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초고령사회 진입을 목전에 두고 정년 연장과 노인 연령 상향 조정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등장하고 있다. 100세 시대를 살아야 하는 현실 앞에 지극히 당연한 화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년연장과 노인 연령 상향 조정 문제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조급하게 서둘러 결정할 사안은 아닌 듯싶다.
우리나라는 만 65세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2%를 차지한 2018년 8월 말, 이미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2000년 7월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후, 세계적으로 최단기간인 17년 만에 이루어진 일이다. 그리고 2025년이면 인구 10명 중 2명이 노인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이 같은 급속한 고령화는 기대 수명의 연장과 출산율 하락에 기인한다.
인구 구조가 급격히 고령화된다는 것은 인구 절벽의 시작과 함께 노동력과 생산성 감소를 가져와 결국 경제 성장마저 덩달아 위축된다는 뜻이다. 특히 노인 인구 증가는 사회 보험 같은 지출을 늘려 국가 재정이 타격을 받게 되고, 복지기금 충당을 위해 다른 사회 구성원들이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하는 등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일본의 장기 불황, 잃어버린 20년은 초고령사회로 인한 인구 구조의 변화 때문이라는 지적처럼 저출산, 초고령사회의 도래는 국가 존망과 직결되는 심각한 문제다. 이런 까닭에 우리나라도 일본의 전철을 밟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노인 생활 실태 및 복지 욕구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78.3%가 노인 연령 기준은 70세 이상이어야 한다고 응답했고, 75세 이상이어야 한다는 응답도 31.6%나 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노인 연령을 70세 이상으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찬성 의견과 65세를 현재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반대 의견이 팽팽히 맞서 있는 상태다. 찬성론자들은 100세 시대라는 말이 보편화하고 있는 오늘날, 사회구조의 변화와 함께 구체적인 논의가 시작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보고서 ‘연금 2023’에 따르면 우리나라 66세 이상 노인 빈곤율은 40.4%로, OECD 평균 15.0%보다 2.7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76세 이상 노인 빈곤율은 무려 52.0%나 된다. OECD 가입국 중 단연 1위다. 그뿐만이 아니다. 폐지를 주어 생계비에 보태는 노인 인구는 전국적으로 1만 5천 명이 넘는다.
상황이 이런 까닭에 반대론자들은 노인 기준 연령을 높이면 현재 노인 복지 혜택을 받는 대상이 바뀌고, 이는 곧 노인 복지 축소로 이어져 노인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근로자 평균 은퇴 연령은 49.3세로 50세가 채 못 된다. 국민연금 개시 연령 사이에 소득 절벽기는 물론 기초연금 수급 개시 연령까지 10년 이상의 시차가 생겨 가뜩이나 어려운 장년층까지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목소리 또한 높다.
따라서 노인 기준 연령을 상향 조정하기 전에 ‘정년연장’은 물론 ‘노인 일자리’를 늘리는 대책이 선행돼야 한다. 그런데 20대 임금근로자 10명 중 4명은 비정규직이다. 청년들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 역시 턱없이 부족하다. 60대 이상도 예외가 아니다. 60대 이후 가질 수 있는 일자리 대부분이 비정규직이거나, 단순노무직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양질의 일자리를 가질 수 없는 경제 환경에서 사전 대책 없이 정년을 연장하고 노인 기준 연령만 상향 조정해 봐야 연금 받는 시기만 늦춰 정부 불신과 함께 국민적 저항만 가져올 뿐이다.
노인 연령 기준의 상향 조정을 위해서는 노인의 삶에 대한 가치 존중, 다양한 주체와의 협력과 연대가 우선 필요하다. 그런데 과거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에서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쏟아부은 돈은 110조 원이 훨씬 넘었다. 그러나 투자 대비 성과는 말 그대로 속 빈 강정이었다. 일회성 생색내기 정책으로 일관한 당연한 결과였다. 문재인 정부도 결코 예외가 아니었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는 국민 혈세만 낭비하는 사탕발림의 대중영합주의 정책이 아닌, 청년은 물론 노인 등 이해 당사자들이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보다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은 저출산·고령사회 문제해결을 위한 복지예산 확보가 최우선이다.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선진국들은 GDP의 4%를 예산으로 쓰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선진국의 4분의 1 수준인 GDP의 1% 정도를 쓰고 있을 뿐이다.
[이윤배]
(현)조선대 컴퓨터공학과 명예교수
조선대학교 정보과학대학 학장
국무총리 청소년위원회 자문위원
호주 태즈메이니아대학교 초청 교수
한국정보처리학회 부회장
이메일 : ybl773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