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 칼럼] 자연주의자가 되자

이태상

독일 철학자 니체가 말했던가. ‘자연으로 돌아가자’라고. 이 말을 나는 ‘자연주의자가 되자’ 이렇게 표현해 보리라. 1970년대 초 파독 간호사 부인을 따라 독일로 간 친구가 나체촌에 갔었다는 얘기를 편지로 듣고 나는 놀라면서도 신기해했었다. 한국에는 아직 없겠지만 유럽과 미국에는 곳곳에 누드 비치와 휴양지가 있다. 흔히 옷이 날개라 하지만 맨몸의 일탈과 파격이 주는 해방감에 비할 바가 못 된다고 나체주의자들은 말한다. 

 

알몸으로 숲속을 걷다 보면 에덴동산을 거니는 듯한 황홀한 기분이 들기도 한단다. 벌거벗은 몸은 주변의 나무나 돌처럼 그저 자연의 일부일 뿐이다. 벌거벗고 산책할 때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치한이 아니라 선인장의 길고 뾰족한 가시라고 한다. 

 

미국에는 알몸 예찬론자들이 제정한 ‘전국 누드 데이’가 있다. 이날은 해마다 ‘누드 휴양주간’에 뒤이어 찾아온다. 누드 휴양주간은 미국 독립 기념일 다음의 첫 번째 주이고 누드 데이는 누드 휴양주간이 끝난 뒤 첫 번째 월요일이다. 나체족들은 클럽 단위로 모여 매년 누드데이 기념식을 갖는다. 미국 나체주의자들의 단체인 ‘전미휴양산업협회’는 250개 클럽으로 구성되어 있고 전체 회원 수는 3만 2천 명을 헤아린다. 

 

대형 휴양지가 주도하는 활발한 홍보활동과 회원들의 입소문을 통해 나체주의에 관한 관심이 커지면서 대중문화도 수용 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우선 케이블 TV가 옷을 벗은 사람들을 다루는 프로그램 제작에 나섰다. 디스커버리채널은 지난해 나체주의자들을 출연시킨 리얼리티쇼 ‘네이키드 앤 어프레이드’를 내놓으며 뉴 프런티어 개척에 나섰다. 

 

벌거숭이들이 서바이벌 게임을 펼치는 디스커버리 프로그램에 뒤이어 올여름 케이블 방송사인 VH1이 ‘데이팅 네이키드’를 선보였다. 적극적인 홍보 효과 때문인지 처음으로 누드 랜치를 찾는 초참들의 수도 점차로 늘어나고 있다. 올해 아내와 함께 애리조나주 투산 외곽의 호화 나체족 휴양지 미라 비스타를 방문했던 한 남성은 이곳의 공식 웹사이트에 자신의 경험담을 올려놓았다. 입촌 후 방을 배정받은 이 남성은 일단 옷은 벗었지만, 도무지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고 한다. 

 

어쩐지 어색하고 쑥스러워 아내와 함께 침대에 걸터앉아 맥주를 마시며 한동안 창밖의 광경을 지켜보기만 했다. 하지만 일단 방 밖으로 나가자 느낌과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단다. 불과 몇 분 사이에 그는 물론 아내도 자신이 벌거숭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초반의 낯섦은 옷이라는 상징적인 매개물을 통해 몸과 마음을 구속해 온 사회적 속박에서 풀려났다는 해방감으로 대체됐다. 이 남성의 경험담은 옷을 벗으면 누구나 그저 똑같은 인간일 뿐이라는 깨달음으로 끝난다. 

 

애리조나주에는 특급 리조트인 샹리라 랜치와 미라 비스트 외에 캠프 버디와 토노파의 공용 온천 등 나체족들이 몰리는 명소가 몰려 있다. 누드 커뮤니티에는 구성원 모두에게 적용되는 철칙이 있다. 절대 주변 사람들을 응시하지 말고 상대를 존중하며 보편적인 예의를 지키라는 것이 이들이 준수해야 할 불문율이다. 

