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것은 신념이었다. 종교라는 믿음의 신념이 아니라 갈고 닦아서 본질을 들여다보고 싶은 신념으로 시작한 학문이었다. 수재라는 칭호는 늘 나를 따라다녔지만 나는 모두가 선호하는 서울대 법대나 경제학부를 가지 않았다. 대신 돈벌이도 되지 않고 인정도 받지 못하는 서울대 종교학과를 선택했다.
역사와 문화를 통해 종교의 참다운 모습을 규명하고 싶었다. 다양한 종교 현상들이 지닌 복합성과 보편성을 고찰하고 종교문화를 성찰하는데 즐거움이 있을 것이라는 신념은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싹터 왔었다. 그러니까 내가 법대나 경제학부를 선택하지 않은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인간 본질 속에 내재된 종교성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공부는 그야말로 내 적성과 궁합이 잘 맞았다.
나는 스무 살의 청춘을 이 공부를 위해 아낌없이 소비했다. 나는 종교학에 관한 공부뿐만 아니라 외국어에 대한 관심도 많아 영어는 물론이고 일어, 독일어, 불어, 스페인어까지 공부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세상의 모든 종교를 공부해보고 싶어 라틴어, 희랍어, 히브리어, 노어, 중국어, 아랍어도 배웠다. 그렇게 배우다 보니 여러 외국어를 잘한다는 소문이 쫙 퍼졌다. 서울대 학생들이 나에게 서로 과외를 받겠다고 찾아왔다. 그뿐만 아니라 기업체 대표들도 찾아왔고 별을 단 군대 장성들도 찾아왔다. 나는 그들에게 개인교수를 하면서 돈을 벌어 학비에 보태고 어머니께 용돈도 드릴 수 있었다. 봄학기가 끝나갈 무렵, 기독교개론 시간에 있었던 주임교수의 강의는 충격적이었다. 근엄하기로 유명한 주임교수는 기독교개론에 대한 강의를 접어두고 대뜸 가당치 않은 논리로 기독교를 옹호하기 시작했다.
“세계의 모든 종교 가운데 기독교만 참 종교이고 나머지는 다 미신입니다.”
주임교수의 강의 때문에 나는 종교에 대한 회의에 빠졌다. 종교학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종교를 가르치는 교수의 독단적 행위는 무책임했다. 기독교만이 참 종교이고 나머지는 모두 미신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 혼돈에 휩싸였다. 주임교수는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쩌렁쩌렁하게 소리쳤다. 강의실 안은 주임교수가 교주라도 되는 양 아무도 토를 달지 못한 채 눈만 멀뚱멀뚱하며 강의를 듣고 있었다.
“기독교도 다 기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 중에서도 여러 신교 교파가 있는데 그중 감리교만이 진짜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이단이고 가짜입니다. 기독교인도 다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기독교인이 천 명이면 구백구십 명은 다 가짜 신자입니다.”
나는 도무지 말도 안 되는 강의를 들을 수 없었다. 참다못해 벌떡 일어나 주임교수를 향해 소리쳤다.
“교수님, 그게 말이 됩니까? 내가 믿는 종교가 소중하고 신성하면 다른 사람이 믿는 종교도 소중하고 신성한 것이 아닙니까? 우리나라 기독교는 장로교와 감리교의 교세가 가장 큰데 기독교인들은 사실 그 차이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께서는 기독교만이 참 종교이고 그중에서도 감리교만이 진짜 종교라고 하시니 이는 결코 지식인으로서 옳은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교수님 말씀을 듣다 보니 차라리 기독교가 없었다면 십자군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황한 주임교수가 나를 노려보며 자신의 권위에 도전한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주임교수의 얼굴은 홍당무가 되었다. 자신의 신념을 조롱하는 것처럼 들렸는지 갑자기 소릴 질렀다.
“사탄아, 물러가라”
나는 졸지에 사탄이 되었다. 최고의 대학에서 최고의 강의를 듣고 싶었던 나는 치졸하고 편협한 시각의 강의를 듣고 있는 자신이 한심했다. 독단적이고 독선적인 강의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강의실 문을 박차고 뛰쳐나왔다. 고등학교 시절 동대문 밖 보문동에 살 때 동부성결교회 학생회장을 했었다. 주일학교 선생님이었던 네 살 연상의 누나를 짝사랑하면서 하나님과 교회만이 나를 구원해 줄 것이라고 믿었었다. 그런 내가 대학에서 받은 강의는 혼란 그 자체였다. 나는 집에서 두문불출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종교학을 배울 용기가 나지 않았다.
