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 조약돌이 아니라 금속활자입니다!”
유적발굴단이 흥분해서 외친 말이다. 서울 종로 피맛골 재개발 현장에서 조선 전기 금속활자가 쏟아졌다. 땅속 깊이 묻혀서 구석진 곳, 깨진 항아리 속에서 오랜 시간여행을 마치고 어둠에서 깨어났다. 한글 600여 자, 한자 1,000여 자의 금속활자가 이물질과 뒤섞여 보석같이 반짝거렸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글 금속활자로서 앞으로 세계사를 바꿀 정도의 유물이다.
시간의 지문들이 첩첩이 쌓였다. 흑요석 빛깔의 손톱만 한 몸피가 날개를 달고 허공을 날아오른다. 활자(活字)는 살아있는 글자다. 6백여 년 전 글의 형태소와 문체가 시공을 넘나들 듯 오롯이 새겨져 있다. ‘가갸거겨’학동들 글 읽는 소리 들리고, 지혜의 푸른 서기 선비님들 환생하는 것 같다. 영혼은 잠들지 않고 침묵할 뿐, 홀로이 어둠을 견뎌온 금속활자를 보니 그 속살마다 역사가 살아 숨 쉰다.
활자마다 뜻과 소리를 품었다. 한 줌 손안에 집으면 낱말이 되고 문장이 되어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문명의 햇살이 된다. 힘을 준 획순 하나하나마다 조선의 의지와 사상이 익고 익어 발효된 쇳내가 시퍼렇다. 흰 두루마기 펄럭이는 서권기, 정감 묻은 시가(詩歌)의 향취가 시간 밖의 시간으로 흐른다. 그 단단한 쇠붙이 안에도 다양한 서체와 여러 폴트가 섞였다. 문면을 훑는 동안 어느 필경사와 장인의 영혼이 도드라진다.
쇠는 강하다. 칼과 창이 되고, 낫이나 호미가 당연한 줄 알았는데 활자가 된 게 신기한 일이다. 무(武)나 경(經)이 아닌 문(文)이다. 펄펄 끓는 쇳물을 부어 이번에는 향기로운 꽃으로 피어난 셈이다. 하긴 붓은 칼보다 강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글자마다 날개 짓는 점과 획을 끌어안고 삼엽충 화석처럼 굳었다. 덧칠한 검정 크레파스를 조심스럽게 긁어낸 그라타주처럼 글씨체의 잎맥이 오련하게 드러난다.
금속활자를 왜 만들었을까?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신의 계시와 인간의 영혼이 늘 가슴속에 존재한다. 생각은 기록으로 남겨지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싶은 욕망이 일어난다. 바위나 동굴에 표시한 기호나 그림으로는 미약하다. 구술을 받아적거나, 밤새 다시 베껴 쓰는 필사 작업도 만백성을 상대로는 역부족이다. 더 많은 양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싶다.
흙이나 나무로 활자를 만들었으나 견고하지 못하고, 목판처럼 고정된 판의 새김은 그 인쇄가 한 문헌으로 국한되어 불편하고 비효율적이다. 한 벌의 활자를 만들어 오래 잘 간직하면서 필요한 책을 수시로 손쉽게 찍어내는 방법은 단단한 금속활자밖에 없었다. 라이프 잡지가 지난 천 년간 인간의 시간 중 가장 역사적인 사건으로 금속활자 발명을 1위로 선정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금속활자가 없었다면 르네상스도 없고 발전된 현대문명도 결코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금속활자의 본적지는 대장간이 아니라 주자소다. 주자소라고 풀무나 화덕이 왜 없었으랴. 벌겋게 달아올라 꿈틀거리는 쇳물이 용암처럼 흘러 제 획과 순을 파고들었다. 뜨거운 불과 강한 쇠를 다루어 정교한 활자를 만들려면 얼마나 오랜 경륜과 기술이 필요했을까 싶다. 그리스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도 워낙 손재간이 좋아서 눈에 보이지 않는 그물까지 만들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누구보다 나라의 문화와 철학을 만든다는 자긍심이 대단했을 것 같다.
그들이 만든 땀의 결정체가 바로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이다. 구텐베르크 <42행 성서>보다 78년 빠른 일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고려시대 직지심체요절이다. 청주 흥덕사에서 1377년 찍어낸 금속활자본으로 책 속에 주자인시(금속을 녹여 만든 활자)라고 표기되어 있다. 더구나 고려 말에 인쇄된 <상정예문>이 발견된다면 200년 이상 앞선 것이 증명될 수도 있다. 금속활자 인쇄술은 오랜 시간에 걸쳐 기술이 축적되고 전승되면서 발전하는 고도의 기술이다. 고려의 금속활자가 대륙을 가로지르는 초원의 길을 통해 유럽과 독일에 전파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자치통감에 이 활자로 실물 찍은 것도 확인이 되었다. 그런데 관청에서 주조되던 이 귀한 조선 초기의 금속활자가 왜 민간 창고의 항아리 안에서 발견되었을까? 한양 도성의 운종가라면 많은 사람이 구름처럼 모여드는 시장 상인들의 거리였다. 후에 인쇄출판이 민간에서도 생겨나면서 활자가 이양된 것인지, 임진왜란 때 금속활자 주조시설이 대량 파괴되거나 약탈당하여 급히 관청에서 꺼내 숨기느라 그랬는지도 모를 일이다. 관심이 있는 한 역사는 오늘처럼 언제나 살아있다.
일찍이 한반도에서 철기문화가 발달했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이 문화에 대한 높은 관심이 있었고, 그에 상응하는 통치자들의 애민 사상과 한글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지식공유와 글자를 읽게 하려는 노력이 금속활자 발명으로 이어졌다. 특히 세종 때 갑인자는 활자의 네모를 평평하고 바르게 하고 인판도 정교하고 튼튼하게 만들었다. 밀랍을 전혀 쓰지 않고 대나무로 빈틈을 메워 조립식으로 판을 짜서 인쇄하는 단계로 인쇄술의 절정을 이루었다고 한다.
책 읽는 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라 했다. 예부터 ‘꽃향기는 백 리를 가고, 술향기는 천 리, 사람 향기는 만 리를 간다.’라는 말이 있다. 인향(人香)의 싹은 책향(冊香)에서 나온다. 저 금속활자가 사람을 키웠다. 물리고 버릴 것 분별하고, 지키고 이루고 되살릴 것 잊지 않고, 부끄러운 세상 비우고 비워 상궤(常軌)를 벗어나지 않으려는 저 꼿꼿한 선비정신의 노둣돌이 되었다.
집 안에 있는 몇 권 고서적을 꺼내 본다. 치자 물들인 황색 표지에 명주실로 꿰맨 제책을 보자 고본상의 문자향이 느껴진다. 붓으로 쓴 필사본도 있지만, 광곽(匡郭)과 계선(界線)이 그려진 활자본이 유달리 눈에 선명하다. 우려하면서도 굵고 듬직한 금속 활자체에 늘품한 철향(鐵香)이 스며있다.
[허정진]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
저서 : [꿈틀, 삶이 지나간다]
[그 남편, 그 아내]
[시간 밖의 시간으로]
[삶, 그 의미 속으로]
천강문학상 수상
등대문학상 수상
흑구문학상 수상
선수필문학상 수상
원종린수필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