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선의 연작詩] 사람의 동쪽 (90)

전승선

 

사람의 동쪽 (90)

 

 

복잡한 사실은 오히려 개운한 법이지

온몸에 진득진득하게 달라붙은 연민을 떼어내며

액자 속에서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달마에게

두려움을 들키지 않으려고 작은 소리로 물었다네

 

“당신의 고유한 상상력은 동쪽인가요?”

 

순간, 액자 속 달마가 뜨거운 입김을 토해내며

균열이 간 벽 속으로 재빨리 사라지고 말았다네

불안을 먹고 사는 믿음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가고

하늘나라 서버에서 내려받은 진리를 편집모드로 바꿔

부족한 것은 넣고 넘치는 것은 빼고 틀린 것은 바꾸며

단순하고 소박하고 명쾌하게 자유의지대로 조율했다네 

소백산 아래 토담집에 사는 늙은 현자의 편지에는

소나무 같은 사철 푸른 지혜가 찰랑찰랑 빛나고

은비령 토굴에 사는 스님이 보내온 편지에는

바람에 나부끼는 맑은 풍경소리가 댕그랑거렸다네

산에 심은 참나무는 어김없이 참나무가 되고

들에 심은 옥수수는 어김없이 옥수수가 되듯

단순한 사실에 화를 내는 불안한 사람들을 피해

나에게서 해방된 나를 이끌고 동쪽으로 걸어간다네

 

 

[전승선]

시인

자연과인문 대표

이메일 : poet1961@hanmail.net

 

작성 2024.09.30 09:24 수정 2024.09.30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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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