스무 살 언저리의 들끓는 젊은 혈기도 꾹 누른 채 수도사보다 더 절제된 생활을 하면서 교회를 다니고 있었지만 이건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임교수의 강의는 내게 교회를 부정하는 정신적 씨앗이 되었다. 종교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 공부한 학교에서 종교를 부정하게 만든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아이러니 중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이제 교회를 졸업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교회라는 틀을 깨고 나와 더 너른 세상으로 나가고 싶었다. 나에게 사탄은 물러가라고 소리치던 그 날 이후 나는 종교에서 자유로워졌다. 정확하게 말하면 기독교에서 자유로워졌다고 말해야 옳다. 그 교수의 강의를 보이콧하고 나는 즐겁고 신나는 자아 발견과 무한한 호기심으로 인생탐험에 나섰다.
그즈음 도서관을 즐거운 놀이터로 삼고 책 읽기에 몰두했다. 그동안 시간이 없어 읽지 못했던 책들을 책상 위에 쌓아 놓고 밤이 깊어가도록 읽고 또 읽었다. 책 읽는 즐거움은 학문하는 즐거움보다 더 큰 기쁨을 주었다. 책으로 완성된 세상의 정보들을 나의 지식으로 만들어갔다. 그러다가 지식보다는 지혜를 깨달아야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나는 거리로 나갔다. 종로 단성사에 가서 영화를 보고 영화에 관한 평론을 하면서 앎에 대한 사랑을 넓혀갔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은데 나는 좁은 식견을 가진 학자 밑에서 답답한 학문을 답습하는 일은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에 비해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살아있는 생생한 체험이며 공부였다. 초등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해 주신 말씀이 늘 잊히지 않았다. 어린 우리들을 앞에 놓고 선생님은 천천히 아이들 눈을 마주 보며 말했다.
“세상을 물 흐르듯이 살아야 한다.”
“물 흐르듯이 사는 게 뭐예요 선생님?”
“물은 모든 것들을 거스르지 않는단다. 계곡을 만나면 계곡을 따라 내려오고 강물을 만나면 강물이 되어 흐르고 낭떠러지를 만나면 폭포가 되어 떨어지지. 착한 것은 물과 같단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니까 다투지 않고 세상과 친하게 지낸단다. 그러니 너희들은 물과 같은 사람이 되어 물 흐르듯이 살아야 한다. 또 하나는 세상살이는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단다. 산꼭대기를 향하지만 한눈 팔지 않고 정상에 오르기 보다는 한 걸음 한 걸음 마음껏 즐기면서 가는 것이 인생이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걸어야 한다. 그렇게 걷다 보면 아름다운 풍경도 볼 수 있고 새소리도 들을 수 있어. 흐르는 냇물에 손발을 적셔가면서 다람쥐, 사슴과 친구도 되면서 산을 오를 수 있단다. 그렇게 산을 오르다 보면 어느 날은 무지개도 볼 수 있고 또 어느 날은 총총총 빛나는 별들을 볼 수도 있지. 그렇게 인생이라는 산을 오르노라면 온 세상천지가 한없이 신비롭고 아름답다는 것을 알 수 있단다.”
지성의 전당에서 학문보다 실천적인 삶을 살고 싶었던 내 청춘은 진선미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갔다. 인생에서 읽어야 할 책들을 그 시절에 다 읽었을 만큼 엄청난 양의 독서로 청춘을 불태웠다. 멀리 가기보다 무엇을 보고 가느냐를 선택한 나는 졸업을 하기도 전에 대통령 비서직을 천거 받아 간신배, 아첨꾼 모리배들의 인의 장막에 가려 국정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직언하고 제대로 정치를 할 수 있게끔 대통령을 도우려 했지만 나의 ‘일인 거사’는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1959년 졸업을 한 나는 1961년 자원하여 군대에 입대했다. 논산에서 훈련받고 부관학교를 거쳐 수도사단 비행참모부에 배속되었다. 나는 미군과 한국군 정찰기와 헬리콥터가 많이 이착륙하는 비행장에 근무했다. 영어를 자신 있게 잘한 나는 미군과 한국군의 통역을 맡았다. 통역이 마음에 들었는지 미8군 사령관의 눈에 띄어 경기도 부천에 있던 미화학창과 547공병단의 카투사로 가게 되었다. 말이 좋아 카투사지 수백 명의 미군을 위해 카투사들과 한국 민간인들이 부대의 궂은일들을 도맡아 했다. 식당의 식기를 닦는 일, 잔디를 깎는 일, 길을 쓸어 내는 일, 짐을 부리고 나르는 일 등 온갖 잡일들을 머슴같이 했다. 미군들은 그런 한국인들을 보며 좀도둑이라고 놀려댔다.
“슬리키 보이즈”
미군부대 안에는 엄청난 보급물자가 쌓여 있었다. 물자도 풍부하고 시설도 좋아서 그런지 카투사들은 이 부대에 입대하지 못해 안달했다. 하지만 약소국인 우리나라를 노골적으로 차별하고 멸시하는 것은 눈 뜨고 볼 수가 없었다. 힘없는 나라의 국민으로 태어나 떳떳하게 항의하거나 반박할 할 수 없음이 안타까웠다. 나는 행동하는 지성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행동하지 않는 지성은 죽은 지성이다. 카투사 전우들에게 공개서한을 돌리기로 했다.
