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흥렬] 딩크족의 삶이 행복이라고

곽흥렬

흔히 결혼을 두고 ‘인륜지 대사人倫之大事’라고들 한다. 성씨가 다른 생면부지의 청춘남녀가 서로 만나 연분을 맺고 하나의 가정을 이루는 이성지합二姓之合, 이를 일컫는 관용어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사랑의 열매인 Ⅱ세를 생산하는 일은, 크게 보면 역사의 맥을 잇는 ‘천륜지 대사天倫之大事’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요사이 들어 결혼은 하되 자식은 두지 아니하려는 부부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이를테면 천륜지 대사를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특히 이삼십 대 젊은 부부들 사이에서 이러한 현상은 두드러진 추세를 보인다. 이름하여 ‘딩크족’이다. 딩크란 영문 구절 ‘Double income no kids’의 머리글자를 따서 붙인 신조어新造語이다. 곧, 두 사람이 함께 직업을 가져 두 배의 수입이 있으면서 아기는 낳아 기르지 않는 부류란 의미로 통한다. 

 

어느 신문은 특집기사까지 꾸며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를 굳혀 가는 딩크족의 실태를 전하고 있다. ‘딩크족 남편들 둘만 있어 행복’이라는 사탕발림 같은 제목을 달고서. 

 

그 기사를 읽으며 나는 ‘세상 참 많이도 변하고 있군’ 하는 독백을 탄식처럼 내뱉었다. 비단 기사의 제목에서 풍겨나는 끈적거림 때문만은 아니다. 기사 속의 인터뷰 내용이 적잖이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고 하는 편이 오히려 옳겠다.

 

“얽매여 살고 싶지 않아요.”

“애 때문에 좋아하는 일을 못 하게 되거나 지장 받는 상황 자체가 싫어요.”

“아무래도 둘이서 버니까 풍족하게 쓰면서도 삶의 기반은 더 빨리 마련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아이에게 들일 비용을 좋아하는 일에 쓰고 둘을 위해 투자하는 거죠.” 

 

통통 튀어 오를 듯 깜찍하고 발랄한 어투들, 이 인터뷰 내용들을 보면서 심히 개탄스러운 마음을 넘어 뭔가 모를 서글픔 같은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이들의 면전에다 대고 “오냐 그래, 너희들 많이 행복해 봐라. 참 좋~겠다.” 하는 비아냥 버무린 독설이라도 마구 퍼부어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람이란, 작게 보면 자기 한 몸에 불과하지만 크게 보면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역사의 줄에 꿰여 있는 존재들이 아닌가. 그들의 아버지의 아버지, 어머니의 어머니의 피와 살을 물려받아 이 광명한 세상에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른다. 그러기에 한 생명 한 생명이 다 하나같이 선택받은 개체들이다. 그런 그들이 자기만의 삶을 즐기고 그것으로 끝내 버린다는 것은 지극히 무책임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결혼조차 하지 아니하고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살다 떠나는 부류도 더러더러 있기는 하다. 예컨대 승려, 신부, 수녀 같은 분들이다. 하지만 이분들은 중생을 구제하고 진리를 깨치기 위해 한 생애를 목마르게 걸어가는 수행자가 아닌가. 그들의 고단한 삶을 어찌 딩크족의 계산적인 삶과 감히 맞대놓고 이야기할 수 있으랴. 이것은 그분들의 삶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독이다. 

 

‘나’란 존재는 단순히 내 한 몸이 아니다. 한 가정의 남편이요 아내이며, 한 아이의 부모요 한 부모의 자식이며, 한 가문의 대를 이을 빛나는 후손이다. 이것이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라는 사실을 짐짓 외면하려 들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물론 그럴 리야 있을까마는, 그래도 만에 하나 우리들 모두가 딩크족 같은 삶을 살아 버린다는 극단적인 가정을 한다면, 인류의 역사는 그로부터 삼사 대가 못 가서 끊어지고 말지도 모를 일이다.

 

내 한 몸 편히 살다 간다는 생각, 이것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속 좁은 생각인가.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행복이라고 했다. 물론 스스로 그렇게 여기면 그걸 행복이 아니라고 끝까지 우길 도리는 없겠다. 세상만사 다 제 마음먹기 나름이니까. 

 

하지만 조금 시각을 달리해서 살피면 그들의 삶은 행복이 아니라 오히려 불행 쪽으로 무게 중심이 실린다. 참된 행복이란 게 정녕 그런 것일까. 그저 어떻게든 많이 벌어서 제 마음 내키는 대로 즐기다 가는 삶, 그런 삶에 과연 ‘진정한 행복’이라는 이름을 붙여줄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나의 대답은 서슴없이 “글쎄, 아니올시다.”이다. 내가 지금껏 보아온 숱한 불행스러운 부류 가운데 딩크족 같은 경우가 태반이었음을 감히 단언할 수 있다.

 

행복도 행복 나름이다. 겉으로는 엇비슷해 보이는 행복일지라도 기실 그 격이랄까 차원을 따지고 들자면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난다. 딩크족의 행복은 발걸음에 차이는 십 원짜리 동전처럼 가치 없어 보인다. 참된 행복이란 타인에 대한 사랑과 용서, 희생과 헌신에 있는 것, 그들은 안타깝게도 저 하늘의 해와 달 같은 이 평범한 진리를 모르거나, 아니면 외면하고 사는 사람들이다. 결혼을 하여 아등바등 부대껴 보지 아니한 남정네는 바늘구멍처럼 속이 좁으며,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눈물을 흘려 보지 아니한 여인네는 진정한 어른으로 대접받을 자격이 없다. 

 

딩크족의 삶은 잎만 무성한 채 열매는 하나도 달리지 않은 과실나무 같다. 그런 삶은 속 깊은 철학이 결여된 반풍수 인생이다. 그것도 자기대로의 철학이라고 우겨댄다면 굳이 아니라고 강변할 재간은 없다만, 모두가 그들과 같은 가치관을 갖는다는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할 때 세상은 지금보다 많이 어려워질 게 뻔하다. 

 

자연 파괴니 환경 오염이니 하는 따위로 다가오는 인류의 위기는 인간 외적인 문제이다. 이건 차라리 사소한 경우일지도 모른다. 더 심각하고 더 궁극적인 문제는 딩크족의 사고思考와 같은 우리들 자신에게 있다.

 

한 부모가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자식을 낳고 또 그 자식이 자식을 낳고……. 이렇게 하여 인류의 역사는 강물처럼 면면히 이어지는 것, 이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거룩하고 숭고한 가치인가. 

 

누구든 인생을 좀 생각해 가면서 살아갈 일이다.

 

 

[곽흥렬]

1991년 《수필문학》, 1999년《대구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우시장의 오후』를 비롯하여 총 12권 펴냄

교원문학상, 중봉 조헌문학상, 성호문학상, 

흑구문학상, 한국동서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받음

제4회 코스미안상 대상 수상

이메일 kwak-pogok@hanmail.net

 

작성 2024.04.23 10:12 수정 2024.04.23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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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