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일화의 재발견]
제3화 교과서적인 지식보다 사고의 유연성이 중요해!
교과서적인 지식보다 사고의 유연성이 중요해!
(‘강철왕’ 카네기)
미국의 사업가이자 자선사업가인 앤드루 카네기(Andrew Carnegie, 1835∼1919)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물이면서 동시에 비난을 받는 인물이기도 했다.
‘철강왕’으로도 유명한 그가 설립한 ‘카네기 철강회사’는 미국 철강 산업의 4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다. 그는 기업의 이익을 추구하며 노동자의 삶을 철저히 외면한 ‘악덕 기업주’로 평가받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벌어들인 엄청난 돈을 사회와 인류를 위해 적극적으로 기부한 자선사업가로도 널리 알려졌다.
카네기는 평생 열심히 번 돈을 좋은 일에 써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그것을 실천한 사람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특히 그는 도서관 건립에 많은 투자를 했으며, 2,500개 이상의 도서관 건립에 도움을 주었다. 또한 뉴욕 시에 ‘카네기 홀’을 지어 기증했고, 죽기 전까지 인류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 5억 달러에 가까운 재산을 기부했다. 카네기는 영국의 스코틀랜드에서 수직공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가난한 생활을 경험하며 자랐다. 열세 살 때 부모님을 따라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기 위해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열일곱 살부터 방직공장사원, 전신기사, 전보배달원, 기관사 조수 등으로 일하면서 정직과 신용, 노력을 자신의 재산으로 삼았다.
그는 열여덟 살 때 펜실베이니아철도회사에 취직해 철도건설이 급속하게 진척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이때 철강 산업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스무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는 실질적인 가장이 되었고, 돈을 버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낼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는 조만간 강철시대가 오리라는 예감을 했고, 서른 살이 되자 그동안 다니던 철도회사를 그만두고 자기 사업에 전념했다. 서른두 살부터 사업의 폭을 넓히면서 미국 내에서의 강철의 대량 제조 및 유통을 실현시키며 마침내 미국 최대의 철강회사를 설립했다.
카네기는 유능한 직원을 뽑기 위해 자신이 직접 문제를 내기도 했는데, 이때 그가 신입사원에게 원했던 것은 ‘사고의 유연성’과 ‘지혜’였다. 그가 낸 문제는 아주 단순한 것이었다.
“여러 겹의 끈으로 꽁꽁 묶인 상자가 여기 있습니다. 이 상자를 여시오.”
대부분의 지원자들은 황당해 보이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 지 망설였다. 한두 겹도 아니고 여러 겹으로 꽁꽁 묶인 포장상자는 을 다 풀어내기까지 진땀을 흘려야 할 정도로 단단하게 묶여서 조금의 틈도 없었기 때문이다.
손으로 그걸 다 풀어내려면 시간도 아주 많이 걸렸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손으로 차근차근 상자를 풀어나가는 방법을 택했다.
잘 풀리지 않는 매듭을 만지며 진땀을 흘리고, 면접관 앞에서 최선을 다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낑낑거리며 끈과 싸웠다.
그런데 카네기가 원한 것은 그런 방식이 아니었다. 그는 이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사람을 원했다. 그래서 이 경우에 상자의 끈을 손으로 꼼꼼하게 풀어내려고 노력하는 사람보다는, 보다 효율적인 방식을 활용해 상자 속의 물건을 꺼내는 사람들을 유심히 보며 그들을 합격시켰다.
예를 들면 누구나 생각하는 고정관념을 깨고, 단 한 번에 상자의 끈을 칼로 뚝 잘라내고 그 속의 물건을 꺼내 면접관들에게 보여준 사람에겐 후한 점수를 주는 것이다. 또한 칼이나 가위 등을 좀 달라는 등,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에게도 후한 점수를 주었다.
카네기는 이 문제를 내면서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고정관념에 매이지 않고 유연한 사고로 문제해결을 해내는 사람을 보고 싶었고, 이론이나 지식에 의존하기보다는 삶의 지혜를 발휘하는 그런 사원을 뽑고 싶었던 것이다.
자료제공 : 투데이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