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청춘이라는 두 글자가 그랬듯이 신독愼獨은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무엇이었다. 돌아보면 잘생긴 배우의 모자 소품이나 철학자의 고독처럼 멋있게 여긴 듯하다. 그리고 신독은 좋은 사람이 되는 지름길이라는 막연한 환상을 품었고, MBTI의 지독한 I형인 나에게 그것은 썩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신독을 좌우명으로 삼은 퇴계나 김구 선생이 되고 싶다는 기특한 생각을 한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서 신독에 대한 일종의 부채감은 쌓여갔고, 가끔은 죄책감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글자 그대로 홀로 있을 때도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몸가짐을 바로 하고 언행을 삼가*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 게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구차하지만 나름의 변명이 없는 것도 아니다.
기본적으로 왜 신독을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수긍할 수 없었다. 사회적 존재이니 예의범절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아무도 없이 혼자 있을 때조차 몸과 마음을 단속하고 삼가야 하는지 그 까닭이 도무지 납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겉치레와 구속을 싫어하는 개인적 기질도 한 몫 거든 측면도 있다.
물론 법정스님의 신독처럼 그렇게 하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느 수필에서인가 스님은 꼭 읽어보고 싶었던 경전을 구한 후 한여름인데도 가사 장삼(신사로 치면 정장 양복 위에 외투를 입은 격)을 갖춰 입고 허리를 바로 세우고 읽었다고 말했다. 선풍기도 없던 시절에 혼자 있는 방에서 꼿꼿한 자세로 경전을 읽으며 땀을 흘리는 스님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감동적이다. 그런 시간을 보낸 분이니 세간에 알려진 품성을 갖춘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내 속에서는 여전히 회의적인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경전의 속뜻을 예리하게 잡아내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지, 옷을 여미고 자세를 바로 하는 건 나중의 일이라고 여긴 탓이 더 컸기 때문이다.
이렇게 신독에 대한 부채감은 날로 커지고, 몸이 나태해지고 분별이 혼미해지고 나면 신독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 드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었다.
아뿔사!
나는 신독을 오독(誤讀)하고 있었다.
어제 조윤제 작가의 <신독, 혼자있는 시간의 힘>을 읽고서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물론 학교에서 가르쳐준 피상적인 교육에도 일말의 책임은 있겠지만 피상적인 교육을 능동적인 학습과 사유로 바꾸지 못한 내 탓이 크지만, 이제라도 알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란 말인가.
알고보니 신독은 단순히 몸과 마음을 억제하라는 뜻이 아니었다. 은밀한 곳에서 자신의 본성이 더 잘 드러나니까 혼자 있을 때 더욱 삼가라는 도덕적 훈계도 아니고 사람으로서 성취해야 하는 목표도 아니었다.
신독은 자기의 품고 있는 ‘뜻’을 지키고 이루려는 간절한 마음과 몸짓의 다른 표현이었다. 그리고 신독을 하면 성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복리이자처럼 ‘시간’이 불어나는 것이었다. 뜻을 이루기 위한 준비의 시간 말이다.
그러니 뜻이 없으면 신독은 무의미한 고행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하루 24시간을 주체할 수 없어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가 무엇을 먹을까 다음으로 중요한 숙제가 되는 이유다.
자격증을 취득한 직장인들의 공통점은 회식하고 술에 취하더라고 집에 가면 책을 펼치고 잠들었다는 것이다. 이 말은 합격자의 허풍이 아니고 팩트가 맞다. 그래서 어미 닭이 병아리를 품듯이 신독은 자기의 꿈을 보전하려는 몸부림이며, 그것을 통해서만 꿈은 마침내 현실이 된다. 이것이 바로 신독의 원리인데 나는 지금까지 관념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처럼 신독을 어려워하는 사람은 우선 ‘내가 뜻(꿈, 목표, 희망)을 세우고 있는가?’를 자문해보아야 한다. 자격증처럼 눈에 보이는 뜻도 있겠지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원하는가? 무엇으로 사람값을 할까?와 같은 실존적 질문도 중요한 뜻이 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중년의 위기를 겪어야 하는 40대 후반부터는 더욱 그렇다.
불행히도 우리는 점점 더 신독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24시간 꺼지지 않는 핸드폰은 혼자 있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으며, 각종 상업매체들은 우리의 욕망을 표준화시키면서 남용해도 괜찮다고 꼬드기니 말이다. 그래도 밥은 뜸이 들고 술은 발효되는 시간이 필요하듯 사람은 신독이라는 과정을 통해 성숙해지고 그 삶은 제대로 숙성된다.
이제는 혼자 있을 때 몸을 누이고 환상에 빠지고 옷을 풀어 헤치는 것으로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겠다. 다만, 부단히 읽고 글쓰기를 함으로써 내 ‘뜻’을 되짚거나 북돋아 주고, 내가 되려는 ‘미래의 풍광’을 앞당겨 상상하는 것으로 신독의 부채감을 청산해야겠다.
* 국립국어원 표준군어대사전
** 조윤제, <신독, 혼자있는 시간의 힘>. 비즈니스북스
K People Focus 김황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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