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높여 변화에 앞장 선 여자

이동용 (수필가/철학자)



나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고 또 자연스럽게 그림 그리기도 좋아했습니다. 요즈음 손흥민이란 선수가 골을 넣고 나서 하는 손동작을 나는 아버지에게서 배웠습니다. 그러면서 한계를 정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한계를 정하고 나면 그림을 위한 배경이 완성됩니다.


그리고 ‘가까운 것은 진하게 먼 것은 흐리게’라는 방법까지 배웠습니다. 가까이 있는 사물은 크지만 정확하게 그려야 했고, 멀리 있는 사물은 작지만 두루뭉술하게 그려야 했습니다. 사물을 바라보며 그런 현상을 알아보는 것은 어린 나로서는 위대한 발견이었습니다.


그림책을 들어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사각형 안에 들어 있는 사물들이 어떻게 배치되어 있는지 관찰했습니다. 그러면서 위대한 명작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화가가 무엇을 그리려 했는지도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림에는 제목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본 것이 제목과 연결되면서 어떤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어떤 그림은 그것을 보는 순간 이미 나를 경직시켰습니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 그 그림의 제목이었습니다. 들라크루아가 그린 낭만주의 시대의 그림이었습니다. 


현실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주인공들이었습니다. 


오른쪽에는 어떤 형이 양 손에 권총을 들고서 따르고 있었고, 왼쪽에는 두 어른들이 각각 장총과 긴 칼을 들고서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래쪽에는 수많은 시체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아직 죽지 않고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간절하게 위를 쳐다보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아랫도리를 다 드러낸 채 누워 있었으며, 또 어떤 사람은 어두운 표정을 짓고서 쓰러져 있었습니다. 모두 죽음이라는 현상을 구현해 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위의 현상을 주목하게 할 뿐이었습니다.


어느 순간, 이런 위험한 상황과 혼란 속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여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여인은 국기를 들고서 힘차게 전진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그녀의 탄탄한 근육질의 팔이었습니다. 바람에 휘날리는 국기를 높이 치켜 든 그 팔에서 불굴의 힘이 느껴졌습니다. 지금도 그 그림을 보면 같은 마음으로 가슴이 설렙니다.


자유라는 그 여인은 식구를 거느리고 열심히 살아주던 어머니를 연상케 해 주었습니다. 이런 어머니 같은 여자가 앞서 주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다 따라갑니다. 자유가 앞서 주면 군중과 대중과 민중은 목숨을 걸고서 다 따라갑니다. 신분도 학벌도 상관없이 변화의 흐름을 다 따라갑니다. 


수많은 희생이 따르더라도 무의미한 일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요즈음 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안세영이란 배드민턴 선수가 눈길을 끕니다. 


그녀는 “분노는 나의 원동력이었고, 목소리는 나의 꿈이었다”라는 위대한 명언을 남겼습니다. 


그녀의 분노는 아름다웠고, 그녀의 목소리는 위대했습니다. 그녀는 썩어빠진 어른들의 행태들을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용기는 이 나라를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침묵으로 버팁니다. 현실을 인정하고 거기서 현실인식을 얻는데 주력할 뿐이며, 불공정을 참아내고, 그저 두루뭉술하게 사는 게 지혜라고 말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기에 바쁘며, 그렇게 살다가 죽어갈 뿐입니다. 그렇게 그들은 의미 없이 사라질 뿐입니다. 


니체는 이런 사람들을 선악의 저편에서 ‘우둔하고 머뭇거리는 인종’으로 단언했습니다. 그들 때문에 변화가 반세기라는 시간을 필요로 할 때도 있다고 한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안세영 선수는 달랐습니다. 우둔하고 머뭇거리는 어른들을 좌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부조리와 불공평과 불합리를 위해 칼을 꺼내들었습니다. 


그녀는 말도 안 되는 것들과 맞서 싸웠습니다. 이 나라를 변화 속으로 몰아붙인 그녀의 용기에 응원을 보냅니다.

작성 2024.08.26 10:08 수정 2024.08.26 10:08

RSS피드 기사제공처 : 출판교육문화 뉴스 / 등록기자: ipecnews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해당기사의 문의는 기사제공처에게 문의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