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는 유물(油物)이라는 의미가 모호한 용어가 등장한다. 대부분의 『난중일기』 번역서가 이를 '기름' 또는 이와 비슷한 의미로 해석하고 있는데, 이는 유물의 의미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것이다. 다음은 유물이 나타나는 『난중일기』의 해당 기록이다.
『난중일기』, 1593년 6월 19일
비가 내리다 맑았다 하였다. 바람이 많이 불고 그치지 않아서 진을 오양역 앞으로 옮겼으나 바람 (때문에) 배를 안정시킬 수 없어서 진을 고성의 역포로 옮겼다. 봉과 변유헌 두 조카를 본영으로 돌려보내어 어머니의 건강을 살펴보고 오도록 하였다. 왜적의 물건과 명나라 장수에게 줄 물건과 유물을 함께 실어 본영으로 보냈다. 각 도에 (보낼) 공문을 마쳤다.
[원문] 或雨或晴. 大風吹不止 移陣于烏揚驛前 風不定船 移陣于固城亦浦. 菶及有憲兩姪送還本營 探天只氣候而來. 倭物及天將贈物油物幷載送于營. 各道了公事.
* 오양역: 지금의 경남 거제시 사등면 오량리에 있던 역원인 오양역(烏壤驛)을 가리킨다. 『난중일기』의 '烏揚驛' 표기는 오기이다.
위 일기에서 언급된 유물(油物)은 기름을 사용하여 만든 물건들을 총칭하는 용어이다. 유물은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또는 고을의 기록인 읍지 등의 자료에 나타나는데, 공물이나 진상물 목록에서 그 용례가 자주 보인다. 특히 전남 순천의 읍지인 『신증승평지』의 「공물(貢物)」조는 유물의 종류를 상세히 언급하여 유물의 의미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신증승평지』에 수록된 유물의 종류로는 유둔(油芚), 안롱(鞍籠), 입모(笠帽) 등이 있다. 또 다른 자료를 살펴보면 유물로서 유지석(油紙席)이라는 물건도 있다.
유둔(油芚)은 기름을 먹인 종이 또는 목면포를 겹쳐 만든 것으로서 비옷 등을 제작할 때 사용되었으며, 유지석(油紙席)은 종이를 노끈으로 꼬아 엮어 만든 후 기름을 칠하여 마감한 자리를 말한다. 안롱(鞍籠)은 수레나 가마 등을 덮는 우비를 가리키며, 입모(笠帽)는 갈모라고도 하며 비가 내릴 때 갓 위에 덮어쓰던 물건이다.

『난중일기』, 1597년 4월 22일
맑았다. 12시경에 삼례역 장리의 집에 이르렀고, 저녁에 전주 남문 밖 이의신의 집에 이르러 숙박을 하였다. 판관(전주판관) 박근이 와서 만나고 부윤(전주부윤)도 후하게 대접하였다. 판관이 유둔, 생강 등의 물건을 보냈다.
[원문] 晴. 午到參礼驛長吏家 夕到全州南門外李義臣家宿. 判官朴勤來見 府尹亦厚接. 判官所及油屯生薑等物.
* 삼례역: 지금의 전북 완주군 삼례읍 삼례리에 있던 역원인 삼례역(參禮驛)을 기리킨다.
* 장리: 장리는 수령을 의미하는 말로서 여기서는 역참을 관장하던 관리인 찰방을 말한다.
위 일기는 유둔을 '油屯'으로 표기하였다. '油屯'은 여러 조선시대 문헌에서도 종종 용례가 발견되긴 하지만 '油芚'이 정확한 표현이다. 한국고전종합DB 사이트에서도 '油屯'보다 '油芚'이 다수 용례라고 지적한 바가 있다.
유물은 기름을 사용하여 만든 물건이기 때문에 그 주재료가 대부분 종이이다. 즉, 유물은 제지수공업과 관련이 깊은 물품이다. 조선시대의 제지수공업을 깊이 있게 다룬 연구서(『조선시대 제지수공업 연구』, 김삼기, 2006)가 앞서 출간되어 있어서, 이를 통해 유물의 실체를 어렵지 않게 파악하였음을 밝힌다.
[참고자료]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한국고전종합DB, 『승정원일기』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신증승평지(新增昇平誌)』
김삼기, 『조선시대 제지수공업 연구』, 2006, 민속원
[윤헌식]
칼럼니스트
이순신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저서 : 역사 자료로 보는 난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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