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이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쉽게 풀어 쓴 '의역 난중일기'를 출간했다. 그동안 노산 이은상을 필두로 많은 이순신 연구가들이 난중일기를 번역하여 책으로 내놓았으나 표현이 한문 투로 구태의연한 측면이 있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저자는 이전에 출간된 거의 모든 난중일기 책을 참조하고 관련 역사자료를 수집하여 원문의 뜻에 충실하면서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다시 번역했다. 요즘 사람들이 계절 감각을 쉽게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일기의 날짜도 음력과 양력을 병기했다.
예를 들면,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약 두 달 전에 전라좌수영 관하의 5포를 순시했다. 다음은 저자가 당시의 난중일기를 의역으로 풀어쓴 것이다. 그날의 일기에 ‘진달래’가 등장한다.
임진년 1592년 2월 19일[양력 4월 1일] 맑음
순찰하러 본영을 떠나 백야곶(여수 화양면 백야도)의 감목관이 있는 곳에 이르니, 순천부사 권준(權俊)이 그 아우를 데리고 와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기생까지 왔다. 비가 온 뒤라 진달래가 활짝 피어 경치의 아름답기가 형언키 어렵다.
때는 봄날이라 온 산에 진달래가 활짝 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전까지의 번역본들을 보면, 진달래를 원문인 '산화(山花)'에 충실하게 번역하여 '산꽃'이라고 직역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저자는 산화를 진달래로 의역했다. 지금도 여수시 화양면 안포리 백야곶 일대에는 양력 3월 말부터 4월 초에 진달래가 만발한다.

진달래 의역은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이순신 전도사로 알려진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은 이런 식으로 난중일기를 요즘 세대가 읽고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다시 썼다. 실용주의적 실험정신으로 다시 번역한 '의역 난중일기'가 이순신 연구가들은 물론 일반 독자들 사이에서도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