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의 '아랑가' 국민애창곡 해설] 은비녀 옥색치마, <우리 어머니>

이효정 작사, 박성훈 작곡, 이효정 노래 // 정서주

유차영

국민풍류 감흥의 물결, 미스트롯3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여기서 정서주가 절창하여 1등(진)으로 입상한 인생곡이 1997년 이효정의 목청을 타고 넘어온, <우리 어머니>다. 이런 유의 노래 장르를 《트로트》라고 통칭했다.

 

이제는 이런 노래 장르를 《아랑가》로 명명해야 한다. 《아랑가》는 우리 고유의 노래 <아리랑>과 <가요>를 융합한 용어이다. 이제부터 이렇게 하시기를 주창(主唱)한다. 이효정에서 정서주로 이어진 <우리 어머니> 노랫말을 펼쳐 놓고, 《아랑가》라는 맥락으로 풀어보자.

 

긴 머리 땋아 틀어 은비녀 꽂으시고 / 옥색치마 차려입고 사뿐사뿐 걸으시면 / 천사처럼 고왔던 우리 어머니 / 여섯 남매 배곯을까 치마끈 졸라매고 / 가시밭길 헤쳐가며 살아 오셨네 / 헤진 옷 기우시며 긴 밤을 지새울 때 / 어디선가 부엉이가 울어 대면은 / 어머니도 울었답니다.

 

노랫말이 그림이다. 어머니의 모습이 정물(靜物)이면 정물화(畵)이련만, 노랫말 속의 어머니가 곰실곰실 움직이고 계시니, 움직이는 그림이다. 은근하던 마음이 가슴팍을 죄인다. 긴 머리, 은비녀, 옥색치마... 적막한 어둠을 타고 들려오는 부엉이 노래~ 그리고 엄마의 눈물~.

 

이효정의 어머니는 필시, 저고리는 물항라 저고리를 입어셨으리~. 옥색치마 위에 덧걸치고 동여 맨 행주치마는 노랫말의 행간에 가리어 있다. 그 뒤에 조랑조랑 매달린 여섯 남매, 헤진 옷을 기우시면서 졸음에 겨워 꾸뻑거리는 엄마, 움찔거리는 엄마의 몸짓에 호롱불 불꽃이 포락거리는데, 어디선가 부엉이 노래가 들려온다. 그리고 엄마의 아랑거리는 눈물방울~.

 

이 감흥 어느 소절, 어느 모습이 《트로트》(trot, 속보. 빠르게 걷다)라는 단어·용어와 엇대이는가. 감흥의 샘 물결이 연결 지어 지는가. 이 노랫말을 애청·애창·흥청하면서, 눈을 감고 <아랑~ 아랑~ 아랑가~>라고 웅얼거려 보시라. 그러시면 금방이라도 어머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머님 생각에 머리가 빙~ 돈다. 가슴도 먹먹해진다. 눈시울이 눅눅해진다. 《아랑가》다.

 

도대체 이 《트로트》라는 말이, 우리 고유한 유행가와 연계하여 사전적으로 의미하거나, 감성적으로 품고 있는, 우리 고유의 감정과 감성은 무엇인가. 그야말로, 말(구어)과 용어(문어)로 먼저 사용·통용하면서, 감성적인 의미와 메시지를 억지로 얽어서, 엮어 짠, 엇대어 연결 지은, 의미상의 베(綿布, 면포)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그래서 《아랑가》(我浪歌·ArangGA)로 개명(改名) 혹은 작명(作名)명, 신명(新名)을 하자고, 진중하게 제언 하는 것이다. 이런 유의 노래와, 그 노래의 탄생 시기와, 그 시기를 살아낸 사람들을 얽은 스토리텔링이 ‘유행가와 역사 앙상블’이다. 아랑가스토리텔링이다.

 

《트로트》라는 용어는, 1910년대 미국에서 불린 폭스트롯(Foxtrot)이 시발점이다. 4/4 박자 4비트 리듬을 바탕으로 연주하는 춤곡으로, 폭스(Fox)라고도 부른다. ‘빠르게 걷는다’는 의미다.