 

휴양지 관계자들은 또 피부보호와 위생상의 목적을 위해 선크림을 듬뿍 바르고 타월 등 깔 것을 가지고 다니라고 조언한다. 이와 같은 현상과 나체주의자들의 증언은 당연지사인 것 같다. 우리 모두 이 세상에 알몸으로 태어나지 않았는가. 그래서 영어에서도 알몸을 우리의 ‘생일정장’이라고 부르나 보다. 어렸을 때 덴마크 작가 안데르센의 ‘황제의 새 옷’을 읽고 그때부터 나는 사람이 옷을 입고 산다는 게 위선이라고 생각해왔다. 

 

중앙일보 일간스포츠지에 ‘10만 원 입금 시 나체 성관계 영상 보여줄게’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에 따르면 강원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클럽 아우디녀’로 알려진 이모 씨를 공연 음란죄와 음란물 유포 등의 혐의로 수사 중이라고 7월 8일 밝혔다. 이 씨는 텀블러와 인스타그램 등 SNS 계정에 자신의 나체 사진과 성관계 동영상의 일부분을 올려 수만 명의 팔로워를 확보했다. 

 

그녀는 사진 밑에 ‘full’ 영상을 보려면 DM을 보내 달라’는 글을 올렸고, 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메시지가 오면 자신의 계좌번호를 알려준 뒤 월 10만 원을 입금하면 노출 영상과 성관계 영상 등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이 씨는 자신이 마치 사회운동가인 것처럼 행세해 논란을 키웠다. 그녀는 영상을 통해 얻은 수익금은 채식주의를 위한 모임에 쓰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6월 24일 인스타그램에 남친과 성관계한 영상 팔아서 돈 벌고, 비건 쇼핑몰 확장시키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앞서 이 씨는 클럽에서 나체로 춤추는 영상이나 청계천, 신촌, 강남역 등 시민들이 많이 오가는 도심에서 동물보호나 양성평등 등을 부르짖는 피켓을 들고 반라 시위를 벌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이 외제차 브랜드 아우디의 딜러였다고 밝혀 온라인상에 ‘클럽 아우디녀’로 불리고 있다. 경찰은 이 씨의 음란물 유포 혐의가 사실로 밝혀지면 처벌할 계획이라고 한다. 한편 몹시 안타깝고 가엾게도 같은 지면에 실린 다른 짤막한 기사가 하나 있다. 

 

성 정체성 혼란으로 ‘스스로 성기 자른 40대 미혼 의사’ 이야기다. 경남경찰청에 따르면 경남의 한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 A(40)씨가 자신의 집에서 스스로 성기를 잘랐다. 경찰은 나흘 뒤 병원 측으로부터 의사가 며칠째 출근을 하지 않았다는 신고를 받고 A씨 집으로 찾아가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 A씨는 집에서 2-3Km 떨어진 한 공원을 배회하던 중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껴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명문대를 나온 뒤 미혼인 A씨가 스스로 성기를 절단한 뒤 응급치료를 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경찰은 A씨를 상대로 정확한 경위를 조사 중이라고 한다. 이야말로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인위적으로 강요된 정체성의 혼란으로 빚어진 희비극이 아닌가.

 

최근 한 친구가 이메일로 희한한 동영상을 내게 보내왔다. 일본의 일반단체 여성들 수백 명이 보는 앞에서 공개 섹스하는 비디오다. 젊은 남녀가 풀코스로 성관계를 갖는 것을 지켜보면서 여성 관객들이 계속 환호성을 질러 대는 것이었다. 나도 흥미진진하게 이 장면들을 보면서 잠시 상상해봤다. 서로 살인적으로 때리고 맞으며 메어치는 복싱이나 레슬링 같은 난폭한 만행 스포츠 대신 이런 사랑놀이가 그 얼마나 더 관람해볼 만한가. 올림픽 종목으로도 채택되고 세계 각국 방방곡곡에서 열광적인 인기리에 공연될 수 있는 날이 어서 왔으면 하고. 존 레넌과 오노 요코가 ‘전쟁놀이 대신 사랑놀이하자’라고 몸소 시범을 보였듯이 말이다.

