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인 칼럼] 재활용, 그 윤회의 작은 영원

유종인

사람은 무엇으로 영원을 기약할 수 있는가. 이 범박하고 근원적인 물음에 대해 나는 가끔 스칠 때가 있다. 물론 종교적인 믿음이나 영혼의 불멸을 담보하는 철학과 담론이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죽은 사람은 있어도 정말로 죽었다 다시 되살아난 사람은 없다. 극히 일부 그런 임사체험의 사례가 있지만 그것을 검증하거나 실현할 객관적인 방편이 있는 건 아니다. 

 

이런 생명의 유한함을 사는 동안에도 영원의 모듈을 소소하게 일상에서 맞이할 때가 있다. 그것은 일상에서 흥청망청 쓰기도 하고 관성적으로 사용하는 물건이나 기물이 수명을 다했을 때 우연처럼 날아든다. 

 

물질과 사물은 흔히 기능과 거기에 맞는 이름을 부여받고 태어난다. 그러나 그 용도가 다하거나 유통기한이 끝나고 기능이 멈추면 그 사물에 붙여진 이름은 어느 순간 유명무실해진다. 애초의 참신하고 듬쑥했던 이름의 번듯함이 어느 순간 허울 좋은 껍데기가 된다. 사람과 생활의 용도를 위해 만들어졌던 사물이 폐기의 수순을 밟는다. 

 

사람뿐 아니라 사물들도 생로병사의 과정을 엇비슷하게 닮아가는 것 같아 왠지 처연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인간의 생명은 정신과 육체의 활동이듯이 사물의 생명은 그 기능의 보유에 있다. 그런데 그 기능을 잃어가다 멈추고 더 이상 수리의 가망이 없을 때 사물에게도 죽음이 온다. 

 

집안의 물건들과 작별을 해야 하는 순간은 그렇게 찾아온다. 사물의 운명은 잦은 고장과 수리의 반복 속에서 찾아올 때도 있고 불현듯 일체의 기능이 멈추면서 돌발적으로 찾아올 때도 있다. 그런데 그런 물건을 그냥 손쉽게 내보내는 일이 마냥 수월하지 않을 때가 있다.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은 손때 묻은 물건에 대한 애착이 물건을 그냥 놔줄 수 없게 할 때가 있다.  

 

족히 삼십 년은 쓴 듯한 낡은 선풍기는 딸애들보다 십수 년은 선배이고 고참이다. 그런 선풍기와 작별을 고할 때 내다놓는 게 왠지 서운했다. 그렇다고 배출을 지체했다간 안사람에게 집안을 차지한다고 지청구를 들을 게 뻔한 나는 선풍기에게서 부품 하나를 떼어냈다. 바람을 일으키는 바람개비를 감싸는 쇠로 된 보호 철망이다. 프로펠러 형태의 바람개비를 감싸는 앞 철망과 뒤 철망을 분리하고 선풍기는 분리수거일에 내다 놓았다. 

 

그렇게 집안에 남은 선풍기 보호망은 물로 씻겨진다. 그리고 아내 보기엔 요령부득의 이 선풍기 보호망은 어느 날 베란다에서 새로운 임무를 수행한다. 여름에 풍부하게 나는 호박이나 가지, 무우, 연근, 우엉 등을 썰어서 말리는 채반으로 선풍기 보호망은 변신한다. 처음엔 마뜩잖은 눈길을 하던 아내도 어느 순간 그럴듯한지 묵인하듯 모르는 체하는 눈치였다. 

 

햇빛이 잘 드는 양지 녘에 놓인 선풍기 보호망은 이제 채반이라는 자연 건조기로 역할을 바꿨다. 선풍기로 더 장수할 수는 없지만 일부나마 새 역할을 하는 부품인 선풍기 보호망은 채반이라는 기능적 전환을 이룬 셈이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조금 뿌듯하다. 채반이 된 선풍기 보호망을 볼 때마다 모종의 전생(前生)을 획득한 사물의 내력을 만들어준 것만 같다. 

 

별것 아니지만 이렇게 다 된 물건을 보면 왠지 그냥 이별하지 못하고 언뜻 궁리가 감돈다.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 탓도 있겠지만 요즘처럼 물질이 풍부한 시대에 너무 손쉽게 버려지는 물건들을 보면 왠지 시간을 다 쓰지도 않고 경기를 끝내버린 선수처럼 뒤가 찜찜할 때가 있다. 그럼에도 물건들은 묵묵하다. 하지만 그 물건들의 저 침묵 속에는 잉여로 남아있는 기능의 잔고를 몰라주는 인간에 대한 무언의 불만과 항의가 서린 것도 같다. 

 

그것은 수명이 꽤 오랜 기기나 물건 말고도 일회용 소모품에서도 간혹 드러난다. 지난해 가을날이었다. 유독 포도를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다른 과일보다 사는 단위가 크다. 늦여름부터 아내는 ‘올해 포도 몇 상자 사줄거야?’ 먼저 은근한 협박성 청탁을 한다. 그게 몇 박스이건 포도는 박스째 사는 게 관행이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즐겨 먹고 남은 포도박스 안의 내가 주목하는 것은 따로 있다. 다름 아닌 포도송이를 쌌던 흰 종이였다. 포도송이 형상이 그대로 남은 거푸집 같은 포도 쌌던 종이는 왠지 더 유난히 흰 빛으로 다가온다. 처음엔 포도박스와 함께 버렸지만 어느 순간 그 종이를 차곡차곡 모으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 종이를 다림판 위에 놓고 다림질을 했다. 

