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보 염상섭(1897 ~ 1963)은 서울 출생으로 '폐허'의 창간 동인이며 1921년 '개벽'에 단편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발표하는 등 처음에는 자연주의적 경향을 띠었으나 후에는 사실주의 계열의 작품을 썼다. 작품으로 '만세전', '삼대', '두 파산' 등이 있다.
작품의 배경은 일제강점기로 암울하지만 새로운 문물이 소개되던 1920년대 중반이다. 화물회사에 다니던 이 주사는 전화 추첨에 뽑혀 아내의 옷과 패물을 전당포에 잡히고 300원에 전화를 놓았다. 아내는 이제나저제나 전화가 언제 걸려 오나 기대감에 들떠있는데 하필 처음 걸려 온 전화가 기생인 채홍이 이 주사를 찾는 전화다.
이로 인해 이 주사 부부는 아침부터 부부싸움을 하게 된다. 회사에 출근한 이 주사는 집에서는 받지 못했던 채홍의 전화를 회사에서 퇴근 후 받고 퇴근길에 채홍에게 들려 저녁에 술자리를 갖기로 한다. 채홍의 집을 나서면서 채홍과 아내에게 각각 김장거리를 들여놔 주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전화기 설치에 쓴 돈이 많아서 걱정이다. 그러나 아침에 술집 기생 문제로 아내와 다툰 것이 생각나 미안한 마음에 분홍빛 속적삼과 회색빛 장갑을 사 들고 집으로 간다.
아내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던 이 주사는 직장 동료인 김 주사의 전화를 받고 외출을 한다. 그동안 아내는 채홍이 남편을 찾는 전화를 받았고, 남편으로부터 채홍에 대한 문의 전화를 받는다. 고주망태가 되어 늦은 새벽에 들어온 이 주사, 아내는 성질을 내고 부부는 큰 소리로 다투고 만다. 다음날, 이 주사는 전화기를 팔기로 한다. 마침 이 이야기를 들은 김 주사는 자신의 아버지가 전화를 오백 원에 살 것이라 말한다.
이 주사는 이 돈으로 전당포에 잡힌 아내의 물건을 찾고, 아내와 채홍에게 김장비용도 대줄 생각이다. 그러나 김 주사는 부친에게 칠백 원에 전화를 샀다고 거짓말을 하고 중간에서 이백 원을 가로챈다. 그리고 이 주사를 속이고 몰래 사귀어 온 '채홍'과 즐기며 새 양복을 맞추어 입는다. 전화를 넘긴 다음 날 이 주사는 아내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전해 받는데 김 주사의 아버지에게 온 편지였다. 편지에는 전화 값 칠백 원의 영수증을 왜 안 주냐는 내용이었고 이주사의 아내는 김 주사를 찾아가 이백 원을 돌려받고 좋아한다. 전화를 놓은 지 며칠 사이에 사백 원이나 번 것이다. 그리고 아내는 전화가 없으니 허전하다며 은근히 또 전화를 놓았으면 하고 바란다.
작품에서 전화는 표면상으로는 편리한 신문명을 상징하고 있으나 실상은 세 가지 문제점을 발생시키는 매개체이다. 하나는 이 주사 부부의 갈등이다. 아내는 옷과 패물을 내놓고 전화를 설치했지만, 남편이 기생과 부도덕한 사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부부 사이는 대립으로 치닫는다. 또 하나는 전화의 매매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인간의 약삭빠름이다. 이 주사는 전화기를 팔아 아내의 옷과 패물을 찾아주고도 남는 돈으로 기생 채홍의 김장을 해주려고 하고 전화기를 산 김 주사는 중간에서 전화값을 거짓으로 말하고 그것도 아버지로부터 이백 원을 떼어먹었다.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지금의 세상과 다르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의 욕심과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해 서로 속고 속이는 인간의 약삭빠름을 비판하는 이 작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쉽게 드러날 수 있는 인간의 악한 속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하겠다. 인간의 본성은 선한가 아니면 악한가. 본래 선하였지만 세파에 찌들며 악에 물들어 가는가, 악한 모습을 선하게 고치려고 노력하며 사는가. 각자가 자신의 삶의 모습을 마음의 거울에 비추어 보자.
[민병식]
시인, 에세이스트, 칼럼니스트
현)대한시문학협회 경기지회장
현)신정문학회 수필 등단 심사위원
2019 강건문화뉴스 올해의 작가상
2020 코스미안상 인문학칼럼 우수상
2021 남명문학상 수필 부문 우수상
2022 신정문학상 수필 부문 최우수상
이메일 : sunguy20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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