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인문기행] 강진에서 즐기는 달빛 서정

여계봉 선임기자

하늘과 바람은 시를 짓고, 산과 들은 청자를 빚은 4월 말의 강진 땅은 지금 만화방창(萬化方暢)이다. 꽃 중의 왕이라는 모란 하면 생각나는 곳. 가장 아름답고 탐스러운 모란을 볼 수 있는 곳은 아마도 남도 문화관광의 명소인 전라도 강진 땅에 있는 영랑 생가(永郞生家)가 아닐까 싶다. 영랑 생가 초입에 있는 사의재를 지나가니 주막집 모녀가 나와 먼 곳에서 온 나그네를 반긴다.

 

사의재 주막집의 모녀

 

다산의 사의재를 지나 영랑 생가 가는 길 화단에는 모란이 꽃을 피우고 있고, 수국은 모란이 질 때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다. 길가에 새겨진 김영랑 시인의 시어(詩語)들은 시문학의 향기를 연신 뿜어내고 아름다운 모란꽃 향연은 나그네의 감성을 주체하지 못하게 만든다. 

 

영랑 생가의 모란

 

사의재 객사로 돌아와 짐을 풀고 온돌방에 잠시 누우니 멀리서 달려온 탓인지 고단했던 몸이 이내 반응한다. 요요(擾擾)한 달빛이 사의재 객사의 창을 넘어 나그네 얼굴 위에 내려앉는다. 잠에서 깨어나 객창(客窓)을 통해 달빛을 바라보니 여심(旅心)의 외로움이 갑자기 스며든다. 방에서 나와 마당으로 내려서니 인기척이 사라진 홀가분한 달밤, 한옥마을에 널려 있는 달빛 자락은 호젓함을 더한다. 대문을 조심스레 열고 부서 내린 달빛을 밟아 가며 마을 저잣거리로 나선다. 은백색 달빛 아래를 걷는 내 마음은 짙푸르게 흘리는 월색(月色)에 점점 절어만 간다.

 

사의재 한옥체험관 정경

 

밤의 정적을 깨는 개구리 우는 소리를 따라가니 그 소리의 끝은 주막 옆 작은 연못이다. 야심한 시간인데도 연못 옆에 우뚝 선 주막집 모녀가 나그네를 반긴다. 저녁 무렵까지 시끌벅적하던 사의재 주막 초가지붕에는 달빛이 내려앉는다. 다음 달이 되면 이 연못가에는 수국이 하얀 꽃을 피워 마치 소금을 뿌린 듯 사의재 주변을 백야(白夜)로 만들겠지...

 

 사의재 객사의 봉창

 

정조의 신임을 듬뿍 받으며 개혁을 추진하던 조선 최고의 사상가 다산은 정조가 승하하자 한순간에 집안이 쑥대밭이 되고, 자신은 이곳 강진으로 귀양 오게 되는 인생 최대의 시련을 맞게 된다. 

 

사의재(四宜齋)는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이 1801년 전남 강진으로 유배를 와서 처음 묵었던 주막이다. 이곳은 다산이 18년 유배 생활 중 처음 4년 동안 유했던 곳이라 가장 힘들게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다산은 주막집 모녀의 도움을 받아가며 4년간 여기에 머물면서 학문에 매진하며 제자들을 양성하는데, ‘용모는 단정하게, 말은 무겁게, 생각은 맑게, 행동은 신중하게 하라’는 가르침(四宜)을 실천한다. 즉, 사의재란 ‘네 가지 올바른 가르침을 실천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이란 뜻이다.

 

개구리들도 지쳤는지 우는 소리가 잦아드니 이제 달 숨소리까지 들려오는 듯 달은 가까이에 있다. 오늘같이 호젓한 달밤에 다산은 봉창을 열고 나라 걱정, 가족 걱정으로 밤새 잠 못 이루었으리라. 

 

마당극 '다산의 꿈'이 펼쳐지는 공연장의 연못

 

객사로 돌아와 대청마루에 앉아 돌담 위에 부서 내린 월광을 바라본다. 저 선연(鮮姸)한 빛깔은 달빛을 완상(玩賞)하는 나그네의 객수(客愁)를 보채고 있다. 오랜만에 달빛 서정으로 가슴을 가득 채운 낭만 나그네는 쉽게 잠 못 이룬다. 

 

모란이 필 때는 찬란히 빛나는 봄이었지만 질 때는 감당키 어려운 슬픔의 봄이 되리라. 

 

 

*사의재 한옥체험관: 서울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강진행 버스를 타고 4시간 반 정도 가면 강진버스여객터미널에 도착한다. 터미널에서 사의재길을 따라 600여m 정도 걸어가면 사의재와 한옥체험관이 나온다. 사의재 한옥체험관은 2023년까지는 강진군청에서 운영했으나 지금은 한옥시설 운영 전문업체(강진올모스트홈, 061-434-6598)에서 예약을 받아 운영 중이다. 당일 15시부터 다음날 11시까지 1박 2일 숙박이 가능하고,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한옥 관람도 할 수 있다. 근처에 사의재, 사의재 저잣거리, 영랑 생가, 세계모란공원, 시문학파 기념관 등이 있어 강진의 자연과 문화의 향기를 만끽할 수 있다. 

 

 

 

[여계봉 선임기자]

수필가

공학박사

이메일 : yeogb@naver.com

작성 2024.04.29 10:47 수정 2024.04.29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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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