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인의 추억’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이 발칙한 제목을 단 영상물이 버젓이 극장가의 간판에 내걸려, 수백만 관객을 끌어모으며 시쳇말로 흥행에 대박을 터뜨렸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도저히 이성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집단적 광기가 아닐 수 없다. 물안개 같은 정감이 담긴 ‘추억’이란 낱말에 도깨비바늘 같은 얼굴을 한 ‘살인’이란 단어는 당최 생뚱맞고 낯설다. 대관절 무얼 추억할 것이 그리 없어 살인을 다 추억의 대상으로 삼는단 말인가.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쳐 입에 올리는 일조차 경원시해야 할 이 금기어가, 별다른 거부감 없이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이 놀랍고 당혹스럽다. 갈 데까지 가 버린 우리의 비뚤어진 정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는 사회적 병리 현상임에 틀림이 없으리라.
“한국 문학의 폭력성에 큰 충격을 받았다.”
한불 인기 작가들이 모인 어느 대담 자리에서, 프랑스의 소설가 장 마리 르 클레지오는 한국 문학을 접한 소감이 어땠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을 받고 자신의 심경을 이렇게 피력했다. 오늘의 우리 문학의 현주소에 대해 정곡을 찌른 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어디 문학 하나에 한하겠는가.
튀지 않고서는 주목받지 못하는 것이 이즈음의 형국이다. 세상이 갈수록 거칠어지다 보니 모르는 사이에 내성이 생겨나, 웬만한 자극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살아남기 위해 점점 더 폭력적이고 파괴적이며 선정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법을 비웃듯 주먹을 과시하는 집단폭력배가 의리 있는 친구로 미화되고, 훤히 가슴팍을 드러내 놓고 거리를 활보하는 여성이 섹시함으로 표현되는가 하면, 해괴망측한 불륜이 근사한 로맨스로 그려진다.
겉볼안이라고, 겉이 볼썽사나워지다 보니 그에 따라 심성도 점점 황폐화하고 있다. 둘이 가진 불가분의 상관성 때문일까. 심성이 거칠면 자연히 말과 행동도 거칠어지고, 말과 행동이 거칠어지면 심성도 따라 거칠어진다. 그 거친 마음밭에 돋아나는 것은, 화해와 용서의 꽃봉오리 대신 갈등과 미움의 잡풀뿐이다. 세상이 시끄러워질수록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더욱 그악스러워지는 것하고 어쩌면 같은 이치가 아닐는지…….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본능적 기제가 발동한 결과일 터이다.
가벼운 감기만 걸려도 줄잡아 한 달이 가는 아이가 있었다. 지난날 내가 교사 생활을 하던 시절 담임을 맡아서 가르친 학생이다. 감기는 약을 먹으면 칠 일, 안 먹으면 일주일이라는 우스개도 있지만, 웬만해선 이레 안에 좋아지게 마련이다. 그러니 감기 가지고 그만큼 오래 끄는 경우는 썩 드문 일이 아닌가.
다름 아닌 페니실린 주사의 부작용 때문이었다. 페니실린이 한때 만병통치약으로 통하던 시절이 있었다. 의사였던 그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에게 조금만 감기 기운이 있어도 생각 없이 페니실린 주사를 처방했다. 명색이 의사라는 사람이, 페니실린 주사가 장차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생각 못 했던 모양이다. 결국 내성이 생겨, 마침내 손을 쓸 수 없을 지경에까지 이르고 만 것이다. 페니실린 주사에 대한 맹신이 빚은 불행한 결과였다.
내성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병원균에 내성이 생기면 처음에는 곧잘 듣던 약도 어지간해서는 듣지를 않는다. 점점 더 고단위의 처방을 쓸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내성은 더욱 강해져서 더더욱 고강도의 약을 투여해야만 한다. 그렇게 악순환이 되풀이되다, 끝내는 어떠한 약에도 반응을 하지 않는 속수무책의 상황으로까지 내몰리고 만다.
우리네 세상사는 이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아니할 것이다. 아무리 소름 끼치는 사건일지라도 자꾸 접하게 되면 시나브로 둔감해진다. 사람이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하고 소름 끼치는 일인가. 예전에는 어쩌다 살인 사건이 나면, 몇 날 며칠 동안 밤잠을 설치며 치를 떨었다. 그것은 절대 일어날 수도, 결코 일어나서도 아니 되는 금기 중의 금기였다.
요즘은 그 금기가 깨져 버렸다. 하도 자주 터지는 것이 살인 사건이기에, 이제 그런 소식을 접하게 되어도 ‘또 누가 누구를 어떻게 했구나.’ 정도로 흘려넘기고 만다. 하루가 멀다 하고 온갖 흉포한 범죄들이 꼬리를 물다 보니, 사람들의 심성에 내성이 생겨나 이 같은 무감각증을 불러온 것이 아닐까.
육신에 생기는 내성은 그 한 사람의 문제로 그치고 말지만, 사회에 생기는 내성은 공동체마저 파괴하는 무서운 결과로 나타난다. 이러다가 장차 세상이 어디까지 갈 것인지…….
한편 두렵고도 한편 서글퍼진다.
[곽흥렬]
1991년 《수필문학》, 1999년《대구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우시장의 오후』를 비롯하여 총 12권 펴냄
교원문학상, 중봉 조헌문학상, 성호문학상,
흑구문학상, 한국동서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받음
제4회 코스미안상 대상 수상
김규련수필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