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기자: 한별 [기자에게 문의하기] /
하얀 기억
그분들을 만날 때마다
하루 전의 기억은 사라지고
늘 낯선 사람으로 만난다
치매 노인들의 눈빛은
금세 떠나버린 열차를 간이역에서
멍하니 바라보는 흐린 눈동자가 되기도 한다
봄날의 꽃잎은 떨어지는 슬픔을
지닌 채 피기가 바쁘게 지고 있다
봄바람에 실려 날리는 꽃가루가
코끝을 스칠 때 쯤 꽃잎이 날리는
그 아픔만큼이나 심한 알레르기 비염을 앓는다
꽃잎이 진 자리를 보았다
아직까지 피어난 자리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꽃봉오리의 하소연은 어느 누가 들어 줄 것인가
우리 인간이 지나간 일들을 기억하는 것은
머잖은 나이에 어차피 잊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가까운 일부터 하얗게 지워지는 망각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다
애달픈 찬 서리 산기슭에 스며들어
보호시설이 노을 속에 잠길 때
‘나를 집으로 데려다 주라’는
애원을 딸 아들이 눈물 속에 묻어 버리자
‘그래 알겠다. 내 죽으면 이곳에서 나가겠지’
파문으로 갈기갈기 찢어지는 아픔만 허공 속으로 날아 간다

[김태식]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온마음재가센터 사회복지사(현)
울산신문 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해양문학상 논픽션 소설 당선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이메일 : wavekt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