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47년 방대한 사전 편찬 작업을 시작하여 영어사전을 조수 6명과 함께 8년 만에 완성시켜 최초의 영어사전 사전편찬자로서 명성을 떨친 사무엘 존슨(1709-1784)의 '라셀라스(원제는 아비시니아의 왕자 라셀라스 이야기)’ 는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필요한 장례 절차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일주일 동안 저녁 시간을 이용하여 집필했다고 한다. 1765년에 셰익스피어 전집의 편찬을 완성하여 출간하였고 17세기 이후의 영국 시인 52명의 전기와 작품론을 정리하여 열권의 ‘영국 시인전’을 펴낸 것으로 유명하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라셀라스는 아비시니아 왕자 이름이다. 라셀라스는 대왕의 넷째 아들이고 그의 부친은 물의 시조 나일강이 발원하여 흐르는 나라의 군주로서 이집트의 수확물을 온 세계 만민의 절반에게 고루 베풀어 나눠주는 훌륭한 황제였다. 예로부터 전해 내려온 풍습에 따라 라셀라스 왕자는 왕위를 계승할 차례가 되기 전까지 아비시니아의 다른 왕손들과 함께 외딴 왕궁에 유폐되어 있어야 했다.
바로 '행복의 골짜기'란 곳에서 생활을 하는데 물론 없는 것이 없는, 풍족함으로 가득한 곳이다. 그러나 외부와는 단절되어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만 살아야 했다. 매일 반복되고 갇혀있는 생활을 벗어나고 싶다. 아무 부족함이 없는데도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가'하는 근원적 질문의 해답을 찾고자 탈출을 결심한다.
여행 경험도 많고 아는 것도 풍부한 시인 이믈락과 여동생 네카야 공주, 그리고 공주의 시녀 페쿠아 이렇게 넷이 함께 행복의 골짜기를 탈출하여 이집트 카이로로 가게 된다. 그들은 그곳에서 행복해 보이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왕자 일행은 쾌활한 젊은이들, 학자, 전원생활을 하는 사람, 명성을 가진 부자, 은자의 삶을 탐색하며 그들이 진짜 행복한가를 알아본다. 왕자는 높은 지위가 주는 행복에 대해, 공주는 일반 가정의 행복에 대해 어느 쪽이 더 행복한지도 알아보는데 행복해 보이는 그들의 실상은 각자 나름대로의 애로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시인인 이믈락은 라셀라스에게 시와 시인에 대해 설명하는데 여기에서 '시'는 '문학' 전체를 가리킨다. 문학 하는 사람은 편견을 가지지 말아야 하고 그 시대를 반영하는 양심이 되어야 하고 시대적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함을 말하고 있다고 하겠다. 즉, 문학이 글을 사용한 묘사나 감상에 그칠 것이 아니라 이 시대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의 동기를 줄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했다.
라셀라스 일행이 카이로의 지하 묘지를 방문한 뒤 이믈락은 영혼의 본질에 대해 설명한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시체를 미라로 처리해 보존한 것은 이집트인들은 육체가 썩어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는 한 영혼도 살아 있다고 믿었으며, 따라서 이런 방식으로 그들은 죽음을 면하려 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이믈락은 영혼이 물질로 되어있다고 하는 주장에 반박한다. 지하 묘지를 보고 현세의 삶이 짧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경고하고 있다고 말한다. 결국 네 사람은 행복에 대해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각자 행복한 삶에 대한 소망만 지닌 채 고국으로 돌아가기로 하며 이야기는 끝난다.
라셀라스 왕자 일행이 찾던 행복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낙원과도 같았던 행복의 골짜기에도 없었고, 온갖 일이 일어나는 세상도 온전히 행복하지만은 않으니.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게 사는 것일까.
마지막 부분에서 절대적 행복은 없음을 암시한다.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사람도 행복하지 않다면 도대체 누가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인가 행복한 삶이란 무엇이고 절대적 행복이란 무엇인가, 절대적 행복은 존재하는가. 안개 속을 다니는 잠언집이다. 읽는 독자가 처한 상황과 환경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결국 행복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하는 내용이면서도 결국 무엇이 행복하냐는 내가 판단하고 결정할 수밖에 없고 내 마음에 달려 있다고 정의할 수밖에 없다. 하나가 행복하면 또 하나의 행복을 원하는 인간, 그러나 지나치면 탐욕이 되는 것, 무엇을 행복의 정의로 내세울지는 스스로의 마음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민병식]
시인, 에세이스트, 칼럼니스트
현)대한시문학협회 경기지회장
현)신정문학회 수필 등단 심사위원
2019 강건문화뉴스 올해의 작가상
2020 코스미안상 인문학칼럼 우수상
2021 남명문학상 수필 부문 우수상
2022 신정문학상 수필 부문 최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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