 

그마저도 거추장스러울 땐 묵직한 책으로 일주일 정도 눌러 놓는다. 주름이 자글자글했던 포도송이를 쌌던 종이는 어느새 주름이 엔간히 펴지고 편편한 종이로 가지런해진다. 그래도 은은하게 번지는 포도 내음만은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그게 왠지 운치가 있고 여운이 감돈다. 그렇게 포도 쌌던 종이는 나만의 적바림을 위한 메모지로 거듭난다. 포도 향기가 나는 수첩은 세상에 그리 흔하지는 않을 성싶다. 

 

그리고 더러는 지인들의 특별한 기념할 만한 날이나 정표를 드러내야 할 때 거친 붓글씨로 포도 쌌던 종이에 글귀를 써서 낙관을 해 보낸다. 포도 문양이 비치고 인쇄 글씨가 드러나지만 나는 개의치 않는다. 과수원에서 비바람과 달빛과 뙤약볕을 받으며 포도를 감쌌던 뜻깊은 전력이 있는 종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담담히 얘기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 폐지로 버려지기 전에 한 번 더 세상의 인연들 사이를 오고가는 향기가 배인 종이의 역할은 어딘가 그윽한 맛이 감돈다. 포도 쌌던 종이의 여백을 놓칠 순 없어 단순한 포장지는 적바림의 수첩과 글씨를 담는 특별한 종이로 환생한다. 

 

또 더러는 실수로 깬 물건이 다른 기물로 변신할 때는 더없이 묘한 즐거움이 든다. 그 일은 베란다를 정리하다가 발에 채인 난초 화분을 넘어뜨려 깨지면서 일어났다. 난분(蘭盆)의 입구가 깨져버렸다. 쏟아져 드러난 난초와 식재를 다른 화분에 옮겼다. 깨진 화분을 수습하면서 그냥 버려야 할 심산은 너무 당연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화분의 운두 윗부분만 깨져 날아간 것이 왠지 묘한 느낌을 자아냈다. 다음 순간 나는 화분의 깨진 부위를 사포로 문질러 갈아대고 있었다. 

 

늘씬한 화분의 몸통은 그대로 둔 채 깨져나간 부위를 부드럽게 갈아대자 자연스레 능선처럼 하나의 기물(器物)이 되었다. 다리가 세 개인 화분의 물구멍을 막고 깨진 윗부분을 사포로 갈아낸 부분은 입구가 좀 더 넓어졌다. 그 순간 필통으로 맞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붓을 꽂고 송곳도 꽂고 볼펜과 색연필도 꽂았다. 

 

난초가 펑퍼짐하게 늘어져 초록의 선을 긋던 화분은 어느새 필통의 구색을 갖췄다. 난초를 심어 봄이면 꽃이 벌던 자리에 여러 필기구며 도구가 가리지 않고 심어졌다. 한순간의 실수로 퇴물이 된 깨진 화분이 얼마만에 골동이 된 듯도 했다. 네 전생은 춘란이 심겨졌던 화분이란다. 나는 필통으로 팔자를 고친 깨진 화분을 이제는 책장 한 켠에 가만히 올려놓았다. 

 

어린 시절 다락방에서 읽은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대상 사물인 나무가 어떤 형태로 존재의 변화를 겪으며 세상에 기여하는가를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그 나무는 다양한 존재의 버전을 이루며 자신을 그야말로 아낌없이 내어준다. 그 나무는 과연 자신의 그런 내어줌이 정말 아깝지 않았을까 내심 물은 적도 있다. 물론 그것은 그루터기조차 휴식의 의자로 내어주는 나무에게 그것은 기우에 불과한 것이었다. 

 

소년에게 다양한 용도와 형태로 자신의 기능을 선사하고 내어주는 나무에게서 영원의 존재방식을 본 것도 같다. 어쩌면 우리는 그리고 우리가 다루는 물건이나 사물은 하나의 기능이나 형식에 묶인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시효와 기능이 다한 대상은 그걸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서 새로운 존재의 입지를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단순히 버려지려던 낡은 선풍기와 포도 쌌던 종이와 깨진 난초 화분과 마찬가지로 우리네 유한한 삶도 다양한 존재의 여지 혹은 여백이 있는지도 모른다. 

 

영원이라는 것이 단순히 시간의 문제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자신을 달리 개척하는 지점과 연결돼 있지 싶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만이 아닌 누군가를 향해 나눔으로 열어둘 때 영원은 벌물처럼 혹은 벌불처럼 근사치로 번지지 않을까 싶다.

 

[유종인]

이메일: jongin-yu@hanmail.net

 

작성 2023.12.01 10:46 수정 2023.12.01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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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