 

이는 1914년 미국 보드빌 쇼에서 해리 폭스(Harry Fox)가 처음 선보였다는 것이 통설이다. 또한 당시 보드빌 쇼에서 주축을 이루던 래그타임(ragtime, 재즈를 가미한 피아노 연주)의 댄스 스텝을 응용한 것이라고 보는 설도 있다.

 

이것이 일본으로 천이된 후, 엔카(演歌)에 접목되어, 도롯도(도로도)라는 어눌한 말과 용어로 사용되다가 우리나라로 유입되었다. 이 말이 오늘날 우리가 통용하는 《트로트》라는 용어의, 사용 모멘텀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 통설이다.

 

그리고 그 뒤로는 아무도 말이 없었다. 문제를 제기한 그 누구도 없었다. 그냥 덩달아 지속적으로 풍성거릴 뿐이다. 통속적이거나 상업적인 활용에 주의를 기울였을 터이다. 이렇게 60여 년의 세월 동안 귓전을 들락거렸으니, 생경(生梗)할 것도 없는가. 아니다. 다시 되새김질(反芻, 반추)을 해봐야 한다. <우리 어머니> 노랫말 2절을 이어서 펼친다.

 

긴 머리 빗어내려 동백기름 바르시구 / 분단장 곱게하구 내 손 잡고 걸으실 때 / 마을 어귀 휜했었네 / 우리 어머니 여섯 남매 자식 걱정 / 밤잠을 못 이루고 / 칠십 평생 가시밭길 살아 오셨네 / 천만년 사시는 줄 알았었는데 / 떠나실 날 그다지도 멀지 않아서 / 막내딸은 울었답니다.

 

이 노래는 원곡가수 이효정이 직접 노랫말을 지은 절창이다. 그래서 오선지에 기대어 앉은 노랫말이 이효정 가수의 어머님 모습이다. 생생한 삶의 그림이다. 이효정이 1961년생이고, 그녀가 36세이던 1997년에 <우리 어머니> 노래를 부르면서 가슴으로 울었으니, 필시 어머님은 1930년대 생일 터이다.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터널 속 20여 년차이던 시절~.

 

노래 속에서 어머니가 빗어 내리는 긴 머리는 낭자머리다. 쪽진(찐)머리라고도 했었다. 처녀시절에는 댕기머리였다. 그 긴 머리는 달비라고 부르기도 했었다. 지역에 따라 불린 토속어이거나 방언이다.

 

이 긴 머리카락은 기르다가 잘려서 가발의 원재료가 되기도 했다. 어머니의 잘린 긴 머리카락은 자식들 뒷바라지 돈으로 환생하기도 했다. 그 시절 끼니는 건너 띄어도 머리카락은 푸지게 자랐다. 나라를 일본에 빼앗겼던 그 시절, 나라 빚을 갚는데 소용되기도 했었다.

 

그 긴 머리카락에 반지르~ 하게 발리던 동백기름은 남녘해안가의 동백꽃열매 기름이기도 하고, 강원도에 많이 자생하는 생강나무(개동백)열매 기름이다. 그나마 있는 집 아녀자들은 남서해안과 울릉도에 많이 자생하는 진짜 동백열매 기름을 발랐고, 좀 형편이 강퍅하던 집안의 아낙네들은 개동백 열매 기름을 발랐었다. 생강나무 열매 기름이 동백꽃열매 기름과 비슷해서 개동백으로 불리고, 그 열매 기름이 어머님들의 머릿결에 윤기를 더했었다. <소양강처녀> 노래 속 동백꽃도 생강나무꽃이다. 김유정의 소설 속 동백꽃도 생강나무꽃이다.

 

이효정 가수의 어머니가 바른 분단장의 분은 기실 박가분이었을 터이다. 이 분은 1930년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상품화 된 분이다. 박 씨 기업인의 부인이 창안하여 만든 분이라서, 박가분이라고 했었다.

 

이 뒤를 이은 분단장 감이 ‘동동구루무’장수들의 손가방에 들려서 들어온 가짜 분단장감들이었다. 이 모습을 얽은 절창이 김병걸이 지은 노랫말 <동동구루무>에 걸려 있다. 지금은 잊혀 진 추억의 이름.

