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연강 칼럼] ‘시간’이라는 ‘말(馬)’

신연강

멈추었던 시간. 긴긴, 그야말로 길었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온다. 모두를 지치고 힘들게 했던 여름은-그야말로 이리저리 돌고 돌며-길을 가기 싫어 꾀를 부리던 당나귀 아니었던가.

 

중세 성곽길을 구불구불 돌아 어떻게든 샛길로 빠지려 하던 당나귀처럼, 그저 퍼질러 앉아 마냥 심술을 부리던 여름을 고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는 없다. 반면, 가을은 한눈팔지 않고 한걸음에 달려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릴 것 같다. 인간 사회에 가장 유용한 선은 ‘직선’이라고 한 르코르뷔지에의 말을 인용할 것도 없이, 가을 들판을 내닫는 시간의 말(馬)은 한치 구부러짐 없는 직선으로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그저 내달리기만 한다.

 

산산한 가을바람에 코스모스가 흔들리는 것을 보면 좋으련만. 그토록 짙푸르던 나뭇잎이 서서히 타들어 가는 신비를 좀 감상하면 좋으련만. 붉게 물든 연인의 애틋한 마음을 조금은 부럽고 경이롭게 느끼고 가도 좋으련만, 가을의 말(馬)은 뭐가 그리도 바쁜지, 듣지도 보지도 않고 길을 재촉한다.

 

머지않아 한 해의 끝에 서면, 흰 눈이 소복이 쌓인 자작나무 숲에서 반짝이는 은빛 비늘을 바라보며 우리는 말할 것이다. 봄이 올 때까지 총총 빛나는 밤하늘 별들의 얘기를 들어보자고, 수없이 많은 별이 되어 지구상에 발자취를 남긴 많은 사람의 얘기를 들어보자고. 겨울 동안 숨을 고른 시간의 말(馬), 다시 돌아오면 그때 푸른 대지를 마음껏 걸어볼 것을 약속하면서….

 

시간의 숲 가장자리에 서서 프로스트의 시를 떠올린다.

 

The Road Not Taken
-Robert Frost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And be one traveler, long I stood
And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To where it bent in the undergrowth;
 
Then took the other, as just as fair,

 

And having perhaps the better claim,
Because it was grassy and wanted wear;
Though as for that the passing there
Had worn them really about the same,
 
And both that morning equally lay
In leaves no step had trodden black.
Oh, I kept the first for another day!
Yet knowing how way leads on to way,
I doubted if I should ever come back.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가지 않은 길 

 

 

노란 숲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피천득 역

 

* 나무위키에서 원문 및 번역문 인용

 

 

수없이 많은 사람을 실어서 갔고, 다시 한 해를 끌고 와 가만히 옆에 서 있는 시간의 말(馬). 고삐를 잡고,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을 바라보며 그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붉게 물든 나뭇잎이 고개를 흔든다. 말(馬)은 허리에 찬 종을 딸랑거리며 보챈다. 그림 같은 가을 들판에 서서,

 

말(馬)을 따라……. 길을 나선다.

 

 

[신연강]

인문학 작가

문학 박사

이메일 :imilton@naver.com

 

작성 2024.10.11 10:02 수정 2024.10.11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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