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의 아랑가] 김연숙의 ‘그날’

이철식 작사 작곡, 김연숙 절창

유차영

노래는 뜨고 있는데, 가수는 사라지고 없었다. 낭중지추(囊中之錐), 주머니 속에 넣어둔 송곳이 뾰족하게 튀어나온 격이었다. 유성기(留聲機)는 보이지 않는데, 소리는 들리는 격이다. 뭔가 얼굴 없는 절창, 한국대중가요 100년사에 이런 노래가 더러 있다.

 

​1983년 김연숙은 천상에서 굴러떨어지는 옥구슬의 울림 같은 목소리로, <그날>이란 노래를 남기고, 미국으로 이민을 가버렸다. 다운 타운가에서 그녀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주인공은 태평양 건너에 터를 잡아버렸다. 멀어져 간 소중했던 옛 생각을 그리면서~.

 

언덕 위에 손잡고 / 거닐던 길목도 아스라이 / 멀어져 간 소중했던 옛 생각을 / 돌이켜 그려보네 / 나래치는 가슴이 / 서러워 아파와 한 숨지며 / 그려보는 그 사람을 기억하나요 / 지금 잠시라도 / 달의 미소를 보면서 / 내 너의 두 손을 잡고 / 두나 별들의 눈물을 보았지 / 고요한 세상을 우~

 

​한 아름에 꽃처럼 / 보여지며 던진 내 사랑에 / 웃음지며 님의 소식 전한 마음 / 한없이 보내본다 / 달의 미소를 보면서 / 내 너의 두 손을 잡고 / 두나 별들의 눈물을 보았지 / 고요한 세상을 우~ / 한 아름에 꽃처럼 / 보여지며 던진 내 사랑에 / 웃음지며 님의 소식 전한 마음 / 한없이 보내본다.

 

옛 추억을 아련하게 불러내는 노랫말이다. 여기에 쇠 퉁소를 통과해 나온 얼음 방울의 울림 같은 가수 김연숙의 에코(echo) 서라운딩이 대중들의 가슴 방에 댕그랑거린다.

 

​인생은 지난날의 완료된 슬픔과 승화된 기쁨을 머금고, 내일의 장밋빛 환상을 그리면서 살아가는 길이다. 흘러간 추억과 기억의 구슬을 미래로 이어지는 오라줄에 매달고 천천히 혹은 잰걸음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나아가는 발길에는, 서러워 아파오는 얼굴들이 턱~ 턱~ 걸린다. 그럴 때마다 달무리를 올려 보지만 곡절 없는 미소만 희미하다.

 

<그날> 노랫말의 피날레는 ‘두나별들의 눈물을 보았지’이다. 대중들의 감성에 오색 단풍물을 들이는 절묘한 소절이다. ‘두나별’은 있는가, 없는가. 노래도 인기 상승 가도를 달리고, 미국에서 다시 돌아온 1987년 어느 날, 김연숙의 목청에 반한 작품자 김병걸이 노래의 주인 이철식에게 들이대듯 물었다.

 

​‘두나별이 있긴 있니? 아마 없을걸.’질문보다 대답이 더 푸짐했다. ‘곡(멜로디)을 들려주기 위해 내가 아무렇게나 쓴 가이드 가사야. 악보에 '누나별'이라고 썼는데, 가수가 '두나별'이라고 부른 거야.’ 인기의 열쇠와 감흥의 실타래는 작품자의 손끝에도 매달려 있지만, 대중들의 허허로운 들판 같은 가슴팍이 본바탕임을 보여주는 예다.

 

​‘그럼 '누나별'은 있니?’ 작사 작곡가의 대답은 웃음을 머금은 손사래였단다. '두나별'과 '누나별' 사이에는 소중했던 옛 생각이 대롱거린다. 옛 님이 서러워 눈물이 아롱진다. 인생살이, 풍진세상에 옛 님이 서럽지 않은 이가 어디 있으랴.

 

​당나라 현종 시절, 양양 땅에 살던 맹호연(689~740)이 옛 벗을 그리는 시 <여름날 남정에서 신대를 그리며>를 남겼다. 여기서 신대(辛大)는 신씨 가문의 큰아들이다. 맏상주를 대주(大主)라고 부르는 말과 상통한다.

 

​‘서산에 걸린 해 어느새 지고 / 연못에 비친 달 천천히 떠오른다 / 머리 풀고 저녁 찬 바람 쏘이며 / 활짝 트인 정자 한가히 누웠다 / 연꽃 스친 바람 향기를 실어 오고 / 죽엽 맺힌 이슬 맑게도 떨어진다 / 거문고 당겨 한 곡조 타려 해도 / 들으며 즐길 이 없어 한이로다 / 이러니 더욱 옛 벗이 그리워서 / 한밤에 애써 꿈에서 보았노라.’

 

​달 밝은 밤 정자에 앉은 선사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활초는 지금, 정남향으로 앉은 '단월활초옥루'(丹月活草沃樓)의 평상에 앉아 하늘의 달을 바라보고 있다. 맹호연의 모습이 달빛에 어른거린다.

 

<그날> 노래 속의 화자가 달의 미소를 발견한 감흥과 어울린다. 멀리 있는 친구를 그리며, 거문고도 타질 않는다. 같이 들어줄 지음(知音)이 곁에 없음을 한탄하는, 서러움과 아픔을 얽었다. 오죽하면 애써 꿈속에서 옛 님을 불렀을까.

 

​우리네 인생이다. 인생은 추억과 기억을 머금은 환상, <그날>의 연속이다.

