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의 아랑가] 아리조나 카우보이

​김부해 작사 / 전오승 작곡 / 명국환 절창

유차영

<아리조나 카우보이>, 1955년에 이런 단어는 얼마나 생소했을까. 6.25전쟁이 미완의 승리 상태, 휴전협정체결로 총포성이 정지한 지 2년차 때다.

 

​흔희 우리들 부모님들이 말씀하시던, '쌍팔년도'때다. 단기 4288년이던 1955년, 그 시절은 각박했다. 1천만 실향민과 이산가족, 300여만 명의 전쟁 사상자, 17만여명의 전사 실종자, 20만 미망인, 10만 전쟁고아~.

 

​이승만 대통령의 토지개혁, 한미상호방위조약체결, 미8군사령부의 동경에서 서울 용산으로의 이전, 미8군무대라는 대중문화예술의 시장 형성, 건전가요 보급정책 시행 등등의 시기다.

 

​이런 황막하면서도, 희망의 지향하던 시절, 탄생은 축복이요 생존은 목표이던, '베이미부머들의 탄생 울음소리가 절실'하던 시기다. 이때, 명국환의 목청을 넘어온 절창이, <아리조나 카우보이> 유행가, 아랑가다.

 

카우보이 아리조나 카우보이 / 황야를 달려가는 아리조나 카우보이 / 말채찍을 말아들고 역마차는 달려간다 / 저 멀리 인디안의 북소리 들려오면 / 고개 넘어 주막집에 아가씨가 그리워 / 달려라 역마야 아리조나 카우보이

 

​카우보이 아리조나 카우보이 / 황야를 달려가는 아리조나 카우보이 / 말굽소리 노래 실고 역마차는 달려간다 / 새파란 지평선에 황혼이 짙어오면 / 초록 포장 빛 젖은 듯 조각달만 외로워 / 달려라 역마야 아리조나 카우보이

 

​카우보이 아리조나 카우보이 / 황야를 달려가는 아리조나 카우보이 / 몰아치는 채찍아래 역마차는 달려간다 / 희망의 꿈이 어린 언덕을 넘어가면 / 고향하늘 뜰 창가에 어머님이 그리워 / 달려라 역마야 아리조나 카우보이.

 

​카우보이(cowboy)는 미국 서부·캐나다·멕시코 등의 목장에서 말을 타고 일하는 남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아리조나는 애리조나(Arizona)의 우리식 발음, 미국 서부의 주이고 주청소재지는 피닉스다. 남쪽은 멕시코와 국경이고, 동쪽은 뉴멕시코주·북쪽은 유타주·서쪽은 캘리포니아·네바다주와 접해있으며, 북부 콜로라도강의 그랜드캐니언(대협곡)이 유명한 도시다. 위도 34도의 위치이니, 우리나라 대구·부산정도와 동서로 연결된다. 1912년 미국에서 48번째로 가입한 주(州)다.

 

이곳의 카우보이가 왜 우리 유행가, 아랑가에 등장했을까. 그것도 6.25전쟁이 멎은 지 2년 뒤, 우리 조국 산천에 화약 냄새도 가시지 않았고, 전쟁으로 전사·실종된 13만여 호국용사님들의 주검(屍身)들이 흙으로 화(化)하지도 않은 그 시절에.

 

서부영화 속 이국풍경을 그린 듯한데, 1절가사의 고개 넘어 주막집 아가씨는 어이할까. 노랫말을 지은 김부해(1919년 서울 출생)의 기치로 보인다. 아리조나 목장 언덕 너머에 우리나라 주막집 한 채를 펼쳐놓은 발상이다.

 

그 시절은 이국적 정서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던 시절이다. 1945년부터 1948년까지 우리나라에는 7~17만여 명의 미군이 전국 300여 곳에 주둔하고 있었다. 재조선미육군사령부군정청(在朝鮮美陸軍司令部軍政廳, United States Army Military Government in Korea, USAMGIK) 소속의 군인들이다.

 

이들은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정부수립 후 1949년6월 30일 부로, 미국 본토 혹은 일본의 미군기지로 이전해 갔다. 이후 7개월 째가 되던 1950년 1월 12일, 미 국무장관 에치슨은, 에치선 라인을 발표한다. 한반도와 대만은 미국의 극동방어선에서 제외한다는 선언.

