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칼럼] 집을 떠나라

고석근

아주 어렸을 적, 

혼자서 별들의 놀이터에 있을 때였다
그는 어디로부턴가 와서 알 수 없는 곳으로
나를 끌고 갔다
내가 두려움에 떨며 처음 울음을 터뜨린 곳은
어느 낯선 집 차가운 요람 속이다

 

- 진은영, <유괴> 부분  

 

우리는 모두 어린 시절, 아버지가 왕좌에 앉아 계시는 ‘가부장 왕국’으로 유괴되었다. 자라면서 엄격한 왕자, 공주 교육을 받았다. 왕자, 공주는 자식이면서 신하다. 나도 소작농을 하시는 아버지의 세자이자 충실한 신하였다.

 

나는 나를 ‘세자’로 만들어갔다. ‘가문을 일으키자!’ 나는 항상 가문을 중심으로 생각했다. 그러니 사랑이 제대로 되겠는가? 처녀들을 만날 때마다 생각했다. ‘한글도 모르시는 아버지의 며느릿감으로 맞을까?’    

 

하지만 사랑 없이 어떻게 연애를 할 수 있겠는가? 나의 사랑은 파탄에 이르게 되었다.

그때, 한 처녀를 만났다. 그녀와 불타는 사랑을 했다. 나는 신작로를 함께 걸으며 말했다.

 

“자기야, 나 저 앞에 단두대가 있어도 갈 거야!”

 

사랑은 유괴당한 집을 탈출하는 것이다. 허허벌판에서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는 것이다. 우리는 가슴에서 솟아올라는 사랑이 가라고 하는 곳으로 가야 한다. 사랑은 반쪽 둘이 만나 온전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온전한 인간이 되어야 부모 형제를, 남들을 사랑할 수 있다. 사랑은 내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기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

 

작성 2024.10.17 11:00 수정 2024.10.17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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