 

청소년 시절 어디에선가 읽은 글이 평생토록 잊혀지지 않고 갈수록 그 내용에 동의하고 동감하게 된다. 다름 아니고 영화 보기 보다는 책 읽는 것이, 총천연색 영화보다는 흑백 영화 보는 것이, 소설이나 수필보다는 시를 읽는 것이, 말을 다 하기보다는 못다 한 말을 남겨두는 것이, 비교도 안 되게 훨씬 더 낫다는 것이다. 시인 이상도 ‘비밀이 없는 사람은 재산이 없는 사람 같이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라고 했다지 않나. 우리말에 ‘말 밖의 말’이니 ‘말 밖의 뜻’을 듣고 찾으라는 것과 같다. 영어에서도 ‘Read between the lines’라고 한다. 장석주 시인의 시 ‘대추 한 알’은 이렇게 함축적이다.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최근 몇 년 동안 많은 뇌과학자들이 연구조사 해본 결과 인터넷 온라인 삶은 유동성 지능을 촉진하고 분산시켜 주는 반면, 오프라인 삶은 우리의 사고능력을 총체적으로 종합적이고 구체화해준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 한 예로 우리가 전자책을 읽을 때와 종이책을 읽을 때 같은 책을 읽지 않고 마치 다른 책을 읽듯 한다는 것이다. 전자책은 겉날림으로 읽고 종이책은 숙독하게 된다는 얘기다. 뇌신경학자 ‘수잔 그린필드’는 그녀의 저서 ‘정신 변화’에서 그 차이점을 점點과 선線에 비유한다. 우리 식으로 표현한다면 나무와 숲이 되겠다.

 

‘오프라인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이야기의 동선을 따라가며 관찰함으로써 우리는 단순 잡다한 정보자료를 지식으로 바꿀 수 있다. 이것이 온라인에서처럼 신속한 반응과 끊임없는 자극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내가 보건대, 그 요체는 큰 그림에서 보는 이야기다.’

 

지난 6월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시학을 가르치는 교수 ‘Professor of Poetry’는 1708년 처음 생긴 교수직으로 영국의 계관시인 다음으로 명예로운 직함으로 선출된 사이몬 아미티지가 일상생활의 조잡하고 때로는 익살맞은 비속함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한 편의 시에서 그의 시철학을 밝혔듯이 말이다.

 

나는 단 1달러, 다 해어진 리바이 청바지 한 벌

그리고 주머니칼 한 자루 갖고 

미대륙을 횡단해보진 못했지만 

영국 맨체스터에서 도둑들과 함께 살아보았네.

 

나는 맨발로 인도의 타지마할 대리석 바닥에 

내 발자국 찍는 소리 들어가며 여행해보지 못했지만 

(검은 이끼 낀)블랙 모스강가에서 납작한 돌로 

물수제비 뜰 때 일던 잔물결 소리 들었네. 

내가 던진 돌들이 수면에 스쳤다가 가라앉는 걸 느꼈네.

 

나는 경비행기를 타고 뛰어내리려고 

낙하산 줄을 만지작거리지 못 해봤지만 

아동 탁아소에서 고개조차 못 가누는 

남자아이의 머리를 받쳐주고 

그의 통통한 손을 어루만져 주었네.

 

그리고 참 목이 메고 우리 가슴 속 어디선가 

작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센세이션,

이 둘 다 다른 감각의 일부, 그 느낌말이어라.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이메일 :1230ts@gmail.com

 

작성 2024.06.15 09:52 수정 2024.06.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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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