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산 칼럼] 마음의 노숙자

가재산

노숙자는 일할 능력이 있어도 일하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들이다. 길거리 노숙자는 대개 일시적인 경제적 빈곤으로 정해진 주거 없이 공원, 길거리, 지하철 등을 거처로 삼는다. 이러한 노숙자는 사실 거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몸도 멀쩡하고 신체적으로 일을 하는데 결함이 없으나 마음이나 의지가 망가져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소위 ‘마음의 노숙자’들이다.

 

마음의 노숙자들이 거리의 노숙자와 다른 것은 부모의 집이나 자신의 집에서 숙식을 한다는 점이다. 마음의 노숙자들이 점점 늘고 있음은 고령화가 급진전되고 출산율이 떨어져 경제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판에 사회적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사람들이 젊은 일부 계층에 국한되지 않고 직장인이나 노년층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중에서도 심각한 것이 청년들의 은둔형 외톨이 즉 ‘히끼고모리(ひきこもり)’다. 원래 히끼고모리는 일본어로 ‘방안에 틀어박히다’라는 뜻이다. 일본의 경제가 버블 붕괴 후 고용 환경이 악화된 상황에서 취업과 일에 대한 의욕을 상실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본격적으로 증가했다. 히끼고모리는 일본에서 1970년대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지금은 인구의 1% 선인 백만 명을 훨씬 넘다 보니 경제적으로는 물론 사회적으로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유형의 젊은이들이 한국에도 급격하게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위 ’한국형 히끼고모리’다. 우리나라의 은둔형 외톨이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를 지나 내 집 마련이나 인간관계까지 멀리하여 꿈과 희망까지 포기한다는 ‘N포 세대’라는 특징이 있다. 복지부는 2023년 은둔형 외톨이 숫자가 54만 명으로 추산했다. 이들은 일체의 사회적인 관계를 거부하고 방안이나 집에서 거의 나오지 않고 지낸다. 다른 사람과 대화도 거부하고, 낮에는 자고 밤에 일어나 TV나 비디오를 보며 게임이나 인터넷에 탐닉하는 행태를 보인다.

 

중국에서도 성장세가 꺾이고 경기불황으로 취업 길이 막히면서 ‘탕핑족(躺平族)’이 이슈가 되고 있다. ‘탕핑’은 중국어로 ‘평평하다.’는 뜻이다. 이들은 열심히 일해도 노력만큼 보상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해 무기력해지면서 평평한 바닥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탕핑주의 삶을 지향한다. 2000년대 이후 중국의 급격한 성장에 따라 2~30대 청년들이 소외되어 가난을 벗어날 희망이 없어 경제활동 참여를 거부하고 자포자기하는 경향으로 중국의 빈부격차를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요즘 공무원사회나 일반 기업 내에서도 마음의 노숙자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조직 내에서 밥값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무임승차 하려는 소위 ‘사내 실업자’다. 일본에서는 할 일 없는 직원들의 책상이 사무실 가장 끄트머리 창가에 배치된다고 해서 이런 사람들을 ‘창가족’으로 불렀다. 

 

서양에는 이러한 사람들을 ‘패러사이트 미들(Parasite middle)’이라고 한다. 이 말은 기생충, 기생동물,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뻐꾸기를 뜻하는 'Parasite'와 조직의 중간관리자를 뜻하는 'Middle'의 합성어다. 중간관리직이지만 의사결정을 하지 않고 방관만 하면서 옛날이야기만 하는 ‘라떼족’이다. 정보를 흘려도 소용이 없고, 보고서를 올려도 제대로 읽지도 않는다. 자신이 해야 할 일도태연하게 부하에게 맡기고, 지시도 위에서 시키니 어쩔 수 없다고 책임 회피적인 발언만 하는 관리자들이나 고참 사원들이다.

 

또 한 부류는 구조 조정이나 명예퇴직으로 인한 조기 퇴직자들이다. 문제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마땅히 할 일이 없다. 서양의 직장인들은 일생 동안 직장이동이 9~12회, 커리어 변화는 3~5회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샐러리맨들의 경우는 해오던 일이 인생의 전부요, 일과 가정은 별개의 문제였다. 이들은 막상 밖으로 나오긴 했지만 정착할 곳이 없다. 결국 매일 집에서 눈치밥을 먹을 수는 없다 보니 넥타이를 맨 채 정처 없이 밖에서 헤매는 노숙자처럼 되어버린다.

 

우리 주위에 마음의 노숙자들은 이 밖에도 또 있다. 도박이나 경마, 심지어는 주식이나 복권에 빠져서 정상 생활은 고사하고 가정이 파괴되고 외부 사람들과의 관계도 단절된 채,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도 거리의 노숙자와 큰 차이가 없다. 이러한 노숙자들에게 일을 통해 재기의 기회를 갖게 하려면 누군가의 배려와 도움의 손길이 절실하다.

 

복지부는 2024년 은둔형 외톨이 청소년들을 방 밖으로 끌어내어 일상생활에 복귀하도록 한다는 종합지원책을 내놓고 시범사업을 지자체를 통해 시작했다. 한편 당사자와 가족을 돕는 기관들이 교류 및 협력하는 플랫폼으로 '한국 은둔·고립자 지원기관 협의회'도 발족했다. 그렇지만 마음의 노숙자들이 일어서려면 스스로 변화하려는 자신의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부모들도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라 해서 캥거루족으로 껴안고 봐주기 보다는 스스로 일어서도록 공감과 설득으로 자립할 수 있게 적극 도와주어야 한다. 기업에서도 무임승차자들을 묵인하기보다 현장에서 열심히 뛸 수 있도록 유인하는 인사제도의 개선이 중요하다

 

바닥을 치면 일어서는 것은 비단 주식시세만이 아니다. 삶도 마찬가지다. 인생을 드라이브하는 자신은 스스로가 주인이자 운전수다. 지금 처한 처지가 아무리 바닥권이라 해도 힘차게 외치며 일어서는 오뚝이 인생은 아름답고 경건하기까지 하다. 이런저런 남 걱정, 나라걱정 하기 전에 진작 나는 어떤가. 나이가 들어간다고 핑계 대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위도식하며 세월을 보낸다면 나 또한 마음의 노숙자가 아닐까?

 

김승희 시인의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시 귀가 우리들에게 삶의 용기와 희망을 던져준다. ‘그래도’는 가슴에서 붙들고 놓지 않는 꿈이다.

 

가장 낮은 곳에

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 

 

그래도라는 섬에

그래도 부둥켜안고

그래도 손만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강을 다 건너 빛의 뗏목에 올라서리라

 

 

[가재산]

한류경영연구원 원장

한국디지털문인협회 부회장

미얀마 빛과 나눔 장학협회 회장

저서 : 『한국형 팀제』, 『삼성이 강한 진짜 이유』

『10년 후 무엇을 먹고살 것인가』, 『아름다운 뒤태』

이메일 jska032852@gmail.com

 

작성 2024.11.07 08:51 수정 2024.11.07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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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