 

또 이쯤에서 《아랑가》라는 말을 다시 음유하시라. 말(구어체)에는 각양각색의 본새가 있고, 용어(구어체)에는 저마다의 고유한 의미가 담겨 있다. 이 말과 용어를 아우르고, 개별적인 특정 몸동작이 더해지는 소통과정에는 각별한 메시지가 있다. 이 메시지를 매체 혹은 맥락으로 하여, 상호 간에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 공감대다. 이는 우리 한글(말)의 고유함이고, 특별함이다.

 

이런 말과 용어 중에서 출처와 본새와 의미가 고유하지 않은 것 하나를 꼽으면, 단연코 오늘날 열기 머금은 바람인 듯 풍성거리는 《트로트》라는 단어이다. 대중가요 유행가 경연 열풍이 날마다, 절기마다, 해마다 방송매체마다, 고유하거나 패러디를 한 기획연출 감성 물결로 이어가는 덕분이다. 이러한 경향과 사조는 《트로트》라는 장르·용어에 매달린 바람결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대중가요는 1921년경 통창 되기 시작한 <희망가>를 기준으로, 100년의 궤가 흘러왔고 흘러가고 있다. 더러는 1894년경부터 대중들의 입에 오르내린 <새야새야 파랑새야>를 창가(대중가요)의 시발로 치면서, 우리 대중가요사를 130여 년으로 가름하는 견해도 있다. 필자의 견해도 후자이다.

 

하지만, 《트로트》라는 말과 용어에 골똘해 보면, 마음이 밤이슬에 젖은 삼베옷을 걸친 것처럼 눅눅하게 무거워진다. 그래서 이 용어를, 순수한 우리 고유의 노래 아리랑(我理浪·我理朗)과 가요(歌謠)를 융합한, 《아랑가》로 통칭하기를 각별하게 제언한다. 우리말은 《아랑가》로, 한자로는 《我浪歌·我朗歌》로, 영어로는 《ArangGA》로 표기하면 좋겠다. 글로벌 언어사용 권역을 고려한 표기이다.

 

《트로트》라는 용어는 1960년대부터 우리 대중가요 유행가의 한 장르, 대표적인 단어로 통칭해온 말이다. 당시에는 《뽕짝》으로 칭하기도 했다. 이 말(구어체)의 본새와 용어(문어체)에 담기거나 전하는 메시지를 숙고하기보다는, 일상적인 말과 용어로의 통용이 먼저였을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 시절 양풍(洋風)처럼 불어온 팝과 스탠더드팝을 중심으로 한 대중문화예술의 양화(洋化) 영향도 있었으리라. 경술국치(庚戌國恥, 1910)에 뒤이은 식민터널의 끝, 해방광복과 미군정과 6.25전쟁과 월남전쟁 파병의 연쇄 역사 노드에서 탄생한 사생아 같은 용어일 수도 있으리라.

 

이제는 우리의 고유한 이름패(말·용어)를 달아야 한다. 늦었다. 하지만 늦지만은 않았다. 다시 내일, 1년 혹은 100년의 뒷날, 아랑가로 통용될 미래의 오늘을 앞당겨서 새겨보시라. 그날이 오면, 그때가 오면, 그때를 오늘날 우리처럼 살아갈 후손들이, 《아랑가》라는 말과 용어에 저마다의 팬덤으로 매달릴 것이 아닌가. 아랑~ 아랑~ 아랑가~ 라고 하면서.

 

필자는 《트로트》를 《아랑가》로 통칭하자는 국민제안을, 문화체육관광부로 공식 제안했다. 국민제안, 1AB-2312-0015650. 코스미안뉴스 신문에도 제안했고, ‘유차영의 아랑가 국민애창곡 해설’로 연재할 것이다. 중소기업신문에도 주창의 글을 얹었다. 주간의학신문과 덴탈프레스에서도 깃발을 흔들었고, ‘유차영의 추억의 아랑가’설로 연재해갈 것이다. 국민캠페인으로 이어가는 것이다.

 

우리 전통가요의 살아 있는 전설, 미스트롯3에 직접 출연하여 <유달산아 말해다오>를 절창하고, 정서주에게 왕관을 씌워 준 이미자 선생도 《트로트》라는 용어 단어에 아쉬움을 피력했다. 국민가요황제 나훈아 선생도 《트로트》를 아리랑으로 통칭하자는 말을 종종 했었다.

