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진왜란은 많은 장수들과 백성들이 전쟁에 동원되어 그들의 정신과 육체가 매우 고단한 시기였다. 조선 조정은 장수들과 백성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정책과 방안을 모색하였다.
그 가운데 하나가 담비가죽으로 만든 이엄(耳掩)을 지급한 일이다. 이엄은 이마, 귀, 목덜미를 덮는 방한모로서 남바위나 아얌으로도 불린다. 『중종실록』의 기사(권21, 중종9년-1514년 10월 25일 갑인 3번째 기사)에 따르면 이엄은 처음에는 귀를 보호할 목적으로 제작된 방한구였으나 나중에는 머리까지 보호하는 형태로 변화하였다.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도 담비가죽 이엄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다음은 그 해당 기록이다.
『난중일기』 1594년 10월 12일
비변사 공문에 의거하여 원수(권율)가 담비가죽 이엄을 좌도(전라좌도)에 15장, 우도(전라우도)에 10장, 경상도에 10장, 충청도에 5장을 나누어 보냈다.
[원문] 備邊司公事據 元帥 鼠皮耳掩 左道十五令 右道十令 慶尙十令 忠淸五令 分送.
* 원문 ‘令’은 호피나 녹피 같은 가죽을 세는 단위로서 ‘領’으로도 표기되었으며, ‘張’과 의미가 유사하다. ‘令’과 ‘領’의 용례는 『조선왕조실록』에서 쉽게 검색된다.
위 기록의 원문에 언급된 '서피(鼠皮)'는 담비가죽을 가리킨다. '서피(鼠皮)'를 '쥐가죽'이라고 해석한 『난중일기』 번역서도 있는데, 이는 그 의미를 잘 몰라서 벌어진 해프닝이다.

조선시대에 담비가죽은 여러 종류로 분류되어 취급되었는데, 검은 담비가죽, 자색 담비가죽, 노랑가슴 담비가죽 등이 그것이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의 사료를 살펴보면 담비가죽은 공물로도 취급되는 귀한 물품으로서 그 종류와 명칭에 관한 기록이 적잖이 발견된다.
이들 종류와 명칭을 정리하면 아래의 표와 같다. 아래 표를 살펴보면 위 『난중일기』 기록에서 언급된 서피(鼠皮)는 노랑가슴 담비가죽을 가리키는 명칭임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아래 표의 명칭 가운데 초피(貂皮)와 돈피(獤皮)는 사피(斜皮)와 함께 담비가죽을 통칭하는 용어로도 사용되었다.

담비가죽은 지금도 그렇지만 조선시대에도 고급 의류 자재에 속했다. 『경국대전』의 「예전」-「의장(儀章)」은 당상관 이상의 관리는 초피 이엄을 사용하고 그 이하는 서피 이엄을 사용하도록 규정하였다. 서피가 언급된 위 『난중일기』의 며칠 전 기록에는 초피가 언급되어 있다.
『난중일기』 1594년 10월 4일
선전관 이계명이 표신과 선유교서를 가지고 왔고 초피도 내려왔다.
[원문] 宣傳官李繼命 持標信宣諭敎書到 內賜[犭+召]皮
* 원문의 글자 가운데 [犭+召]는 '貂'의 오기로 생각된다.
『선조실록』의 기사(권55, 선조27년-1594년 9월 21일 병신 3번째 기사)에 따르면 당시 선조는 수륙의 여러 장수들을 위로할 목적으로 이엄을 선전관 이계명이 내려가는 편에 함께 보냈다고 한다. 즉, 위 『난중일기』에 언급된 초피는 담비가죽 이엄으로 볼 수 있다.
[참고자료]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한국고전종합DB,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한국고전종합DB, 『일성록(日省錄)』
한국고전종합DB,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박도식, 『조선전기 공납제 연구』, 2011, 도서출판 혜안
[윤헌식]
칼럼니스트
이순신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저서 : 역사 자료로 보는 난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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