 

추억은, 마른 솔이파리를 불 사를 때, 콧속으로 스며드는 화~한 향기다. 지난 날의 아름다운 생각의 벽돌장 혹은 조약돌을 쌓은 탑이다. 기억은, 화사한 장미꽃떨기를 만지작거리다가 꽃대에 붙어 있는 가시에 콕 찔린 듯한 따끔하게 아픈 옛 생각의 마디이다.

 

<그날>을 절창한 김연숙은 1958년 경북 고령 출생, 1982년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님이시여>로 데뷔했다. 1983년 <그날> 발표 이후 미국으로 이민 갔다가, 1987년 귀국하여 활동을 재개한 가수다. <홀로 남으면>, <기다렸어요>, <초연>, <마지막 선택>, <반문> 등으로 대중들과 소통한다.

 

​가수 데뷔 이전이던 1977년 KBS 전국노래자랑 우수상 수상자이며, 2015년 제21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포크싱어상을 수상했다. 김연숙이 참가한 전국노래자랑은 1972년 4월 3일부터 1977년 4월 2일까지 5년간 방송한 KBS배쟁탈전국노래자랑이다.

 

이 프로그램은 중단된 지 3년 만이던, 1980년 11월 9일 KBS 전국노래자랑으로 재개한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한민국 방송 역사상 최초로 단일 프로그램 40년 달성이라는 타이틀을 획득하였다. 여기서, 34년여의 세월 동안 MC를 하시다가 하늘 여행을 나서신 '딴따라'가 송해 선생이다. '딴따라'는 대중문화예술인에 대한 최대의 존칭이다.

 

한국대중가요 100년사에 대중가요 인재 발굴과 등용문은 여러 갈래다. 해방광복 이전에는 전속가수 시대였다. 1927년 2월 16일 KBS라디오 방송국 개국이후 지역 방송국 전속가수를 뽑는 콩쿠르가 그 시작이었다.

 

​1935년 목포가요제가 최초이고, 이난영이 <목포의 눈물>로 꾀꼬리의 여왕이 되었다. 유행가의 비포장도로 시대다. 1960년대는 미8군 무대가 신작로 같은 뮤지션 장터였다. 1950년 6월 25일~1953년 7월 27일까지 이어진 6.25 전쟁으로부터 1965년 베트남전쟁 발발까지 우리나라에 파병된 미군들을 상대로 펼쳐진 무대 위를 휘 누빈 연주자와 가수들.

 

​이때, '뽕짝'이라는 단어(용어)가 한참동안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이 용어(장르 명칭)가 너무 비속적이라는 통설에 대치(대용)시킨 용어가, '트로트'라는 말이다. 1914년경 미국 가수가 부른 노래, <FOX Trot>(여우가 빠르게 달린다, 빠르게 걷다)라는 용어가, 일본에서 '도로또 / 도로도 / 도롯또'라는 말도 통용되다가, 대한해협을 건너온 말이, 오늘날 우리의 고유한 감성과 감흥과 창법을 아우른 노래를 상징하는, '트로트'라는 말이다.

 

활초가 지향하는, '트로트라는 용어를, 아랑가로 변경하자는 취지의 첫 단추이다. '아랑가'는, 우리 전통 노래의 대명사 '아리랑'에서 '아랑(我浪)'을 차운하고, 노래의 보통명사 '가요'에서 '가(歌)'를 차운하여, 융복합 창의한 단어, 아랑가(我浪歌)이다. 나(우리)의 감정과 감흥을 즐겁게(치유, 힐링, 충전) 해주는 노래.

 

​다음은 1970년대 대학가요제, 강변가요제가 창작가요마당의 장터였다. 심수봉은 대학가요제가 낳은 가신(歌神)이다. 1980년대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뮤지션 장터는 KBS전국노래자랑이다. 장윤정, 박상철, 임영웅, 김희재, 이찬원, 영탁, 송가인, 송소희 등이 이를 거쳤다.

 

​이 징검다리를 <그날>의 주인공 김연숙이 건너왔음을 아는 이는 드물다. 21세기 밀폐된 코로나19 공간에 불러일으킨 유행가 경연 바람은, 그 뿌리를 1960년대 '뽕짝'에 두고 있음이여, 1990년대 도심 속의 입체 고가도로 같은 전통가요 부활 정책의 다리가 있었음을 기억하시라.

 

​한국 유행가, 아랑가 100년사에 '얼굴 없는 가수와 노래'는, 1950년대 손인호의 <울어라 기타줄>이 그 서단이다. 공보처 공무원이던 손인호는 일부러 얼굴을 내밀지 않았으리라. 1980년대 <미스 고>도 같은 맥락에 걸렸던 곡조다. 영주 출생 이태호는 노래와 얼굴이 한동안 매칭되지 않았었다.

 

​울산 출생 방어진은 어디로 갔을까. <동동구루무>는 아직도 동동거리는데, 가수는 보이질 않는다. 임주리의 <립스틱 짙게 바르고>도 비슷하다. 김태희의 <소양강 처녀>도 마찬가지이다. 노래는 두둥실 흰구름처럼 흘러다니는데, 가수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하늘의 달처럼 환하게 얼굴을 내민다.

 

하늘에 달은 밝은데, '두나별'(누나별)은 눈물을 머금고 있다. 그리움의 눈물이다. 그리움이 익으면 별이 된다. 그 별이 그대 가슴팍에 내려오면 노래가 된다. 김연숙의 <그날>처럼. 그대 그 사람을 기억하시나~. 붉은 달 떠오른 괘일산(일명, 쾌일봉 470m) 아래, 청바람이 지난날 '추억 한 덩어리'를 싣고 오셨다.

 

 

 

[유차영]

한국아랑가연구원장

유행가스토리텔러 

글로벌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경기대학교 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산학교수

이메일 : 519444@hanmail.net

 

작성 2024.07.10 16:54 수정 2024.07.10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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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