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배 칼럼] 신(新) 부부별곡

이윤배

남녀가 지구상에 모습을 드러내면서부터 종족 보존을 위해 보편화되기 시작한 ‘일부일처제’의 혼인 제도는 인류가 개발한 뛰어난 발명품 중 하나라고 한다. 물론 ‘일부다처제’를 선호하고 있는 일부 국가와 종족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지만……,

 

그런데 인류에게 만약 일부일처제의 혼인 제도란 발명품이 없었다면, 사람 역시 사자나 호랑이 등 맹수들처럼 자신의 DNA를 가진 후손을 남기려는 방편으로,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피 터지는 치열한 싸움과 경쟁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현명한 인류는 일부일처제란 발명품 때문에 이를 통해 자신의 DNA를 계속 유지해 나가고 있다.

 

인간은 성년이 되면 삶의 궤적과 살아온 환경이 전혀 다른 남녀가 만나 혼인이란 의식을 통해 부부로서의 연을 맺는다. 그리고 부모를 닮은 자식을 낳고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한평생 생사고락을 같이한다. 그런데 시대가 복잡다단해지고 삶이 팍팍해지면서 결혼 생활에 대한 회의와 함께 부부들 사이에 황혼 이혼, 졸혼(卒婚), 그리고 수면 이혼 등 새로운 행태의 신조어 혼인 관계 문화(?)들이 생겨나고 있다. 

 

‘황혼 이혼’은 1990년대 초반에 생긴 이혼 행태다. 황혼 이혼은 말 그대로 20년 이상 부부로서 결혼 생활을 유지해 온 50대 이상 부부가 법적으로 완전한 남남으로 갈라서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같은 황혼 이혼은 일본 불황기에 퇴직한 남편들이 부인들로부터 이혼소송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을 때 등장했다. 좁게는 60~70대의 이혼을 뜻하기도 하지만, 넓게는 자녀가 성년이 돼 출가하거나, 대학 진학 후 이혼하는 경우를 포함하기도 한다. 

 

그런데 60~70대 이상 노년층에 황혼 이혼 대신 ‘졸혼’이란 새로운 문화가 등장해 주목받고 있다. ‘졸혼’이란 규정에 따라 소정의 어느 과정을 마치는 졸업처럼, 이혼이 아닌 ‘결혼을 졸업했다’라는 뜻이다. 즉, 결혼한 지 오래된 부부가 혼인 관계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남편과 아내의 의무와 책임에서 벗어나 따로따로 여생을 자유롭게 사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말년에 각자도생의 삶을 사는 것이다. 이 같은 졸혼은 2004년 일본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가 ‘결혼을 권함’이란 책을 출판하면서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졸혼 후 부부가 예전처럼 같은 집에서 서로 간섭하지 않고 살기도 하지만, 대부분 별거해 따로 산다. 그렇더라도 대개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정기적으로 만나 친교 시간을 갖기도 한다. 졸혼은 각자의 사생활이나 취미활동 등을 상호 존중하기 때문에 싱글과도 같은 삶을 누릴 수 있어 이혼이나 별거의 경우처럼 서로에 대한 적대적 관계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특히 졸혼은 결혼이란 틀을 깨지 않고 부부가 각자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요즘 노년층 부부 사이에 늘어나고 있다. 일찌감치 졸혼을 선언하고 홀로 사는 유명 연예인들도 있고, TV 드라마에서조차 졸혼이 자연스러운 주제로 등장하고 있어 사회적 변화를 실감하게 한다.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신조어인 ‘수면 이혼’이란 정상적인 혼인 생활을 하고 있는 부부가 잠만 각자 다른 공간에서 자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경우 많은 부부가 수면 이혼을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수면의학회가 지난해 발표한 통계를 보면 미국인 부부의 35%가 가끔 또는 지속적으로 별도의 방에서 따로따로 잠을 자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역시 수면 이혼 부부가 늘어나고 있으나 아직 정확한 조사나 통계는 없다. 그러나 의사들은 수면 이혼에 대해 부정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부부가 따로 자다 건강상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발생했을 때 서로 신속한 케어가 불가능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남녀 간의 결혼이란 신성한 것인데 이를 지나치게 희화화(戱畵化)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런데 자식 키우며 먹고 사는 데 바빠 그동안 누리지 못한 작은 행복을 인생 말년에라도 찾아서 누릴 수 있다면, 새로 등장한 제도나 문화를 백안시하거나 사시(斜視)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로 수용하고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 모두 단 한 번 사는 유한한 인생이니 말이다.  

 

 

[이윤배]

(현)조선대 컴퓨터공학과 명예교수

조선대학교 정보과학대학 학장

국무총리 청소년위원회 자문위원 

호주 태즈메이니아대학교 초청 교수

한국정보처리학회 부회장 

이메일 : ybl7736@naver.com

 

작성 2024.06.17 10:58 수정 2024.06.17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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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