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진 칼럼] 파리잡이 끈끈이

허정진

무조건 밉고 싫은 존재가 세상에 하나 있다. 파리란 놈이다. 피부에 닿는 그 갈퀴 같은 발판의 불쾌한 흡착과 낯선 이물감, 사람의 신경을 예민하게 자극하는 부산스러운 움직임과 잔망스러운 무게감 때문에 모른 척 외면할 수만은 없어 사뭇 짜증스럽다.

 

집요하다. 제 딴에도 목표물이란 게 있는지 한 곳에 집중하면 쫓아도 멀리 달아나지를 않는다. 사납게 내치는 인간의 손길을 널뛰기하듯 살짝 피하는 그 밉살스러운 동작 하며, 눈이며 입가며 막무가내로 날아드는 그 경망함이며, 본능인지 습성인지 제자리 돌아오기를 무한정 반복하는 그 고집스러움이 사람을 여간 성가시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하긴 뇌가 없는 파리로서는 배려나 예의 같은 게 처음부터 없었겠지만…….

 

그 영악함도 인정한다. 여간해선 잡히지 않을 만큼 민첩하기 이를 데 없고, 날개를 가졌답시고 자유자재로 비행해서 원하는 곳은 어디든 제일 먼저 나타난다. 경쟁심이 많아서인지 가만히 기다리는 경우도 없고, 누군가 가까이 다가서면 잔뜩 몸을 움츠려 달아날 준비부터 할 만큼 경계심도 탁월하다. 남보다 앞서가야 하고, 어떻게든 이겨야만 하고, 무엇이든 많이 가져야만 직성이 풀리는 승자경쟁의 세상이 그곳에도 있다.

 

한여름의 달콤한 오수를 그놈에게 매번 시달릴 수만은 없다. 번개처럼 손으로 뿌리치기도 하고 참다못해 벌떡 일어나 파리채를 들고 득달같이 내려치기도 하지만 몇 번 그러다 보면 파리와 실랑이를 하느라 결국 낮잠만 애꿎게 달아나고 만다. 언젠가는 요절을 내리라, 남은 것은 불타오르는 적의뿐이다.

 

유혹하기로 했다. 마냥 그들의 꽁무니를 쫓아다닐 수만은 없어 파리잡이 끈끈이에 먹을 것을 냄새로 풍겨 그들의 식탐을 자극하기로 했다. 저 넓은 방 안의 파리들이 손바닥만 한 저 작은 끈끈이 위에 과연 빠져들까 반신반의했지만, 욕심이라는 것은 그 어떤 생명체에게도 존재하는 본성이었는지 외출했다 돌아와 보면 눈에 띄게 사로잡혀 요동들 치고 있었다. 불시착의 비행인지, 탐욕의 불운인지 순간 궁금해진다.

 

이제 막 끈끈이에 빠진 놈이 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조화인가 싶을 것이다. 늪에 빠진 몸이 점점 수면 아래로 끌려들어 가는 것처럼 끈끈이에서 떨어지지 않는 자기 다리를 두고 적잖이 당황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자신이 저지른 공과를 미처 예단하지 못했거나, 설마 나에게 그런 불상사가 있으랴 신의 은총을 착각한 결과이었으리라. 

 

용을 쓴다. 온몸에 힘을 주어 앞 다리를 쭉 내뻗으며 힘차게 비상하기 위해 날개를 파르르 떨기도 하고, 이번에는 반대로 엉덩이를 치켜들고 뒷다리를 뽑아내려 몸을 앞쪽으로 깊게 쏟뜨리기도 한다. 발을 묶인 채 길가에 펄럭거리는 바람 인형을 보는 것 같다. 좌우로 황급히 사지를 뒤틀어 혹시나 반사적인 빈틈도 노려본다. 세상에 이렇게 전신으로 힘을 쏟아본 적이 있을까.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생존의 욕구이긴 하지만 쓸모없는 파리에게도 생명에 대한 애착이 저리 절실한 것이다.

 

소용이 없다. 몇 번을 시도하다가 결국 탈진 상태가 되어 몸도 날개도 끈끈이 속으로 고꾸라지고 기울어져 서서히 잠겨간다. 여기저기서 마지막 몸부림을 치느라 움찔대는 모습이 죽어 널브러진 전쟁터 시체들 사이에 패잔병의 절규처럼 사뭇 처량한 순간이다.

 

한편으론 가엾다. 그래도 살아있는 목숨인데, 다 제 가진 재주대로 살아보겠다고 한 처사였을 텐데 부지불식간에 함정에 빠지고 올가미에 걸려든 꼴이 되었다. 지난날에 후회라도 있는 것인지, 열심히 살아온 죄밖에 없다고 세상에 항변이라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고소하다. 그렇게 탐욕을 앞세워 세상일을 혼자 잘난 체, 오만하고 교만하기 이를 데 없이 헤집고 다녔으니 그에 대한 응징이고 결말인 것 같아 오히려 위안이다. 과유불급인 것처럼, 남의 불행을 나의 성공으로 바꾸고자 하는 비열하고 비겁한 영혼과 뭐가 다를 바가 있겠냐고 되묻고 싶은 것이다.

 

저것 봐라. 그중에도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놈이 있다. 의도적인지 습성인지, 함부로 몸을 끈끈이 속으로 빠뜨리지 않고 주변으로만 배회하며 호기심에 슬쩍슬쩍 건드려만 보는 용의주도함이라니. 삶과 죽음의 절묘한 운명의 순간이다. 그 살아남은 자에게 또다시 적개심이 인다. 부정직하고 비양심적인 짓을 하고도 응당 치러야 할 파멸의 대가를 요령 있게 피해 가는 것 같아 은근히 부아가 돋는다. 질투다. 권선징악의 묘한 보상 심리가 스멀스멀 솟구친다. 어떻게든 끈끈이 속으로 빠뜨려야 마음이 후련해질 것 같아 손으로 부추겨 은근히 유도한다. 싫은 것은 싫은 것이다.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속임수를 쓰면 남보다 앞서가고 쉽게 출세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조금은 불공평하고 불평등한 방법일지라도, 조금은 남에게 피해를 주고 힘들게 할지라도 그 대가는 곧 자신의 이익과 성공으로 연결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체했을 뿐이고, 요령 없고 셈이 느려서가 아니라 다만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이 주위에 많이 있다. 착하지 않으면 마음이 평화롭지 않고, 정직하지 않으면 마음이 정갈해지지 않는 그런 순후한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은 그래도 살아볼 만한 곳이라고 누군가 말했으리라.

 

끈끈이 위에 파리들의 무덤이 하나씩 늘어날수록 방안에 파리들은 한 마리씩 줄어든다. 세상일도 그렇게 단순히 상대적인 문제라면 쉽게 해결책이라도 있겠지만, 자연계는 무한정 확대재생산과 소멸이 반복되는 곳이어서 이상과 현실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일 뿐이다. 다만 내가 가깝게 알고 지내는 사람, 살고 있는 이웃, 무엇보다 내 삶에서라도 그 의식이 청명하기를 기대해 보는 것이다. 

 

 

[허정진]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

저서 : [꿈틀, 삶이 지나간다]

[그 남편, 그 아내]

[시간 밖의 시간으로]

[삶, 그 의미 속으로]

천강문학상 수상

등대문학상 수상

흑구문학상 수상

선수필문학상 수상

원종린수필문학상 수상

이메일 :sukhur99@naver.com

 

작성 2024.07.09 10:56 수정 2024.07.09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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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