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식 칼럼] 통영 사투리

김태식

아내와 내가 명절이나 아버지, 어머니의 제삿날에 고향을 찾을 때 고향 사투리 얘기를 하며 웃다 보면 운전 중에 간간이 밀려오는 졸음도 달아난다. 

 

딸아이와 아들이 모두 결혼을 했으니 아내가 나의 고향 통영으로 시집을 온 지도 꽤 오래되었다. 아내는 부산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학교를 모두 마치고 그곳을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는 부산 토박이라 내 고향 통영의 특이한 사투리가 생경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시집온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첫 번째로 부딪친 것이 사투리다.

 

“애기야, 카고안에 패 좀 가오이라.”

“네. 어머님, 여기에 있습니다.”

“니, 패 모리나? 이기 무신 패고?”

“이게 아닙니까?”

 

어머니는 마당의 바구니 안에 있는?파?를 가져오라 했고 아내는 방의 가구 안에 있는?실패?를 가져온 것이다. 지엄하신 시어머님의 말씀인지라 아내는 되묻지도 못했단다. 심한 사투리에다 바닷가 특유의 빠른 말로 인해서 알아듣지 못했던 것이다. 명절 때 차례를 지내고 어머니가 말했다.

 

“애기야, 차례상 좀 훔치삐라.”

 

아내는 큰일 났다고 생각했단다. 차례 잘 지내고 그 음식들을 훔쳐 가라는 말인지? 차례상을 엎으라는 말인지? 아니면 상다리를 부수라는 말인지? 모두 해당하는 뜻은 아닐 텐데 말씀 중에 ‘훔’이 훔치라는 뜻으로, ‘치’가 있으니 치든지 혹은 차든지, ‘삐’가 있으니 비틀어라? 

 

그것도 이번에는 어머님의 말이 빠르지도 않고 순하게 하셨단다. 한참을 고민하다 내게 물었다. 그것이?차례상을 깨끗이 치우라.?는 뜻이라 하니 아내는 박장대소했다.

 

따뜻한 어느 봄날,

 

“애기야, 도랑사구는 언제나 깨끈밧시리 해나야 되는기다.”

 

이번에도 아내는 큰일이 났을 수밖에, ‘도랑사구’와 ‘깨끈밧시리’를 묶어 무엇인가를 깨라는 것으로 들었단다. 한가히 장독대를 닦으시면서 뭔가를 깨라고 하시니 보통 낭패가 아니다. 

 

아내 생각대로 무언가를 깨야 되는 것도 이상하지만 도대체 뭘 깬단 말인가? 그 뜻이 ‘장독대 주위는 늘 깨끗해야 된다’는 설명을 듣고서야 새로운 사투리를 하나 더 기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어머니는 나를 불러 앉히고는,

 

“아범아, 아무래도 애기가 가는 귀가 먼 것 같다이 큰일났다. 며느리가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이 보통 일이 아이다. 이번에 집에 가거든 병원에 꼭 가바라이.” 

 

어머니는 평소에 쓰는 말을 하셨지만 그것이 사투리이기 때문에 며느리가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셨다. 어머님의 다급한 말씀.

 

“애기야, 아~아가 꼬장까리로 장난을 치다가 고랑창에 빠졌삤다.”

 

시집을 온 지도 3년 여 지났고 사투리가 어느 정도 귀에 익었다고 생각했던 터라 아내는 나름대로 해석을 한다. ‘아들이 고추장 장독 뚜껑을 열어 장난을 쳤다.’

 

유별난 녀석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아들 녀석은 붉은 색이 아니라 시꺼먼 흙탕물이다. 아들 녀석은 ‘꼬챙이로 장난을 하다가 썩은 도랑물에 빠졌던’ 것이다. 

 

여러 지방에는 그곳 특유의 사투리가 있기 마련이다. 특정지역을 제외하고는 대충 그 뜻이 짐작이 간다. 그러나 일반적인 상식을 뛰어 넘을 때에는 곤란한 경우가 간혹 있을 것 같다. 

 

내가 아는 고향의 선배 한 분은 회사 일로 서울에 연수를 갔는데 거기에는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지방 사람들이 다 모였고 그곳에서 여흥으로 사투리 경연대회가 있었단다. 통영 사투리로 일등을 했다는 얘기를 듣고 많이 웃었다. 

 

“댕기는데 모독잔키해서 허들시리 미안합니다.”

 

‘댕기는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짐작으로도 어렴풋이 알 수 있다. 그리고 ‘미안’은 표준말이다. 하지만 ‘모독잔키’와 ‘허들시리’ 쯤에서는 고개가 갸우뚱해 질 수밖에. 도대체 이 말은 러시아어도 아니고, 일본어도 아니고, 그렇다고 영어는 더욱 아닌 것 같고......

 

아무리 비슷한 뜻으로 맞춰 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나 보다. 통영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다니는데 불편하게 해서 매우 미안합니다.’이다

 

서울로 장가를 든 나의 고향 친구는 처가에 가면 나이 어린 처조카들이 ‘우리 고모부는 외국인이다’라고 한단다. 어른들은 몰라도 아이들에게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통영 사투리였나 보다. 언젠가 그의 부인에게 사투리 하나를 물어본 적이 있다. 

 

“시골로 시집온 지도 꽤 지났으니 ‘얼랑구 달랑구’가 무슨 뜻인지 아시는지요?”

“알겠어요, '너랑 나랑 정답게 지내자'라는 뜻이지요”

 

‘랑’자가 들어가니 그랬나보다. 서울사람다운 해석이다. ‘돌을 실에 매어 서로 끊어먹기 하는 것'이라고 하니 우스울 수밖에 없었다. 생선 시장에서 가격을 흥정한다. 손님이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팔아라 하니 할머니 말씀이

 

“금이 가이방상해야 팔제”

 

이 말은 ‘가격이 비슷해야 팔지요’다 오래전, 고등학교 선배님 아들의 결혼식이 있었다. 점심식사 시간에 모인 동문들은 고향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임석은 내키 가오고.” (음식은 넉넉히 가져오고)

"살다보모 짜시락하이 도이 들고.” (살림을 살다 보면 표나지 않게 조금씩 돈이 쓰이고)

“빨리 댕기지마라, 헤따빠방할라.” (천천히 다녀라, 미끄러져 넘어질라)

 

언제 들어도 정겨운 고향 사투리였다.

 

[김태식]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온마음재가센터 사회복지사(현)

울산신문 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해양문학상 논픽션 소설 당선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이메일 : wavekts@hanmail.net

 

작성 2024.07.23 11:45 수정 2024.07.23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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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