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헌식의 역사칼럼] 『난중일기』에 보이는 문학적 표현

윤헌식

조선은 선비의 나라이다. 선비는 오랜 시간 동안 학문을 쌓은 사람으로서 소위 현대의 엘리트와 비견된다. 

 

조선은 과거를 통해 어느 정도 학식을 갖춘 선비를 등용했기 때문에 조선의 관리 가운데 학문적 소양을 지니지 않은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

 

​흥미로운 점은 조선은 문관뿐만 아니라 무관 중에도 학식을 쌓은 사람이 있었다. 충무공 이순신도 그러한 인물에 속한다. 

 

그의 둘째 형 이요신이 서애 유성룡과 함께 퇴계 이황의 문인이었던 사실은 꽤 유명한 이야기이다. 아마도 이요신이 배운 학식은 동생인 이순신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난중일기』 1592년 5월초 - 자료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난중일기』에는 이순신의 학문적 소양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상당히 많이 등장한다. 아래는 그 가운데 주요한 내용을 모아 나열한 것이다.

 

 

『난중일기』, 1593년 3월 8일

 

우수사(이억기)도 왔고 어란만호(정담수)도 쇠고기로 만든 음식(桃林) 몇 가지를 보냈다.

 

[원문] 右水伯亦來 於蘭亦送桃林數物

 

* ‘桃林’은 『서경』의 「무성편(武成篇)」에 나오는 문장인 ‘소를 도림의 들판에 풀어놓았다(放牛于桃林之野)’에서 유래한 말이며, 소와 관련된 것들을 가리키는 대명사로 사용되었다.

 

『난중일기』, 1593년 3월 15일

 

여러 장수들이 활을 쏘았는데(觀德), 우리 장수들(전라좌수영)이 66분을 이겨서 우수사(이억기)가 떡, 술을 장만해 왔다.

 

[원문] 諸將射帿觀德 我諸將所勝六十六分 右水伯作餠酒而來

 

* ‘觀德’은 『예기』의 「사의(射義)」에서 유래한 말로서 '활을 쏘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시대에는 활터 정자를 ‘觀德亭’으로 부르곤 하였다.

 

 

​『난중일기』, 1594년 1월 11일

 

숨결이 가냘픈 것이 해가 서산에 걸린 듯하여 단지 남모르게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원문] 氣息奄奄 日薄西山 只下隱淚

 

* ‘氣息奄奄 日薄西山’은, 중국 진 무제 때 이밀(李密)이 할머니의 봉양을 위하여 벼슬을 사양하려고 올린 「진정표(陳情表)」에서 인용한 구절이다.

 

​『난중일기』, 1594년 5월 5일

 

세 겹의 지붕이 조각조각 높이 날아가고 빗발이 삼대처럼 내렸는데, 몸을 막을 수가 없어서 우스웠다. 

 

[원문] 捲屋三重 高飛片片 雨脚如麻 不能護身 可笑

 

* ‘雨脚如麻’는 중국 당나라의 시인 두보(杜甫)가 지은 「모옥위추풍소파가(茅屋爲秋風所破歌)」에 나오는 구절이다. 앞 구절인 ‘세겹의 지붕(捲屋三重)’ 또한 이 시에 나오는 ‘春城屋上三重茅’를 인용한 것이며, 『난중일기』는 이를 비유적인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난중일기』, 1594년 5월 9일

 

정신이 아득하여 취한 듯 꿈인 듯하여, 바보가 된 듯 미친 듯하였다.

 

[원문] 昏昏醉夢 如癡如狂 如癡如狂

 

* ‘昏昏醉夢’은 중국 당나라의 시인 이섭(李涉)이 지은 「등산(登山)」에 나오는 구절인 ‘終日昏昏醉夢間’을 인용한 것이다.