‘우리는 사람이다. 미군도 사람이고 한국 군인도 사람이다. 사람은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행동하고 살아야 한다. 그래야 사람 대접받을 수 있다. 우리가 한국인을 대표해서 미군에게 훌륭한 인간 사절이 되어 보자’
공개서한은 상급자에 발각되어 주동자인 나는 징계 대상이 되었다. 군대 내의 부정부패와 적폐는 이런 애국을 가만두지 않았다. 그저 힘 있고 권력 있는 자들의 앞잡이가 되어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했다. 결국 나의 공개서한은 삼일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상관들은 나를 쫓아내기 위해 나를 신임했던 미군 사령관에게 음해하는 민원까지 넣었다. 나는 자진해서 카투사를 그만두고 한국군으로 돌아가라는 경고장을 몇 차례 받았다. 하지만 부당한 일에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 성격을 지닌 나는 그들의 경고를 무시했다. 어느 날 밤, 껄렁껄렁한 일당들이 나를 불러냈다. 이들은 부대 내에서도 질이 안 좋기로 소문난 깡패 출신들이었다. 누구의 사주를 받은 것인지 짐작이 갔다. 야산으로 나를 끌고 간 일당들에게 포위되었지만 나는 기죽지 않았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살 수 있다는 옛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야, 너 왜 깝치고 지랄이냐?”
“깝쳐야 할 때 깝치지 못하는 건 겁쟁이지”
나는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말했다. 당당한 내 말에 덩치 큰 깡패들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들도 눈이 있고 머리가 있으면 부당한 대우를 받는 같은 민족에게 애정이 가는 건 인지상정 아니었을까. 호랑이 굴에 들어갔다가 살아 돌아온 나는 다시 한국군 카투사 전원에게 투표로 공개서한에 대한 신임을 물었다. 만일 대다수가 이 일을 못마땅하게 여겨 불신임 투표한다면 나는 자신해서 떠나겠다고 했다. 투표를 열어보니 절대다수가 혁신적인 과업을 추진해서 완수해 달라는 신임을 했다.
이 일로 나를 모함했던 사람들 몇몇이 한국군으로 귀대 발령이 났다. 그중 몇 명이 나를 찾아와 미 사령관에게 청원해서 발령을 취소시켜 달라고 간곡히 청하는 바람에 나는 그들의 청을 들어주었다. 이 사건으로 파견대장만 추방되었다. 그 후로 부대에서는 추방된 대장 후임으로 다른 한국군 장교가 부임해 오는 것을 거절하고 나를 일등병에서 2계급 특진시켜 책임 하사관으로 임명하고 대장업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나는 군 내부의 적폐를 청산하고 카투사의 기강을 바로잡은 후 카투사의 권익을 위해 미군을 상대로 싸움을 시작했다. 오만방자한 미군들을 깨우쳐 보리라는 다짐으로 주한미군 장병들에게 영문으로 공개서한을 띄웠다.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것은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다. 미ㆍ소 냉전체제 하에 남한을 미국의 최전방 보루로서 확보하기 위한 것이지 구세주나 산타클로스처럼 자선을 베푸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돕는다는 미명하에 한국을 미국의 식민지화하거나 예속시키자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한국인의 단점과 결점을 찾아 흉보면서 자존심을 짓밟아 반미 감정을 불러일으키자는 것은 더욱 아니지 않는가? 자신의 인격보다 제 부모나 나라의 힘을 과시하고, 뽐내고 허세부리는 것 같이 유치 무쌍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정말로 큰 사람은 작고 미천한 소인을 대하는 태도에서 자신의 위대함이 나타나는 법이다. 어떤 선물이든 선물 그 자체보다 그 선물을 주는 방식이 그 사람의 인격을 더 잘 나타낸다는 것이다. 예수의 말처럼 사람은 빵만으로 사는 동물이 아니란 사실을 잊지 말자.’
이렇게 공개서한을 띄우긴 했지만, 반발도 걱정해야 했다. 하지만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나는 안도를 하면서 스스로 자기 자신을 지키지 못하면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깨우쳐 줄 수 있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이 사건으로 카투사의 사기를 높이고 미군과 우의를 다지면서 친목도 도모하여 군에 공헌한 바가 크다며 미 사령관으로부터 감사 표창장을 받았다. 나는 누군가 떠먹여 주는 것을 싫어하는 기질을 갖고 있다. 스스로 먹을 수 있는 자존으로 세상을 살려고 노력했다. 무엇보다 지성과 감성과 의지로 학문을 연구하고 청춘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