을에 흉흉한 소문이 들려왔다. 사울왕이 율법과 예언자들의 조언을 무시하면서 하나님을 멀리하더니 악령에 시달린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종교 세력과 마찰을 일으키게 되었다며 어른들은 걱정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필리스티아와의 싸움에도 패하여 많은 백성을 잃었다. 왕가에서는 사울왕의 악령을 물리칠 수 있는 묘안을 짜느라 혈안이 되어있다고 했다. 그런 소문이 돌고 얼마 되지 않아 가장 권위 있는 예언자인 사무엘이 나를 찾아왔다. 나는 사울왕에게 불려 나가 비파를 연주해 주었다. 신기하게도 사울왕은 나의 비파소리를 듣고 악령이 사라졌으며 마음이 평온해졌다.
소년에서 청소년이 되어가고 있을 무렵 적국인 블레셋과 전쟁이 일어났다. 엘라골짜기에 우리나라 군대가 진을 치고 있을 때 건너편에 있던 블레셋의 장수인 골리앗이 40일간이나 우리나라 군인들을 조롱했다. 골리앗은 키가 엄청나게 크고 힘이 센 장수였기에 사람들은 잔뜩 겁을 먹고 불안에 떨고 있었다. 사울왕은 골리앗을 죽인 사람에게 많은 재물과 자신의 딸을 주고 세금도 면제해 주겠다는 공약을 했다. 하지만 아무도 골리앗과 싸우기 위해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아버지는 전쟁에 나가 있는 첫째 형 엘리압과 둘째 형 아비나답, 그리고 셋째 형 삼미에게 식량을 전달해 주라며 나를 심부름 보냈다.
나는 형들을 만나고 전장에서 거대한 골리앗을 봤다. 순간 마음속에서 나도 모르는 용기가 일어나고 있었다. 나의 형제들과 우리 땅과 우리 민족을 위해 저 짐승 같은 골리앗과 싸워서 이겨야 한다는 용기가 불처럼 일어났다. 나는 양치기 일을 하면서 익힌 투석구를 사용하면 골리앗쯤은 단번에 쓰러트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솟구쳤다. 투석구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사울왕에게 다가가 소리쳤다.
“왕이시여, 제가 저 괴물 거인을 물리치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사울왕은 어린 내가 골리앗을 상대하겠다고 하자 골리앗은 어려서부터 용사였고 힘으로 상대할 자가 없다고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끝까지 나가서 싸우겠다고 말했다. 사울왕은 나의 용기에 감탄하며 자신의 갑옷을 벗어 나에게 입혀 주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았기에 사울왕의 갑옷이 너무 커서 맞지 않았다. 나는 갑옷을 벗어 버리고 조용히 시냇가로 가서 물매에 들어갈 돌 다섯 개를 골라 제구에 넣고 골리앗 앞에 섰다. 골리앗은 방패를 든 사람을 앞세우고 나왔다. 골리앗은 어린 나를 보자 마구 비웃었다. 내가 무기라고 가져온 물매를 보더니 나를 개로 여기느냐며 두 눈을 부릅떴다. 그러고는 자신이 믿는 신의 이름을 부르며 나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전투가 시작되자 나는 당당하게 골리앗 앞으로 나갔다. 돌을 꺼내서 줄에 매달고 원을 그리며 힘을 모은 다음 골리앗에게 날렸다. 돌은 정확하게 골리앗의 이마에 명중했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나는 달려가 기절해 쓰러진 골리앗의 칼을 빼앗아 목을 쳤다. 골리앗이 죽자 블레셋 군대는 공포에 질려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골리앗과의 전투 이후 장군이 되어 모든 전투에서 승리하고 백성들의 존경과 신망을 얻게 되자 사울왕은 나를 시기하고 질투하기 시작했다. 나는 살해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와중에 사울왕의 공약대로 그의 딸 미갈과 결혼하고 미갈의 도움으로 왕궁을 탈출했다.
나는 사울왕을 피해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내가 엔게디 광야에 있다는 소문을 들은 사울왕은 군대를 이끌고 추격해 왔다. 나는 일행들과 동굴 안으로 숨었다. 그런 줄도 모르는 사울왕이 용변을 보기 위해 동굴로 들어왔지만, 나는 사울왕을 죽이지 않았다. 하나님이 택하신 왕을 내 맘대로 죽이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울왕의 겉옷 끝을 잘라 보여주자 사울왕은 자기 잘못을 깨닫고 돌아갔다. 나는 지지자들을 이끌고 필리스틴의 왕에게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필리스틴 왕은 작은 마을을 주어 통치하게 했다. 그리고 내가 없는 예루살렘을 공격해 사울왕의 아들 요나단을 죽였다. 전쟁에 패한 사울왕은 자살하고 말았다. 나는 통일된 이스라엘 왕국의 제2대 왕으로 추대되었다.
나는 사십여 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리며 하나님과 백성들을 위해 봉사했다. 사백여 년간 정복하지 못한 시온성과 예루살렘 주변을 정복했다. 나는 하나님의 율법을 충실하게 지키면서 종교적으로 국민을 단합시켰다. 여덟 명의 아내에 스무 명의 자식을 두었다. 말년에는 자식들 간에 왕위 계승의 싸움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가장 지혜로운 아들인 솔로몬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나는 평생 부지런했고 용감했으며 지혜롭게 하나님을 섬겼다. 내 나이 칠십에 죽음이 나를 찾아왔다.
[전명희]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다 그만두고
‘밖철학연구소’를 설립해 연구에 몰두했지만
철학 없는 철학이 진정한 철학임을 깨달아
자유로운 떠돌이 여행자가 된 무소유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