 

『난중일기』, 1596년 2월 17일

 

미조항첨사 성윤문의 문안 편지가 왔는데 “이제 방백(관찰사)의 공문을 받아 장차 진주로 부임하게 되어 (술 한 잔) 더 드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라고 하였고 “그 후임은 황언실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원문] 彌助項成允文問簡來到 則今承方伯關 將赴晋城 未得更進云 其代則黃彦實爲之云

 

* ‘更進’은 일기의 문맥으로 보아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가 지은 「송원이사안서(送元二使安西)」에 나오는 구절인 ‘권군갱진일배주(勸君更進一杯酒)’에서 인용한 것으로 짐작된다.

 

​ 

『난중일기』, 1596년 5월 6일

 

아침에 흐리다가 늦게 큰비가 내렸다. 농사에 대한 바람을 가득 채워주니 다행스러움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원문] 朝陰晩作大雨. 慰滿農望 喜幸不可言

 

* ‘慰滿農望’은 중국 북송의 명신이었던 한기(韓琦)가 지은 「희우(喜雨)」에 나오는 구절인 ‘須臾慰滿三農望’을 인용한 것이다.

 

​ 

『난중일기』, 1596년 6월 26일

 

이날 12시경에 망아지 2필의 4발굽을 잘라주었다.

 

[원문] 是午 兒馬二匹 落四下

 

* ‘落四下’는 『오자병법』의 「치병(治兵)」에 보이는 문구 ‘謹落四下’를 인용한 것이다. 『오자직해(吳子直解)』는 이 문구 뒤에 ‘使之輕便 四下四蹄也’라는 설명을 추가하여 ‘落四下’가 ‘발굽을 잘라준다’는 뜻임을 명확히 밝혔다. 말의 발굽은 인간의 손발톱과 마찬가지로 계속 자라기 때문에 새로 편자를 달거나 오래된 편자를 바꿀 때 발굽을 잘라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난중일기』, 1596년 8월 2일

 

지이 등으로 하여금 새 활을 당겼다 늦추었다 (시험해 보게) 하였다.

 

[원문] 使智伊等 新弓張弛

 

* ‘張弛’는 『예기』의 「잡기(雜記)」에 나오는 문장인 ‘一張一弛文武之道也’를 인용한 표현이다.

 

 

위 『난중일기』 기록은 이순신의 독서량이 적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순신은 1597년 백의종군 시기 어머니 초계변씨가 세상을 떠난 이후 슬픈 마음을 일기에 기록하였는데, 아마도 『난중일기』의 기록 가운데 그의 절절한 마음을 시적으로 가장 잘 표현한 문장일 것이다. 다음은 그 해당 기록이다.

 

​ 

『난중일기』, 1597년 5월 6일

 

아침저녁으로 그립고 슬퍼서 눈물이 고여 피가 되건만 하늘은 어찌 막막하기만 하고 나를 비추어주지 않는가? 어찌하여 빨리 죽지 않는 것인가?

 

[원문] 晨昏戀慟 淚凝成血 天胡漠漠 不我燭兮 何不速死也

 

* ‘晨昏戀慟 淚凝成血 天胡漠漠 不我燭兮’는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1491~1553년)이 그의 어머니 손씨 부인을 위해 지은 제문인 「제선비손부인문(祭先妣孫夫人文)」에서 인용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언적의 「제선비손부인문」은 사언절구 형태로 이루어진 상당히 긴 제문이다. 이 제문의 여러 구절 가운데 등장하는 ‘晨昏默禱’, ‘淚凝成血’, ‘天亦漠漠’, ‘惟我獨兮’ 네 구절은 위 『난중일기』의 문구와 매우 비슷하다.

 

​ 

[참고자료]

한국고전종합DB

이언적(李彦迪), 『회재집(晦齋集)』 권6

「제문(祭文)」-「제선비손부인문(祭先妣孫夫人文)」

 

 

[윤헌식]

칼럼니스트

이순신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저서 : 역사 자료로 보는 난중일기

이메일 : thehand8@hanmail.net

 

작성 2024.09.06 10:27 수정 2024.09.06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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