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보니 아직도 모르는 단어가 툭툭 튀어나옵니다. 그냥 건너뛰자니 마음이 불편하고, 매번 사전을 찾아보자니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닙니다. 예전에는 백과사전처럼 큰 사전을 일부러 들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주위에 보라는 듯 (조금) 과시용이기도 하고, 피곤할 때는 책상 위에 놓고 베개 삼아 머리를 괴기도 했습니다(물론, 학교 다닐 때 얘기지요). 말하자면 다용도였던 셈입니다.
사전 사용은 단어에서 단어로, 문장에서 문장으로 이어지는 높은 활용도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본래의 목적을 떠나서, 세월이 흐르고 보니 뭘 그리 무겁게 들고 다니느냐는 얘기가 절로 나옵니다. 오래전 유행했던 전자사전을 거쳐, 이제는 스마트 폰을 켜고 단어만 두드리면 되니 참 편한 세상입니다. 첨단 과학기술이 사전을 일일이 들추는 수고로움을 덜어줍니다. 그렇지만 저는 아직 두툼한 사전을 넘길 때의 그 묵직하고 따뜻한 느낌 때문에 이따금 손에 사전을 쥐어봅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수고로운 일이 어디 사전을 들추는 것뿐이겠습니까. 부모의 자식 거두어 먹이기, 공중화장실을 구석구석 깨끗이 하는 일, 사경을 헤매는 환자를 위해 장시간 진행하는 의사의 수술과 모두가 잠든 시간 경계와 질서유지에 묵묵히 헌신하는 군·경의 업무, 게다가 도심 이동의 근간이 되는 전동 열차를 깨끗이 세척 하는 근로자들의 과업(상당수가 혈액암 발병의 위험에 처한다는군요). 그 외 수없이 많은 직군의 사람들이 묵묵히 수고하고 있습니다.
성경 구절에 “걱정하지 않아도 공중에 나는 새까지 다 먹여 살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조물주께서.” 하지만 누군가는 먹고살기 위해, 또 누군가는 가치와 보람을 위해, 그리고 또 누군가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이어도 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어떠한 이유로도 수고스러운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TV를 보기만 하면 짜증 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의도하지 않아도 뉴스를 통해 전해지는 정치판 얘기는 자꾸만 눈에 들어옵니다. 얼마 전 22대 국회가 개원했습니다. 이제 진흙탕 싸움에서 벗어나 국민에게 다가오는 정치를 하지 않겠는가 기대했습니다만, 아니나 다를까 별반 다를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기대는 또 실망으로 변하고 책상만 두드리게 됩니다만, 제가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제 책상만 망가지지요. 제발 부탁을 드립니다.
국민을 위해 정치를 한다는 우리의 위정자들이 자신의 이익과 명예와 출세가 아닌, 진정 국민을 위해 수고로운 일을 마다치 않는 정치인으로서 모두가 살아가고 싶은 사회를 만들어주시길 바랍니다. 그들끼리의 권세와 먹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국민을 위한 수고로움을 마다치 않는 정치가로서 건설적인 정치판을 짜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는 묵직한 사전을 들고 다니면서 묵묵히 사전을 들추고, 지나가는 생각들을 붙잡아 종이 위에 열심히 적도록 하겠습니다. 비록 대단히 수고로운 일은 아니겠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로운 일을 하는 분에게 작은 위로를 전하는 일이 될 테니까요.
[신연강]
인문학 작가
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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