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의 전통 활인 각궁(角弓)은 중국이나 일본을 통하여 수입한 물소뿔을 활채의 안쪽에 붙여 반탄력을 강화한 활이다. 각궁은 성능이 매우 우수하고 내구성이 뛰어나서 예로부터 우리나라가 활의 강국이 되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다. 그 주재료인 물소뿔은 구하기 어렵고 고가였기 때문에 각궁은 고급 활로 취급되었다. 각궁은 주재료인 물소뿔의 색에 따라 흑각궁, 황각궁, 백각궁 등으로 불렸다.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는 각궁과 관련하여 아래와 같은 기록이 있다.
『난중일기』 1594년 2월 5일
아침에 군기시에서 받아온 흑각궁 100장을 수를 세어 착서하고, 화피 89장도 (수를 세어) 착서하였다.
[원문] 朝 軍器寺受來黑角一百張 計數着署 樺皮八十九張 亦着署圖.
* 군기시: 군용 물품을 제조하는 업무를 관장하던 중앙 관아이다.
* 착서: 착압(着押)이라고도 하며 현대의 서명과 비슷하다.
위 『난중일기』의 기록을 살펴보면 화피(樺皮)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인터넷에서 이를 검색해보면, 대개 '벚나무 껍질로서 활을 만드는 자재이다.'라는 내용과 비슷한 설명이 나온다. 아마도 한자 '樺'가 '벚나무'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활의 자재로 사용되는 화피는 벚나무 껍질이 아니라 자작나무 껍질이다. 참고로 한자 '樺'는 '자작나무'의 의미도 있다.
화피(樺皮)를 자작나무 껍질로 보는 근거는 조선시대 사료에 관련 기록이 존재하고 또한 이를 자세히 밝힌 연구 자료도 있기 때문이다. 화피는 신축성과 내수성이 좋기 때문에, 활의 접착제인 어교(부레풀)가 수분으로 인하여 떨어지는 것을 막을 목적으로 활의 표면에 부착하는 자재로 사용되었다. 어교는 습도가 높아지면 그 접착성이 떨어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으므로 습한 날이 많은 여름철에는 각궁의 성능이 떨어지는 원인이 되곤 하였다. 즉, 화피는 각궁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주요 자재였다.
조선시대의 주요 임산물은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대동지지』 등과 같은 지리지에 그 수취 지역이 잘 정리되어 있다. 이는 국가가 징발할 수 있는 물자를 체계적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기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이들 토산물은 매년 정기적으로 국가에 바치는 공물 또는 공납이었으며, 그 가운데에는 화피도 포함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된 화피(樺皮)의 수취 군현 - 자료 출처: 『조선시대 국용임산물』(배재수/이기봉/주린원, 2004)
화피는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에 그 수취 지역이 정리되어 있는데, 함경도와 평안도 지역으로 한정되어 있다. 화피로 잘못 알려진 벚나무나 산벚나무는 함경남도 이북으로 자생하지 않는다고 하므로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의 화피는 자작나무 껍질로 단정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전통 활 각궁을 만드는 장인들은 백두산 인근 지역이나 일본 북해도에서 생산되는 화피를 수입하여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참고자료]
민승기, 2004, 『조선의 무기와 갑옷』, 가람기획
배재수/이기봉/주린원, 2004, 『조선시대 국용임산물』, 국립산림과학원
[윤헌식]
칼럼니스트
이순신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저서 : 역사 자료로 보는 난중일기
이메일 : thehand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