 

그런데 왜, 아무도 말이 없는가. 그 많은 공중파 지상파 방송과 언론사 유튜브들은 《트로트》라는 깃발을 상업적으로 흔들면서, ‘우리 것’에 대한 문제 제기와 숙고와 대안 제시는 왜 없는가. 하지 않는가. 통속성 때문인가, 상업성 때문인가. 국민 캠페인이 없어서 인가. 저마다의 생각으로 곰곰 해 주시기를 진중하게 제언 드린다.

 

누가 이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위하여 캠페인을 선도할 것인가. 누가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 줄 것인가. 오늘날 시대별 세대별 연령별 성별별 커뮤니티별로 사용 통용하는 말과 단어들의 면면은 그야말로 천태만상이다.

 

이러한 생경스러운 통용어 공감어의 생멸은 그야말로 초고속 초진화, 초승화, 초강화, 초상상의 언어설림(言語說林)이다. 사전에도 없는 말, 사전에 실을 필요도, 겨를도 없이 횡횡하는 단어 용어가 천만의 숲이고, 억만의 바다와 같고, 청명한 창공의 밤별과 같다.

 

이러한 시대적인 경향 속에서, 특정 개인의 열정은 주변 사람들과 커뮤니티의 관심 대상이 되고, 이 관심은 따라 하거나 공감하는 유행으로 번진다. 이런 유행은 문화로 이어지고, 이 문화가 지속되고 확장되면, 역사가 된다.

 

특정한 나라나 지역이거나 커뮤니티의 용어 생멸 역사는 인류학의 단초로 쌓인다. 사회학적인 맥락이 되기도 한다. 이 단초와 역사의 강 물결에 띄워진 돛단배의 선단(艦船)은, 영원으로 가는 감성 유람함대(遊覽艦隊)가 된다. 이제부터 《아랑가》문화예술 선단을 띄우자.

 

《트로트》라는 말과 용어를 《아랑가》로 통칭, 통념, 통설, 통용하자. 가장 오래된 우리 것, 가장 우리다운 것, 가장 깊은 골(샘)에서 흘러나온 우리 것이, 가장 글로벌한 K-팝과 K-컬쳐로 빛나고 있음이, 이에 대한 증표이다.

 

《아랑가》는 ‘아리랑과 가요’를 융복합한 우리 고유의 말과 용어이다. 이 말과 용어에는 5천 년 우리 민족의 기(氣)와 혼(魂)과 얼(臬)이 담겨 있다.

 

2019년에서 불어와 2024년의 봄까지 이어진, 앞으로도 이어져 갈, 우리노래 경연 타이틀 제목을 《아랑가 경연》으로 하자. 아랑가~ 아랑가~ 아랑가~ 깃발을 흔들자.

 

우리의 고유한《아랑가》풍류를 선도하는 TV조선과 대한민국 방송 언론사와 미디어 매체 여러분~.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각양각색의 유튜브 운영자 여러분~.

 

삼가 귀하들을 존경하는 마음과, 5천년 한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모아 정중하게 제언을 드립니다. 이제부터 《트로트》라는 단어·용어 사용을 지양(止揚)하고, 《아랑가》라는 단어·용어로 통용 통념 통칭하십시다. 이 깃발을 코스미안뉴스에서 흔듭니다. 코스미안뉴스~.

 

<우리 어머니> 원곡가수는 이효정, 이 노래를 인생곡으로 절창하여 미스아랑가 진(眞)의 왕관을 쓴 정서주는 2008년 부산 출생, 한림연예예술고등학교 재학생이다. 정서주의 팬카페는 《동분서주》다. 정서주가 대한민국 《아랑가》의 깃발을 최초로 들고 흔드는, 최초의 백년가객이 되기를 기원 드린다.

 

 

[유차영]

시인 수필가

문화예술교육사

한국유행가연구원 원장

유행가스토리텔러 제1호

글로벌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경기대학교 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산학교수

이메일 : 519444@hanmail.net

 

작성 2024.03.08 10:27 수정 2024.03.0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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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