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불모지에서 기적을 이루어낸 부산국제영화제(PIFF)와 관련한 책이 이번에 출간되었다. 부산일보 기자이며 한국영화기자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호일 기자가 라는 책을 냈다. 올해로 14회째를 맞이하는 부산국제영화제는 짧은 기간 내에 아시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국제영화제로 성장했다. 이런 성공 뒤에는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기적을 이루어낸 김동호 집행위원장을 비롯한 박광수, 이용관, 전양균, 김지석, 오석근 등 소위 부산국제영화제 개국공신 6인방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국제영화제는 우리 영화계의 숙원사업 중 하나였다. 1980년대부터 영화진흥공사는 국제영화제의 필요성을 공언해왔고, 1991년 초에 국제영화제 개최문제에 대한 토론회를 주관하기도 했다. 영화인협회도 대종상을 영화진흥공사로부터 넘겨받으면서 이 영화제를 국제영화제로 발전시키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한 영화시장의 문호를 개방해 국내시장의 70% 이상을 직배 및 수입영화가 차지하자, 영화인들 사이에서는 한국영화산업 존폐의 관건이 달린 해외시장 진출을 위한 국제영화제 개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이런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여 출범한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해 그동안 논문이나 보고서 등은 있었지만 단행본 형태의 책으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부산국제영화제의 태동과 출범 그리고 성장해 온 과정을 이 책은 아주 자세하게 그리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제시한다.
1996년 2월 13일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가 출범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7개월 후인 9월 13일 오후 6시 30분! 부산 해운대 수영만 야외영상장에는 긴장이 감돌았다.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실패냐 성공이냐를 삼판 받는 날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야외영상장은 5천 여 관객으로 가득 찼다. 행사를 준비한 관계자들은 ‘도대체 이 사람들이 어디서 온 것인가’라며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의아해 했다. 남포동 PIFF(부산국제영화제)광장은 젊은이들로 넘쳐났다. 기대 이상의 대성공이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작년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에는 20만이 넘는 관객이 다녀갔고 전세계의 유명 배우, 감독들이 대거 참석하여 토오쿄오나 홍콩 영화제를 앞지르고 부산은 명실상부한 아시아 영화의 허브가 되었다. 세계제작자연맹(FIAPF)의 페스티벌 디렉터로 국제영화제의 등급을 평가하는 필립 모레는 2001년에 이미 부산국제영화제를 세계에서 여덟 손가락 안에 드는 국제영화제라고 평가한 바 있다.
김호일 기자는 강제규 감독의 ‘쉬리’가 대박이 터지면서 한국의 영화산업이 비약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던 1999년 제4회 부산국제영화제 때부터 영화분야를 맡아 지금까지 부산국제영화제와 늘 함께 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산 증인이며, 고언(苦言)과 채찍을 주저하지 않았던 감시자였고, 위기엔 구원을 자처했던 후원자였다. 이 책에는 중진 언론인으로서의 날카로운 시각, 오랜 기간의 체험이 간결한 문체로 담겨있다. 더구나 이 책은 정사(正史)와 야사(野史)를 함께 다루고 있어 부산국제영화제를 이해하는데 교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호일 기자는 영화제 최고의 스타는 관객이라고 한다. 2000년 제5회 영화제 당시 세차게 내리는 비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영만 야외영상장에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어둠 속의 댄서’를 끝까지 지켜본 관객들의 일화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고 한다. 올 가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부산을 찾을 것이다. 영화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영화 마니아들도 이 책을 읽고 떠나면 부산국제영화제를 관람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김호일 지음 / 자연과인문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