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 칼럼] 사람이 될래요

이태상

조건을 먼저 따지는 요즘 세태에선 결혼도 직업도 사치가 되었다고 한다. 하나의 공동체인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낳아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는 유능하고 적합한 배우자를 찾아 동업자 파트너로 삼아야 하기에 상응하는 조건을 따질 수밖에 없으리라. 

 

세상이 바뀌어 완전고용은 보장되지 않고 원하는 직업은커녕 아무 직업 자체를 가지기가 어렵다고 한다. 어려서 어른들한테서 듣던 말이 ‘넌 장차 커서 뭐가 될래’란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사람이 될래요’라고 대답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형편에 따라 이런 일도 저런 일도 하게 될 텐데, 어떻게 대통령이나 장군, 과학자나 사업가, 또는 작가, 시인 등이라고 하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는 게 과학자라면 인생을 사는 일이 사업이고 삶 자체가 작품이며 숨 쉬는 게 ‘시’가 될 텐데 무슨 소리인가 의문을 품게 되었다. 직업이란 수단에 불과하지 결코 목적이 될 수 없다고. 

 

가령 서울에서 부산까지 간다고 하자. 기차나 버스 또는 비행기로 갈 수도 있고, 자동차나 자전거도 없으면 걸어서 가면 될 텐데, 어떻게 한 가지 방법만 고집할 수 있겠는가. 어른이 되어서는 직업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게 되고 외국에 나와서는 흔히 What do you do for living? 이란 말을 듣게 되었다. 

 

1970년대 초 영국에 가 살면서 영국 사람들이 사람을 여러가지로 지칭하는 것이 이상했다. 자동차 운전자는 motorist, 자전거 타는 사람은 bicyclist, 걷는 사람은 pedestrian, 등은 그런대로 이해되었으나 심지어 대화자 conversationalist란 말까지 쓰는 것을 보고 놀랐었다. 사람이 살면서 수많은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를 이토록 일일이 세밀하게 분류해야 하느냐는 회의가 생겼다. 그중에서도 ‘시인’이란 말이 제일 눈과 귀에 거슬렸다. 

 

시인이라면 하루 24시간 시만 쓰고 산단 말인가. 그리고 글로 쓰는 것만 시란 말인가. 또 시 쓰는 사람이 따로 있을까.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이 시고, 손으로만 쓰는 게 아니라 눈과 귀, 코와 입, 온몸과 마음으로 쓰는 글이 시라고 할 수 있지 않나. 삶이 시가 되듯이 죽음조차도 시가 되지 않던가. 김소월과 윤동주가 그렇고 슈베르트와 모차르트가 그러하지 않은가. 그러니 우리 모두 시로 태어나 시로 살다가 시로 죽으리라. 

 

우리 태양계에서 얼음에 덮인 대양이 있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고 그중 하나인 토성의 한 작은 달 엔셀라두스에 있는 바닷물은 뜨겁기가 섭씨 90도 화씨로는 194도 이상 되는 것으로 측정되었다고 한 팀의 과학자들이 최근 네이처 저널에 발표했다. 그리고 목성 최대 위성이자 태양계에서 가장 큰 달인 가니메데에는 지구보다 더 많은 양의 물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한다. 따라서 태양계 내 또 다른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에 대해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정녕 우주의 축소판이 이슬방울이라면 이 우주의 양수(羊水)인 사랑의 이슬방울에서 코스모스 피어나고 너도나도 만물이 생겼으리라. 언제 어디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려면 온 우주가 공모하고 협조해야 한다는 뜻으로 영어로는 ‘For anything to happen anytime anywhere, the whole universe, Cosmos, has to conspire.’라 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먼저 상상의 씨부터 뿌려야 하리라. 이렇게 상상부터 하려면 또 자기최면이나 자기암시부터 걸어야 하지 않을까.

 

같은 한 컵의 물이라도 약이라 생각하고 마시면 약이 되지만 독이라고 믿고 마시면 독이 되리라. 사우나나 한증막 찜질방에 들어가서도 ‘아, 시원하다’라고 생각하면 시원해지고, ‘어이, 뜨거워’하면 견디지 못하고 튀어나오게 되듯이 말이다. 심지어는 상상만으로도 정신을 초집중하면 성적 오르가슴이나 영적 열반지경의 희열을 맛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 다 함께 생각 좀 해보리라. 세상에 예수, 석가모니, 공자, 노자, 장자 등 그 누구를 막론하고 다 하나뿐인 전무후무의 유일무이한 존재가 아니겠는가. 너와 나를 포함해서 세상에 태어난 사람 모두가 다 오직 하나뿐인 지존이다. 아무리 다른 사람한테서 배울 점, 본받을 점이 많다고 해도 그 모두가 ‘참고사항’일 뿐이지, 그대로 전부 다 너나 나에게 꼭 들어맞을 수 없고 또 그러는 것이 절대 바람직하지도 않다. 모두가 예수나 석가모니처럼 ‘히피’나 ‘걸인’이 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될 일이 아닌가. 

