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성(성격)은 쉽고(편안하고) 조용하게 계발될 수 없습니다. 시련과 고통의 경험을 통해서만 영혼은 강화되고, 야망이 고취되며 성공을 이룰 수 있습니다.
- 헬렌 켈러
나는 오랫동안 내가 ‘지극히 현실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항상 장남이라는 나의 정체성을 잊지 않았다. 그러니 나의 언행은 언제나 장남이라는 기준에 맞춰졌다. 그렇게 꾸준히 나는 나의 한길을 걸었다. 그러다 30대 중반, 정체성의 위기가 왔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가?’
어느 날, 직장을 떠났다. 나는 나의 마음의 물결이 흘러가는 대로 흘러갔다. 그때의 해방감은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아무것도 없는데, 이 세상을 다 가진 느낌! 나는 나! 나는 맨몸 그대로 이 우주 전부였다!
우연히 MBTI 성격 검사를 하게 되었다. INFP, 이상주의자! 돈키호테였다. 나는 나의 모든 지나간 시간이 이해가 되었다. 나는 그 후 돈키호테로 살아갔다. 수시로 불같이 화를 내고, 느닷없이 울음을 터뜨렸다.
차츰, 마음이 고요해졌다.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는 조용한 돈키호테가 되어갔다. 가끔 성격대로 살아가겠다는 사람들을 만난다. 얼마 전에 사회봉사를 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녀는 봉사 활동을 하는 게 자신의 성격에 맞는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흔들렸다. 남에게 헌신하는 성격을 타고났다고 해서, 봉사 활동하며 살아가면 행복할까? 언뜻 생각하면, 그럴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진정한 사랑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이다. 성격은 타고나지만, 성격이 고귀한 인품이 되려면, 고된 수행을 해야 한다. 자아(Ego)가 우리 내면의 영혼의 소리, 자기(Self)의 명령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자아가 자신의 성격대로 행동하면, 그건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남에게 헌신하면서, 은근히 보상을 바라게 된다. 보상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으면, 분노하게 된다. 그래서 남에게 봉사하며 살아가던 많은 사람이 결국에는 정반대의 길을 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사회는 마구 부추긴다.
“네 성격대로 살아라!”
아주 위험한 말이다. 성격이 고귀한 인품으로 단련되지 않으면, 성격은 동물적인 충동일 뿐이다. 인간은 본능(本能)을 넘어 본성(本性)을 깨우며 살아가야 한다. 누구나 깊은 내면에는 신성(神性)이 있다.
성격은 우리 내면의 신성과 만날 때, 무한히 아름다울 수 있다. 인생은 자기(Self)를 완전히 실현하는 것이다.
다친 달팽이를 보게 되거든
도우려 들지 말아라
그 스스로 궁지에서 벗어날 것이다.
- 장 루슬로, <또 다른 충고들> 부분
사랑은 상대방의 성숙을 돕는 것이다. 자기만족이 아니다. 다친 달팽이는 상처와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다. 설령 그는 죽더라도 최선을 다했기에 만족하며 죽어갈 것이다.
그의 치열한 노력은 후손에게 전해지며 달팽이는 점점 강해질 것이다. 어떤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할지 모른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우리도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여한이 없는 삶, 생(生)은 자신을 활짝 꽃 피우는 것이니까.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