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은 시집인데 시적 묘사라곤 하나도 없는 시집! 이게 시집일까?
진술 시에 무게를 뒀다면 있을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이런 시집의 경우, 진술 시와도 거리가 멀 가능성이 농후하다. 산문체에 행을 갈라놓은 수준일 수 있다.
묘사란 《표준국어대사전》에 “어떤 대상이나 사물, 현상 따위를 언어로 서술하거나 그림을 그려서 표현함.”이라고 정의해 놓았다. ‘언어로 서술하거나’에 국한하여 해석하면, 서술을 설명과 동일한 성질로 인식할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요즘 시인의 일부는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는 것일까?
오규원의 『현대시작법』에서 시적 묘사를 “사물이나 현상이 지닌 성질, 인상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언술 형식이다.”, “감각적, 암시적 성향의 언술이다.”, “구체적으로 그려 내는 언술이다.” 등 다양하게 정의하고 있다. 오규원의 책에서 시적 묘사 관련 내용을 개념 위주로 요약해 본다.
시의 묘사는 설명적 묘사, 암시적 묘사. 주관적 묘사, 객관적 묘사로 나눈다. 설명적 묘사(expositional description)는 일정한 대상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거나 서사의 전개를 돕는다. 암시적 묘사(suggestive description)는 정보 제공보다는 지배적 인상의 표현으로 대상의 성질을 암시한다. (시가 주로 사용하는 묘사이다.)
암시적 묘사를 다시 주관적 묘사와 객관적 묘사로 나눈다. 주관적 묘사는 심리적 또는 감각적 대상 파악이 그 기조를 이루는 표현이다. 객관적 묘사는 사실적 정황들만을 의도적으로 드러낸다. 현장성과 사실성(reality)을 제시하거나 이를 바탕으로 표현한다.
주관적 묘사든 객관적 묘사든 그 묘사의 정신은 감정과 설명을 배제하고 대상의 지배적인 인상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데 있다.
시인이라면 시적 묘사 관련 용어를 깊이 생각해 볼 문제이다. 오규원의 『현대시작법』에서 “묘사가 시의 본질이다.”라며 강조한다. 그런데 “시는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느낌(feeling)을 직접 제시하는 언술 양식이다.”라고도 주장한다. 묘사가 시의 본질이라고 해 놓고, 직접 제시라고 말하면 맞을까? 이는 개념적 오류일 수 있다.
묘사는 그 자체가 간접 표현, 즉 간접 언술을 의미한다. 물론 직접 묘사와 간접 묘사, 혹은 사실 묘사와 변형 묘사라는 문학 용어도 있다. 그러나 묘사는 주관적 묘사든 객관적 묘사든 감정과 설명을 배제하고 간접 정서로 표현하는 언술이다. 엘리엇(T. S. Eliot)이 처음 사용한 객관적 상관물도 정서와 사상을 간접 정서로 표현한다는 의미이다.
시에서 현장성과 현실성(reality, 사실성)을 제시하는 객관적 묘사는 객관화 측면에서 사실적 정황만을 제시하는 사실(직접) 묘사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에서는 객관적 묘사도 현장성과 사실성을 바탕으로 하여 변형(간접) 묘사로 표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시적 대상을 눈에 보이는 현상과 다르게 변형하여 묘사하는 기법이 더 좋다는 의미이다. 변형 묘사는 러시아 형식주의의 용어인 ‘낯설게 하기’와 프라하학파의 용어인 ‘전경화(前景化)’를 실현하는 묘사 기법이기도 하다.
시는 느낌을 직접 제시하기보다 그림 그리듯 구체적으로 형상화하여 간접 제시해야 한다. 시는 “기쁘다, 슬프다, 아프다.”라며 직접 정서로 제시하기보다 그림을 그리듯 묘사를 통해 간접 정서로 제시해야 한다. 직접 정서로 제시한다면 묘사는커녕 설명적 진술도 아닌 넋두리일 가능성이 높다.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대구과학대학교 겸임조교수, 가야대학교 강사.
저서 : 평론집 7권, 이론서 2권, 연구서 2권, 시집 5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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