 

그로부터 5개월 뒤에 북한 공산군이 무력남침을 해 온다. 이 전쟁이 1950년 6월 25일 새벽 04시 30분경 부터, 1953년 7월 27일 오전 10까지, 3년 1개월 1,129일간의 6.25전쟁, 한국전쟁이다.  

 

대한민국정부수립(1948) 이후, 2년 만에 발발한, 이 6.25전쟁 기간 동안 UN군으로 참전한 군인은 21개국, 195만 7천여 명, 이 중 15만1천여 명이 전사·사망·부상·실종·‧포로가 된다.

 

이들이 천이시킨 문화가 <아리조나 카우보이> 같은 유행가, 아랑가를 탄생시킨 모티브가 된 것이다. 이들 중, 고향이 아리조나였던 장병이 있었으리라. 이들이 천이(遷移)시킨 서양문물은 얼마나 될까.

 

이 노래의 화자는 아리조나 목장과 카우보이다. 애리조나는 초기 인디언들의 거주지로 그들이 1만2천년 동안 살았던 곳. 원래 스페인 지배를 받던 멕시코 땅이었다.

 

멕시코는 182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고, 애리조나지역은 멕시코의 일부가 되었다. 이후 1846~1848년까지 미국은 멕시코와 전쟁을 하고, 과달루페이달고조약으로 이곳을 차지했다. 이 조약은 1848년 5월 체결했다. 이때 멕시코는 1,500만 달러에 대한 대가로 미국에 136만km2 땅을 양도했고, 국가부채 325만 달러를 탕감 받았다.

 

카우보이(cowboy)는 야생말(馬)을 모으고 길들여서 목장까지 이동시키거나 목장 관리 등의 노동을 하였다. 이들은 목축노동을 통하여 미국 서부를 풍요롭게 만든 개척자들이다. 이들의 삶도 사진 속에서는 목가적이지만 실상을 숨 가팠다. 전원그림 속 농부들과 비슷한 경우다. 카우보이의 원산지는 스페인인제, 멕시코에서 번창했다.

 

명국환(1933~)은 황해도 연백에서 출생하여 연안중학교를 다녔으며, 중학교 2학년 때 연안극장콩쿠르에서 남인수의 <남아일생>으로 3등에 입상한다. 이듬해 6.25전쟁으로 강화도로 피난하여, 1951년 해병대에 입대를 했다가 미극동군사령부 위문공작대에서 위문공연을 다녔다.

 

6.25전쟁이 끝난 후 박경원·원방현·권혜경·이갑돈 등과 함께 KBS전속가수 1기가 되면서 1954년경 <백마야 우지마라>로 데뷔했다.

 

그의 외손녀가 아랑가 가수, 리라 이고, 외탁으로 가수DNA를 물려받은 듯하다. 명국환이 부른 노래들은 <백마야 우지마라>, <아리조나 카우보이>, <방랑시인 김삿갓>, <학도가>, <희망가>, <항구의 불사조>, <공주의 비련>, <구원의 정화>, <청춘의 삼색깃발>, <마도로스 초년병>, <전선야곡> 등이다.

 

1955년 발매한 그의 <방랑시인 김삿갓>은 45만 장이나 팔렸다. 그의 절창, <백마야 우리마라>, <아리조나 카우보이>, <방랑시인 김삿갓>, <내 고향으로 마차는 간다> 등은 모두 쌍팔년도(1955년, 단기 4288년)에 발표한 아랑가다.

 

​이제, '트로트'라는 말을 한국대중가요 100년사의 역사 언저리에 괴어 두자. 그리고 '아랑가'라는 말을 통용하자. 우리의 고유한 전통 노래 아리랑에서 차운한, '아랑'과 통속적인 노래를 의미하는, '가요'를 합친 단어(용어, 장르명칭), '아랑가'가 얼마나 산뜻한가.

 

 

[유차영]

한국아랑가연구원장

유행가스토리텔러 

글로벌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경기대학교 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산학교수

이메일 : 519444@hanmail.net

 

작성 2024.07.23 10:24 수정 2024.07.23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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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