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선의 연작 詩] 똥구멍은 살아있다 (101)

전승선

 

똥구멍은 살아있다 (101)

 

 

산문을 잠갔더니 

어찌나 홀가분하고 자유로운지

맨발로 밭을 일구면서 노래를 흥얼거렸다네

다 낡아서 여기저기 고장 난 늙은 몸은

자연이라는 존재에서 벗어나는 중이라

자유를 획득하기에 하나도 슬프지 않지!

늙는다는 건 고맙게도 자연이 우릴 버리는 것

자연이라는 속박과 관심 속에서 벗어나는 것

인간이라는 숙제를 끝내고 객관자가 되는 것

입속에서 춤추는 노래와 한바탕 놀고 나니

깔끔해진 텃밭에 종달새가 날아와 노래하네

꼬리를 잘라도 다시 만들어지는 도마뱀처럼

시간이란 놈을 잘라서 저 멀리 던져 버렸지만

텃밭의 채소처럼 다시 무럭무럭 자라났네 

매일 시간의 채소를 뽑아 삼시세끼 해 먹었더니

오장육부를 돌고 돌아서 똥구멍을 타고 나와

다시 텃밭으로 돌아가서 흙밥이 되더군

아, 생명은 죽음을 통해 영생으로 진화하네

이제 조금 남아 있는 육체적 메커니즘 안에서 

즐거이 일하며 불만족에서 벗어나는 중이라네

 

“그대 아는가, 죽지 않은 개체들은 모두 죽었음을”

 

 

[전승선]

시인

자연과인문 대표

이메일 : poet1961@hanmail.net

 

작성 2024.07.15 09:55 수정 2024.07.15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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