 

좀 극단적으로 비유해서 사람의 말소리 몸짓을 흉내 낸다고 앵무새나 원숭이가 사람이 될 수 없듯이 예수나 석가모니의 말씀을 입버릇처럼 되뇌고 그들의 행적을 뒤밟아 본들 너나 내가 예수나 석가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아무리 부모 자식, 스승과 제자 사이라도 너는 너의 나는 나의 ‘고행’을 하고,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제각기 자아를 발견하고 자기만의 깨달음을 얻어 자아실현의 자아 완성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자아 발견을 통해 참된 이웃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럴 때 비로소 너와 나를 분간할 수 있고, 동시에 네가 나고 내가 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리라. 갓난아이가 점점 눈을 뜨고 조금씩 걸음마를 하며 배워가듯 나 없이 네가 있을 수 없고 너 없이 내가 있을 수 없음을 알게 되리라. 아, 그래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고 하는 것이리라. 제자는 스승을, 자식은 부모를 따를 것이 아니라 능가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람에게는 누구한테나 ‘선택의 자유’가 있다고 믿었었다. 그러나 인생 88여 년 살아오면서 ‘선택의 자유’는 신념과 용기 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작가 앤더슨(1911-1981)은 인간의 탐험심에 관한 그의 저서 ‘율리시스 요인(1970)’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간의 정신은 여러 개의 창문을 갖고 있다. 어떤 창문이든 열어야 하는 것이 인간의 과제로 남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창문을 열어보고 싶은 본능을 타고났다.’

 

하늘 높은 줄 모를 정도로 높은 이상과 무지갯빛 낭만으로 터지도록 가슴 부풀었던 젊은 시절 나도 모험심과 탐험심에 불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인생 무대에서 활약한 역사, 문학, 예술, 철학, 종교 세계의 대탐험가들에 관한 책을 탐독하고 인간 정신의 창문을 열고 새 지평 개척한 그들 못지않은 탐험가가 될 것을 꿈꾸면서 그 어떤 모험도 불사했다. 

 

홍길동이니 돈키호테란 말 들으면서 좌충우돌 뒤죽박죽, 천방지축 날뛰던 내가 어느 틈에 88세 노인이 되고 보니, 하늘의 별이라도 따겠다는 다른 많은 몽상가들처럼 풀죽은 나도 조금은 미몽에서 깨어나 냉엄한 현실이란 환경과 사회적인 관습에 얽매여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이 웬일일까. 나의 가슴은 젊었을 때 못지않게 여전히 설레며 벅차게 뛰고 있다. 새 창문을 열고, 새 문을 두드리며, 새로운 지평선(地平線) 아니 천평선(天平線) 아니 우평선(宇平線)을 향해 새로운 코스미안의 기(氣)똥찬 길을 떠나고 있다. 신기루이든 아니든 상관하지 않고. 새 오아시스, 새 코스모스를 찾아서 떠나고 있다.

 

어떤 교리나 이론 따위는 아랑곳없이 나는 아직도 언제나 모험하고 있다. 그 무엇인가를 아니면 그 누군가를 찾아서 어떤 의미와 뜻, 그 어떤 길, 지로역정(地路歷程) 아니 천로역정(天路歷程) 아니 우로역정(宇路歷程)의 코스미안의 길에 오른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이 창조되었다고 말하지만 나는 나의 마음과 혼을 꼭 닮은 신, 다시 말해 나의 진짜 ‘짝’ 아니 작은 나 ‘소아(小我)’의 큰 나 ‘대아(大我)’를 찾아가는 것이리라. 

 

몇 년 전에 로마 가톨릭 교황이 ‘남편이 아내를 강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다는 신문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속으로 실소를 금치 못했다. 결혼도 안 해본 제 주제에 뭘 어찌 안다고. 차라리 실수를 하고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무사무고의 백지 답안을 내놓기보다는 할 수 있는 대로 한껏 인생을 탐험하고 경험해 보겠노라고 말한 이탈리아 여배우 소피아 로렌(1934 - )한테 좀 배워야 한다. 인생무대에서 제 노릇 한번 제대로 못 해 보고 그 어느 누구의 ‘허깨비’의 대리 노릇이나 하는 ‘조형 인간’ 꼭두각시 인생의 비애가 아니겠는가. 여기서 우리 칼릴 지브란(1883-1931)의 시를 읽어보자 

 

눈처럼 흰 종이 한 장이 말했다.

순결하게 나는

창조되었으니

영원무궁토록

순결하게 나는 살리라. 

 

내 몸에 

더러운 것이 

가까이 오거나

검은 것이 

내 몸에 

닿는 것을 

참고 견디느니

차라리 나는 

불에 타서

하얀 잿가루가 되리라.

 

잉크병이 이 말을 듣고 그 시꺼먼 속으로 웃었다. 그리고 그는 종이에게 접근조차 아니 했다. 종이가 하는 말을 들은 색색이 색깔의 여러 가지 색연필들도 또한 종이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다. 

 

눈처럼 흰 종이는 

순결하고 정숙하게

영원토록 있었다.

순결하고 정숙하게

그러나 외롭고 공허하게 

 

-칼릴 지브란의 ‘선구자(先驅者)’에서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이메일 :1230ts@gmail.com 

 

작성 2024.10.05 09:46 수정 2024.10.05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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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